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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북,불교용품,불교서적,불교사경

삼국유사 - 흥법, 탑상편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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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삼국유사 - 흥법, 탑상편 (반양장)
정가 25,000원
판매가 22,500원
저자/출판사 일연/신대현/혜안
적립금 1,13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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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352
발행일 2024-04-30
ISBN 978898494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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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까지 없었던 원문과 번역, 해설이 함께 들어간 삼국유사 전체 9편 중 ‘흥법과 탑상’ 이야기!
인문학적 가치로서 귀중한 보고 삼국유사
우리의 고대사 연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기본이다. 보통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정사(正史)라고 하지만, 일연(一然) 스님의 《삼국유사》도 제목처럼 《삼국사기》에서 담아내지 못한 고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니 그 못잖게 귀중한 자료이다. 무엇보다 고조선에서부터 고려까지, 우리 민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이 고전에는 다른 역사서에는 보기 어려운 단군 신화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신화와 설화, 그리고 방대한 양의 불교와 민속 신앙 자료가 한데 아우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연 스님은 무신정권과 몽골의 침입 등 국내 정세가 안팎으로 어수선하고 불안해지자, 오랜 기간 모은 자료들을 정리하여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고취하고자 했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자주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고 작자의 자유롭고 개성적인 상상력으로 해석해 냄으로써 민족 주체성의 토대 위에서 우리의 고대사를 바라본 최초이자 최고의 역사서를 탄생시켰다.




저자소개
저자 : 일연


고려 후기의 승려이자 학자이다. 1219년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하였고 1283년 국사가 되었다. 입적 후 보각국존(普覺國尊) 존호를 받았고, 인각사에 그의 부도와 비가 남아 있다. 《삼국유사》는 그가 오랜 기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1277년 청도 운문사에 머무를 때 집필을 시작해 1284년 군위 인각사로 옮긴 이후에 완성했다. 《삼국유사》는 고대의 신화와 전설, 민속, 불교미술 등이 담겨 있어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번역 : 신대현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고, 현재 현재 능인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이다.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 900여 전통사찰 및 절터를 답사하며 《전통사찰총서》(사찰문화연구원) 전 21권을 기획, 공동 집필하여 우리 불교문화사의 기초 자료를 엮어냈다. 이 같은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불교미술과 관련한 《한국의 사리장엄》, 《한국의 사찰 현판》(전 3권), 《옥기 공예》, 《진영과 찬문》, 《적멸의 궁전 사리장엄》과, 우리 사찰의 역사 문화와 관련한 《우리 절을 찾아서》, 《경산제찰을 찾아서》, 《닫집》, 《테마로 읽는 우리 미술》, 《강원도 명찰기행》, 《불교미술 이해의 첫걸음》, 《사리》, 《산중일기》(역해), 《명찰명시》, 《전등사》, 《화엄사》, 《송광사》, 《불영사》, 《성주사》, 《대흥사》, 《낙가산 보문사》, 《봉은사》, 《은해사》, 《갓바위 부처님: 선본사 사지》, 《낙산사》, 《대한불교보문종 보문사 사지》 등의 저서를 냈다.




목차

책머리에

〈흥법편〉
고구려의 불교를 연 순도
마라난타가 백제의 불교를 열다
아도가 신라 불교의 터를 닦다
원종이 불법을 흥성케 하고자 하니 염촉이 몸을 바치다
법왕이 살생을 금하다
보장왕이 노자를 숭상하므로 보덕 스님이 승방을 옮기다
경주 흥륜사 금당의 열 분 성인

〈탑상편〉
가섭불 연좌석
요동성의 아육왕 탑
금관성의 파사석탑
고구려의 영탑사
황룡사의 장륙상
황룡사의 구층탑
황룡사의 종, 분황사의 약사상, 봉덕사의 종
영묘사의 장륙상
사불산ㆍ굴불산ㆍ만불산
생의사의 돌미륵
흥륜사의 보현보살 벽화
세 곳의 관음상과 중생사
전후로 가져온 사리
미륵 선화, 미시 화랑, 진자 스님
남백월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분황사 천수 관음상이 눈먼 아이의 눈을 뜨여 주다
낙산사의 두 성인, 관음보살과 정취보살 그리고 조신
만어산의 부처님 그림자
오대산의 오만 진신
명주 오대산 보질도 태자 전기
오대산 월정사의 다섯 성중
남월산
천룡사
무장사의 미타전
백엄사 석탑의 사리
영축사
유덕사
오대산 문수사 석탑기




책 속으로

불교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이를 자신들의 종교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그런 진통을 겪고 나서야 다음 사회에 불교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게 된 과정이 잘 나온다.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삼국마다 불교를 받아들일 당시의 환경은 저마다 다 달랐지만, 그래도 자기
서울 뚝섬에서 출토된 5세기 고구려 금동불좌상
한 몸을 돌보지 않고 대의를 위해 희생한 스님이나 신도가 있었기에 불교가 안착될 수 있게 되었음은 똑같다. 그리고 여기에 왕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인도나 중국에서 온 스님에게 불교를 처음 접한 왕은 불교의 뜻과 가치를 이해하여 돈독한 불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찰을 짓거나 승려를 공식적으로 출가시키는 등 불교 전파를 국가 정책으로 삼아 불교 관련 제도를 갖추는 데 앞장서고, 귀족이나 관료들도 이에 잘 부응했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은 특히 고구려와 백제가 판박이처럼 비슷하였고, 그 결과 고구려 소수림왕과 백제 침류왕의 불교 진흥 정책은 처음부터 큰 무리 없이 이뤄질 수 있었다.
-「삼국시대 불교 초전(初轉)의 양상」에서


칠처가람중 사천미-영묘사지로 추정되는 현재의 흥륜사 내경
양나라와 당나라의 두 승전[《고승전》ㆍ《속고승전》]과 삼국 본사[《삼국사기》]에 모두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 불교의 시작이 진(晉)나라 말년 대원(太元, 376~396) 연간이라고 하였다. 순도와 아도 법사가 소수림왕 갑술에 고구려에 왔음이 명확하므로 이 전들은 그릇되지 않았다.… 대체로 나라 사람들은 들은 대로 묵호ㆍ아도 두 이름에 따라 두 사람으로 구분하여 전한 것이다. 더군다나 아도의 겉모습이 묵호와 비슷하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를 가지고도 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고도령이 일곱 곳을 차례대로 꼽은 것은 바로 창건의 선후를 미리 알고 말한 것이나, 두 전기(아도의 비석, 《해동고승전》)가 잘못되었기에 여기에서는 ‘사천미’를 다섯 번째에 넣었다. -「아도가 신라 불교의 터를 닦다」에서


가섭불 연좌석으로 추정되는 황룡사 목탑지 심초석 위의 바위
1281년은 그가 이 글을 쓴 시기일 테니 《삼국유사》 집필 과정을 추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일연은 이 전설의 가섭불 연좌석을 찾아가 그 크기까지 재어서 자세히 적어놓았다. 돌의 형태가 일부 부서진 건 1238년 몽골군의 침략 때문이라고 고증도 했다. 지금 황룡사지 목탑 자리 한가운데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놓여 있어 이를 일연이 말한 가섭불 연좌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일연이 가섭불 연좌석이라고 믿었던 그 바위인지는 알 수 없다.… 일연이 〈탑상〉의 처음을 광대무변한 우주의 나이와 개벽이 나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음도 드넓은 이 세상에서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모두 인연으로 태어나고 살아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여하튼 신라에 가섭불이 좌선했던 자취가 있으니 여기가 불교와 큰 인연이 있는 땅임을 강조하려 했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가섭불 연좌석」에서

황룡사 9층목탑 찰주본기와 모사본

자장은 문수보살에게서 신라가 선택된 민족이라는 계시를, 또 태화지의 신인에게는 황룡사 구층목탑 건립을 통한 국난 극복의 방책을 듣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일연은 이 대목에서, 구층탑을 세우라는 조언을 한 이는 태화지의 신인이 아니라 종남산의 원향선사라는 일설이 사중기인 찰주기에 나온다고 주석을 달았다. 그런데 1960년대에 황룡사 목탑지에서 이 찰주기 실물이 나왔다.… 이 유물은 골동 시장을 전전하다가 다행히 1966년에 당국에 회수되었다. 이어진 조사에서 얇은 금동판 6매의 겉면에 ‘황룡사 구층 목탑 찰주본기’라고 새겨져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이 유물들이 황룡사 구층목탑의 사리장엄인 게 확인되었다. 바로 일연이 말한 사중기였다. 귀중한 보물을 얻은 동시에 《삼국유사》의 신빙성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황룡사 구층탑과 찰주본기」에서


성덕대왕신종의 천인상
황룡사 범종과 봉덕사 성덕대왕신종은 26년 차이밖에 안 되니 같은 시대의 작품인 셈이다. 하나는 사라졌으나 다른 하나는 잘 전하여서 지금 최고의 신라 범종이라는 칭송을 듣는다. 황룡사라는 사격으로 볼 때 그 범종 역시 성덕대왕신종 못잖은 명작 범종이었을 텐데, 오늘날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다만, 가장 오래된 상원사 범종(725)을 비롯해 이후에 나온 여러 신라 범종의 형태가 일정한 편이라서 황룡사 범종 역시 비슷한 모습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 일연은 그의 시대에는 이미 사라져 버렸던 황룡사 범종, 500년 뒤에 이를 녹여서 새로 만든 범종, 그리고 성덕대왕신종에 들어간 재료의 무게, 높이, 두께까지 아주 자세히 적어놓았다. 이 범종들이 언젠가 옛날 모습 그대로 다시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걸까. 성덕대왕신종은 다행히 우리 곁에 남아 있어서, 오늘날 사용하는 단위로 환산해 비교하면 옛날 황룡사 범종의 크기와 무게, 그리고 당시의 무게 단위를 추정할 수 있다.
-「범종의 무게」에서




출판사 서평

원문과 번역, 해설이 있는 삼국유사
이런 최고의 역사 문화서이지만, 지금까지 《삼국유사》 번역서는 대부분 원문의 충실한 번역과 여기에 어려운 용어에 관한 간단한 설명 정도에 그친 형태였고, 일부 번역의 오류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에 비하여 이 책에서는 《삼국유사》의 원문과 번역 외에, 이야기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에 비중을 둔 해설을 통해 《삼국유사》를 이해, 감상하는 데에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해설은 그간 이뤄진 학계의 연구를 분석하여 그 성과를 포괄적으로 담았기에 이 자체로써 하나의 《삼국유사》 해설서로 읽힐 수도 있을 만큼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총 9편으로 이루어진 《삼국유사》 가운데 〈흥법〉에는 삼국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직전과 직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이 특히 많아, 현재 한국불교사의 출발점을 연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부분이다. 〈탑상〉의 경우는 불탑과 불상에 관하여 중요한 자료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불교미술사에서도 고전으로 여겨진다.
불교미술사학자인 번역ㆍ해설자 신대현 교수는 평소 “불교미술을 연구하려는 사람이라면 《삼국유사》를 들고 현장을 찾아갈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좇아, 《삼국유사》를 수십 번 넘게 읽으며 공부했다. 그 결과 이 책에서 〈흥법〉을 통해 삼국의 왕이 어떤 연유로 해서 불교를 알게 되었고, 불교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었는지 해설하고, 〈탑상〉을 통해 일반 독자들이 우리 불교미술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섬세한 해설들을 서술했다.
특히 〈흥법ㆍ탑상〉 이야기들에 얽힌 유적과 유물 사진들을 지면에 풍부하게 넣은 점도 번역과 해설을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원문과 해설, 그리고 관련된 사건에 관하여 빠짐없이 들어간 사진을 통해 원문을 지은 일연 스님의 뜻과 마음이 더욱 잘 전해질 수 있다.

과거와 현대인의 삶을 이어주는 인생의 철학
인류의 긴 역사를 거르고 또 걸러내면 종내에는 역사와 철학과 예술이라는 결정체만 남는다. 역사는 사실이고, 철학은 사유이며, 예술은 상징과 은유로 이들은 인간이 쌓은 지성(知性)의 총체이자 인간을 해석하는 수단이 된다. 《삼국유사》에는 이 모든 게 들어 있고, 나아가 고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본성에 충실한 꾸밈없는 행동들도 담겨 있다. 천년, 이천 년 전 옛날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던 이런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역사와 생로병사, 희로애락, 거기서 나오는 인생의 철학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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