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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선악론 (지식총서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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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불교의 선악론 (지식총서 257)
정가 4,800원
판매가 4,560원
저자/출판사 안옥선/살림
수량 수량증가수량감소
페이지수 94
발행일 2006-09-30
ISBN 978895220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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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의 선악론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067)

    11,400원

책소개

불교의 핵심은 ‘선의 실천’에 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선은, 흔히 생각하듯 ‘악’과 대립되는 개념의 것일까? 선의 속성은 무엇이고, 참된 선이란 어떠한 것을 일컫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불교에서의 선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


저자소개

안옥선
현 순천대학교 인문학부 철학전공 교수.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철학과에서 「초기불교 윤리의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받음.
저서로는 『불교 윤리의 현대적 이해』 『Compassion and Benevolence』 등.
공저로는 『도대체 건강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가치』 등.
공역서로는 『붓다, 마르크스, 그리고 하느님』 『여성주의철학』 등.
논문으로는 「불교 윤리와 현대 윤리학의 만남」 「불교의 인권」 등 다수.


목차

프롤로그
선악을 넘어서
선의 능력으로서의 마음
선의 원천으로서의 무탐진치/심청정
선의 표현으로서의 업
선의 구체적 실천지침으로서의 역지사지와 자리이타
선의 구현체로서 ‘선한 성품’
선의 공성: 선악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


출판사 리뷰

불교에서 말하는 선의 두 가지 특징

불교 선악관의 독특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선에 있어서 마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악)이 공空하다고 보는 것이다.

선에 대한 마음의 역할과 관련하여 불교는 세계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듯이, 선 또한 마음의 문제라고 본다. 선이 주관적인 것이며 그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마음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도덕의 발생, 도덕의 실천, 그리고 도덕의 완성의 중심이 마음에 있다는 의미에서 선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예컨대 ‘모든 악행을 끊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이것이 여러 부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고 칠불통계七佛通戒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불교윤리의 관건은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음과 연관되지 않는 선, 마음을 변화의 원천으로 삼아 마음을 그 배양의 토대로 보지 않는 선은 껍데기일 뿐이다.

‘선은 공하다’라는, 얼핏 선문답처럼 보이는 이 개념에 대해 저자는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준다. 불교가 선악을 공하다고 할 때 그것은 선과 악이 없다는 의미에서 공하다는 것이 아니고, 선악은 고정적인 것도 아니며 절대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선악은 연속적이고, 상호규정적이고, 상황의존적이라는 의미에서 선악은 공하다는 뜻인 것이다.



연속적, 상호규정적, 상황의존적인 선악

선악이 연속적이라는 것은 선악이 절대적으로 이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선이 아니면 악이고, 악이 아니면 선인 것은 아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대통령 부시가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테러리스트(Either you are with us or you become a terrorist)’라고 말한 것은 선악이분의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선악은 선이 아니면 악인 것이 아니다. 선악은 이분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연결된 하나이다. 그래서 불교는 절대적 이분에 근거한 폭력?강제?배제의 윤리가 아니라, 평화?자율?포용의 윤리이다.

선악이 상호규정적이라는 것은 선으로 인하여 악이 있고, 악으로 인하여 선이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밝음(明)과 어둠(?)에 비유한다. 선악의 존재방식은 밝음이 어둠으로 인하여 존재하고, 어둠이 밝음으로 인하여 존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요컨대 선악은 각각 독립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선악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아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선악은 구체적 상황이나 맥락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특정 행동에 대하여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선악이 이처럼 공한 것이라면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선에 대해 집착할 수도 없고 악을 배제할 수도 없다. 선을 행하되 집착 없이 행하면서도 악을 배타하지 않고 껴안아야 한다. 그래서 악이 선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번뇌를 보리로 치유하고 제도하듯이, 악은 선에 의해서 치유되고 제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악이 오면 선으로 제도하라(惡來善度)’고 한다. 악은 단죄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자비의 대상으로서 선 실천의 장소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윤리적 역량의 시험대이며 자신을 고양시키는 무대이기도 하다.




‘선악을 넘어서’ -불교와 니체의 선악관


이렇듯 선과 악, 즉 도덕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인식은 ‘도덕은 객관실재가 아니라 현상에 대한 인간(특정 집단)의 해석’이라고 본 니체의 입장과 상통한다. 전통적으로 주류 도덕철학자들이 이성에 근거하여 선의 구명과 그 정당성의 탐구에 몰두해 온 것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니체는 도덕의 문제를 이성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는 선과 악을 절대적?고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선과 악은 서로 대립하는 이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주장을 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선악이분법을 벗어나라는 의미에서 ‘선악을 넘어서’라고 한다. 이는 선악은 경직된 이원적인 것이 아니며 상호배타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직된) 선악이분법을 전제하는 전통적 도덕관도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되고, 더 나아가서 ‘선악을 넘어서’라는 말은 악조차도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미덕일 수 있다?악도 유용하다?는 것, 선과 악은 정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 악/악인까지도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니체의 이러한 주장은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선악관과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이러이러한 일은 선행이고 이러이러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식의 절대적인 기준이나 고정관념에 우리는 묶여 있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보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에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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