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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한글본한국불교전서 조선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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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경허집 (한글본한국불교전서 조선 34)
정가 30,000원
판매가 28,500원
저자/출판사 경허 성우 지음/이상하 옮김/동국대학교출판부
적립금 1,43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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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572
발행일 2016-02-25
ISBN 978897801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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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경허집』은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경허 성우의 문집이다. 경허집은 대체로 한암필사본과 선학원본 두 종류와 필사본 『호서화상법어』가 현재 남아 있다. 『한국불교전서』에 실린 선학원본의 「보유」는『한국불교전서』를간행할 때 추가한 부분이다. 한암필사본에 실린 시문은 대개 경허의 작품이라 추정되지만, 추후하여 자료를 더 수집해서 편찬한 선학원본에 실린 시문에는 경허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선학원본에는 오탈자가 많고, 한암필사본에도 오탈자가 있다.이책에서한암필사본을저본으로삼고,선학원본 중에서한암필사본에없는작품들을뒤에첨부하였으며, 한암필사본·선학원본·『호서화상법어』세본을 대조하여 교감하문리에 맞지 않은 글자를 고쳐서 번역하였다.


저자소개
저자 경허는 1846년 4월 24일에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다. 경허의 출생 연도는, 한암중원漢巖重遠은「선사경허화상행장先師鏡虛和尙行狀」에서 1857년이라 하였고, 만해 한용운은 「간략한 연보(略譜)」에서 1849년이라 하였지만, 경허가 광무 4년(1900)에 찬술한 「서룡 화상 행장瑞龍和尙行狀」에서 자신의 나이가 55세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1846년으로 추정된다.
경허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아홉 살 때 모친을 따라 상경하여 경기도 광주廣州의 청계사淸溪寺에 들어가 계허桂虛 스님을 은사로 삼아 삭발하고 수계하였다. 법명은 처음에는 동욱東旭이었다가 동학사에서 견성한 뒤 성우로 바꾸었다. 경허는 법호이다.
청계사에서 한 선비에게 『천자문』·『사략』·『통감』 등을 배웠고,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만화 강백萬化講伯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내외전內外典을 두루 읽었으며, 23세에 동학사의 강사가 되었다.
34세 때 환속한 은사 계허를 찾아가다가 당시 창궐한 콜레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 마을을 지나다가 무상을 통감하고 동학사로 돌아와 ‘여사미거마사도래화驢事未去馬事到來話’를참구하여개오하였으니,고종16년 기묘년(1879) 겨울 11월 보름께였다.
35세 때 속가의 형인 태허太虛 스님이 주지로 있던 홍주洪州 천장암天藏庵에 와서 보임하였다. 이 시기에 자신은 용암혜언龍巖慧彦의 법을 잇는다고 하여 자신의 법맥을 밝혔다.
이때부터 경허는 20여년동안 홍주의천장암, 서산의 개심사開心寺와 부석사浮石寺 등지를 오가면서 주석하였다. 53세 때 범어사에 선원을 개설한 뒤로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송광사 등 사찰에 선원을 개설하여 선풍을 크게 떨쳤다.
59세때안변군安邊郡 석왕사釋王寺에 이르러 오백나한개분불사五百羅漢改粉佛事의 증명법사가 된 뒤로 종적을 감추었다. 이후로 함경도 갑산甲山, 강계江界 등지를 떠돌며 박난주朴蘭洲라 개명하고, 속인의 모습으로 서당 훈장을 하다가 67세 때인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하니, 법랍이 58세이다.
경허는 음주식육에 걸림 없는무애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자기 수행에 철저했다. 또한 큰 도회지에 나가서 활동하면 신도들이 많이 따라 여불如佛 대접을 받으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발로 경성 땅을 밟지 않기로 스스로 맹서했다고 한 데서 그가 명리를 멀리한, 진솔한 성품과 곧은 지조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문하에서 수월 음관水月音觀, 혜월 혜명慧月慧明, 만공 월면滿空月面, 한암 중원 등 근세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들이 배출될 수 있었겠는가.
한국 불교는 보조普照, 서산西山 이후로 선교겸수를 표방하여 왔지만 대개 선이 교에 비해 우위에 있어 왔고, 조계종이 출범한 뒤로는 선이 절대 우위에 서게 되었다. 경허는 한국 불교사에서 근세 한국선의 중흥조로 일컬어진다. 따라서 근현대 한국선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임은 말할 나위 없다.


목차
경허집 해제
일러두기

경허집 제1권
경허집 제2권


출판사 서평
서지 사항

경허의 시문은 『호서록湖西錄』이란 필사본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전모를 알 수는 없고, 『호서화상법어』라는 필사본이 전해진다. 『경허집』은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편집, 간행, 증보, 번역되었다. 첫째는 한암 중원이 경허의 시문을 손수 필사한 필사본으로, 자신이 지은 「선사 경허 화상 행장」을 첫머리에 얹었다. 그 행장의 말미에 “신미년(1931) 3월 15일에 문인 한암 중원은 삼가 찬술하다.”라 한 것으로 보아 이 필사본은 1931년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2년 뒤 1943년, 선학원禪學院 중앙선원中央禪院에서 만해 한용운이 편집하여 『경허집』을 활자로 간행하였다. 이 두 본은 모두 경허의 사법제자인 만공 월면의 부탁을 받아 편집한 것인데, 편차와 작품의 제목이 많이 다르다.
한암필사본에는 〈오도가悟道歌〉, 「동곡당 대선사의 진영(東谷堂大禪師之眞)」, 〈심우송尋牛頌〉을 제외하고는 문文을 상반부에, 시를 하반부에 싣고, 1권과 2권으로 나누었다. 선학원본은 법어, 서문, 기문, 서간, 행장, 영찬, 시, 가歌로 장르를 나누고, 시는 다시 오언절구(五言絶), 오언율시(五言律), 칠언절구(七言絶), 칠언율시(七言律), 사륙언四六言으로 나누어 놓았다. 한암필사본에서는 〈우음偶吟〉, 〈물외잡영物外雜詠〉과 같은 제목을 한암이 붙이고, 그 아래 원래 제목이 없던 작품들을 모아 놓았던 것을, 선학원본에 이르러서는 다시 시체詩體별로 분류해 제목을 붙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암필사본은 문이 29편인데 이 중 선학원본에 없는 것이 4편이며, 시는 대략 67제題 148수인데 선학원본에 없는 것이 대략 11제 12수이다. 그리고 〈오도가悟道歌〉 1편, 〈심우송尋牛頌〉 2제 18수, 한글로 된 작품으로 〈가가가영〉, 〈중노릇하는 법〉, 〈법문곡〉 3편이 수록되어 있다.
선학원본에는 문이 37편인데 이 중 한암필사본에 없는 것이 12편이며, 시는 138제 208수인데 한암필사본에 없는 것이 대략 73제 98수이다. 그리고 한글로 된 작품으로 〈참선곡〉이 더 실려 있다.
한암필사본과 선학원본에만 각각 들어 있는 작품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대조하여 식별하기 쉽도록 원문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하고, 한 제목 아래 여러 편의 시들이 묶여 있는 경우에는 각 편에 제목이 없으므로 첫째 수를 제목으로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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