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다석 류영모의 가르침을 육성으로 듣는다
다석 류영모는 함석헌, 김교신, 김흥호와 같은 출중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이끈 스승이었다. 그는 기독교 정신은 물론이거니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도 박식했다. 후학들로서 아쉬운 점은 이제 더 이상 다석 류영모 선생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육성으로 만날 수는 있다. 『다석 마지막 강의』는 임종하기 직전 다석 선생이 직접 강의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책에 함께 포함된 MP3 CD를 통해 그가 전하는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다.
다석이 살아 생전 고심한 문제는 동서 사상의 화합이었다. 외견상 분명히 다르게 보이는 두 개의 세계관은 사상적 대가의 눈으로 보기에 하나로 합쳐지는 가르침이었다. 공자, 맹자의 가르침이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다르지 않고,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기독교의 세계관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다석의 가르침이었을 게다. 이 책에서 다석은 깨달음과 삶에 대해 논하며 동서 사상의 다양한 가르침을 설명한다.
저자소개
저자 柳永模, 다석 다석 류영모는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은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분열과 갈등의 세계 정세에 통찰력을 제공하는 다원주의적인 종교관이다.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6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다석 류영모는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은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분열과 갈등의 세계 정세에 통찰력을 제공하는 다원주의적인 종교관이다.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6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하였다.
처음 세례를 받고 몇 년 동안 정통 기독교인이었으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나아가 『노자(老子)』를 한글로 완역하는 등 여러 성인의 말씀을 우리 말과 글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여, 한자를 쓰는 대신 옛말을 찾아 쓰거나 ‘씨알(민중)’ ‘얼나’ ‘제나’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류영모는 생활에서도 성인의 삶을 실천했다. 51세에 믿음에 깊이 들어가 삼각산에서 하늘과 땅과 몸이 하나로 꿰뚫리는 깨달음의 체험을 하였다. 이때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세 끼를 합쳐 저녁을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多夕)이라 하였다. 얇은 나무판에 홑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잤으며, 새벽 3시면 일어나 정좌하고 하느님의 뜻을 생각했다. 평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거친 옷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늘 “농사 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라고 말했으며, 가족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1981년 2월 3일 18시 30분, 이 땅에서 90년 10개월 21일을 살다가 숨졌다.
생전에는 함석헌의 스승으로만 알려졌으나, 지금은 독특한 신관과 인생관을 지닌 철학자로서 다석 류영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05년에 다석학회가 만들어진 데 이어 2007년 10월 5일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철학자들과 종교학자, 재야 학자들이 모여 ‘재단법인 씨알’을 만들었다.
편저 박영호
朴永浩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0여 년 동안 다석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다. 박영호는 다석으로부터 유일하게 마침보람(졸업증서)을 받은 직제자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지진해일처럼 갑작스레 밀려드는 북한 인민군의 침략을 목도한 고교생 박영호는 약관의 나이에 학도의용군에 자원하였다. 그러나 시신이 넘쳐나고 피로 흥건한 아비규환의 참상을 목격한 뒤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신경쇠약으로 매일같이 불면의 밤을 보냈다. 칼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를 읽어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고 하느님이 계심을 알고 신앙에 눈뜨면서 극기복상(일상으로 돌아옴)하였다. 맑아진 정신으로 톨스토이의 전집을 비롯하여 철학종교서적을 열렬히 탐독하였다. 그때 『사상계』에 실린 함석헌의 글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읽고 감동하여 함석헌과 문통을 하게 되었다. 농사와 신앙의 아슈람을 세워 공동생활을 하자는 데 뜻을 같이 하여, 함석헌이 있는 천안 씨알농장에 합류하였다. 함석헌으로부터 성경을 비롯한 고문진보 등 고전을 3년 동안 배웠다. 이후 함석헌의 ‘실덕(失德) 사건’...1959년부터 1981년까지 20여 년 동안 다석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다. 박영호는 다석으로부터 유일하게 마침보람(졸업증서)을 받은 직제자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지진해일처럼 갑작스레 밀려드는 북한 인민군의 침략을 목도한 고교생 박영호는 약관의 나이에 학도의용군에 자원하였다. 그러나 시신이 넘쳐나고 피로 흥건한 아비규환의 참상을 목격한 뒤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신경쇠약으로 매일같이 불면의 밤을 보냈다. 칼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를 읽어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고 하느님이 계심을 알고 신앙에 눈뜨면서 극기복상(일상으로 돌아옴)하였다. 맑아진 정신으로 톨스토이의 전집을 비롯하여 철학종교서적을 열렬히 탐독하였다. 그때 『사상계』에 실린 함석헌의 글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읽고 감동하여 함석헌과 문통을 하게 되었다. 농사와 신앙의 아슈람을 세워 공동생활을 하자는 데 뜻을 같이 하여, 함석헌이 있는 천안 씨알농장에 합류하였다. 함석헌으로부터 성경을 비롯한 고문진보 등 고전을 3년 동안 배웠다. 이후 함석헌의 ‘실덕(失德) 사건’을 계기로 함석헌의 문하를 나와, 류영모의 서울 YMCA 연경반 금요강의를 듣게 되었다. 거기서 노자, 장자 등 동서고전을 5년 동안 배웠다. 연경반 강의로도 성이 안 차 류영모 집으로 가서 배우기도 하였다. 하루는 서울 구기동의 류영모 집으로 찾아간 박영호에게 스승 류영모는 ‘단사(斷辭)’를 하라며, 자기를 찾아오지도, 편지도 하지 말라 했다. 정신적 자립을 하라는 것이었다. 눈물을 삼키며 스승 류영모와 결별을 한 박영호는 5년에 걸쳐 『새 시대의 신앙』을 저술하여 스승 류영모에게 바쳤다. 그리하여 스승 다석으로부터 마침보람(졸업증서)를 받아 제자로 인가되었다. 또한 스류영모의 전기를 쓰도록 허락을 받아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등 ‘다석 사상’에 관한 저서를 10여 권 넘게 썼다. 『잃어버린 예수』에 이어 새로 쓴 『메타노에오, 신화를 벗은 예수』를 통해 2천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예수의 진면목을 드러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현재 성천(星泉)문화재단의 다석사상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성천아카데미에서 다석사상과 함께 노장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문화일보」에 다석사상에 관한 글을 325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그것을 보완하여 『다석사상전집』(총6권)을 출간했다. 그 밖에 그가 쓰고 엮은 책으로 『다석 류영모 명상록』, 『다석 류영모 어록』, 『중용(中庸) 에세이』, 『다석 추모문집』, 『노자(老子)』, 『장자(壯子)』, 『얼의 노래』, 『잃어버린 예수』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다석의 마지막 강의를 듣는다
길잡이 말·얼나를 알면 하느님을 안다
1장 사서삼경 모르면 성경도 모른다·맹자 강의1
2장 나 있는 데가 가운데입니다·중용 강의
3장 바탈을 길러 하늘을 섬긴다·맹자 강의2
4장 주역에서 겸손을 배운다·주역 강의
5장 독립 자유의 삶이 참삶이다·일일 일생의 철학
6장 오직 뜻이 반듯해야 합니다·주기도문 강의
7장 깨달음은 깨어나는 것·봉헌경 강의
8장 사람은 왜 태어났는가·「진달래야」 강의
9장 죽음이란 몸 옷을 벗고 올라가는 것·죽음 강의1
10장 요가도 기도입니다·요가 강의
11장 제나의 인사, 얼나의 인사·인사 강의
12장 꿈을 깨니 얼이 일어섭니다·기도 강의
13장 생각이 깨고 또 깨는 것이 거듭남이다·로마서 강의
14장 변하는 데도 법이 있어야 합니다·간소한 삶
15장 우리말 속에 하느님이 계십니다·우리말 놀이
16장 사도신경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사도신경 강의
17장 몸 벗고 얼생명이 남습니다·죽음 강의2
18장 바르게 읽어야 마음이 깨입니다·성경 읽기 강의
19장 독생자는 한 나신 아들입니다·요한복음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