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욱동
저자 김욱동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시피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뉴욕 주립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 듀크 대학교 등에서 교환 교수를 역임하고 서강 대학교 명예 교수 및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초빙 교수로 있다. 1987년 《세계의 문학》에 「언어와 이데올로기-바흐친의 언어이론」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저술가, 번역가, 평론가로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은유와 환유』, 『번역인가 반역인가』, 『녹색 고전』, 『소로의 속삭임』 등을 쓰고 『위대한 개츠비』, 『앵무새 죽이기』, 『오 헨리 단편선』, 『동물농장』 외 다수를 번역했다. ‘문학 생태학’, ‘녹색 문학’ 방법론을 도입해 생태의식을 일깨웠으며 『한국의 녹색 문화』, 『시인은 숲을 지킨다』, 『생태학적 상상력』,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 『적색에서 녹색으로』 등을 펴냈다.
당신의 하루를 축복하는 대지의 노래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그대의 집에 부드럽게 불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 집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기를. 너의 가죽신이 눈 위에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 그리고 무지개가 항상 너의 어깨에 닿기를. - 체로키 족의 기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명문 학교 학생들의 비밀 모임은 인디언 동굴에서 『월든』 한 구절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갑갑한 기숙사를 빠져나와 인디언 동굴에서 모닥불... 더보기 당신의 하루를 축복하는 대지의 노래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그대의 집에 부드럽게 불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 집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기를.
너의 가죽신이 눈 위에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
그리고 무지개가 항상 너의 어깨에 닿기를.
- 체로키 족의 기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명문 학교 학생들의 비밀 모임은 인디언 동굴에서 『월든』 한 구절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갑갑한 기숙사를 빠져나와 인디언 동굴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북을 울리며 시를 읊조리는 학생들이 느끼는 자유는 잠시나마 문명 세계를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생활했던 19세기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깨달음과도 맞닿아 있다. 영문학자이자 생태 문학가인 김욱동 교수는 『소로의 속삭임: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사이언스북스, 2008년)에서 시인의 눈뿐만 아니라 과학자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았던 생태주의자 소로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번에는 소로가 매료되었던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의 정수를 간직한 책 『인디언의 속삭임: 일 년 열두 달 인디언의 지혜와 격언』이 세미콜론에서 나왔다.
이 책에서는 흔히 인디언으로 칭하는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들과 캐나다의 첫 번째 민족(First Nation)들이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 인디언들은 들소와 사슴, 무지개와 눈송이 등 북아메리카 대자연에 깃든 아름다움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불가에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는 무슨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을까? 여러 부족들은 소위 신대륙 발견 이후 백인들이 들어오고 나서 서부 개척 시대를 거치며 완전히 달라져 버린 삶에 어떻게 적응해 나갔을까? 『인디언의 속삭임』은 인디언들의 격언과 기도, 축사, 연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 모음 60편을 새롭게 해석하는 한편 역사적 배경은 물론이고 현대인들을 위한 철학적 생각거리를 담고 있다.
그들은 이 강과 호수 위를 노 저어 다녔으며, 이 숲 속을 거닐었고, 바다와 숲에 얽힌 그들만의 전설과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북아메리카 대평원 너머로 들려오는 영혼의 두드림
우리가 이 세상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 또한 우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슬픔을 준다.
- 추장 빅 클라우드의 연설
생태계 위기가 더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인디언들은 일찍이 미래를 내다보며 자연과 인간을 존중했다. “미타쿠예 오야신(Mitacuye Oyasin)!”이라는 인사말은 우리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상호 연관성에 대한 이러한 관심이야말로 파괴된 자연을 되돌리고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는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한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디언들을 환경주의자로 포장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지만 인간을 자연을 일부로 생각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노력해 온 인디언들의 세계관과, 그에 기반을 둔 삶의 방식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두와미시-수콰미시 족 인디언 추장 세알트(시애틀)이 말한 대로 “모든 것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 주는 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 이주자들은 강력한 무기를 내세워 경제 발전과 산업화의 이름으로, 또는 기독교 전파와 문명화를 명목으로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내몰았다. 백인 개척자들에게 북아메리카 대륙의 땅은 소유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온 인디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요 소중한 집이었다. 또한 ‘위대한 정령’에게서 물려받은 땅일뿐만 아니라 선조들이 묻혀 있는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였다. 미국 정부가 파견한 평화 조약 위원회 위원들의 인디언 보호 구역 제안에 대하여 사탄타 추장은 “나는 정착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초원을 떠돌아다니고 싶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랫동안 키오와 족은 대초원에서 들소를 잡고 살아 왔기 때문이다. 한편 델라웨어 족은 아이들을 키울 때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들판이나 산에 나가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했다. 들판이나 산 같은 자연만큼 훌륭한 교육장이 없기 때문이다. 인디언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웠던 것이다.
마지막 홍인종이 이 황야와 함께 자취를 감추고, 그에 대한 기억이 한낱 대초원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구름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강변과 숲이 여전히 이곳에 존재할까요? 우리 인종의 영혼이 하나라도 남아 있게 될까요?
- 추장 세알트의 연설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우리에게 평화를 알게 하소서.
달이 떠 있듯이 오래도록
강물이 흐르듯이 오래도록
태양이 빛나듯이 오래도록
풀이 자라듯이 오래도록
우리에게 평화를 알게 하소서.
- 샤이엔 족의 기도
인디언들의 세계는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인디언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달 이름을 정하였다. 그들의 달력은 음력에 가깝겠지만, 어떤 부족은 한 해를 열세 달로 나누기도 하였고 다른 부족은 스물네 달로 나누기도 하였다. 계절이 변하는 동안 주위 풍경의 변화 또는 이러한 변화를 겪는 내면 풍경 등을 주제로 삼아 달의 이름을 붙였다. 1월이 아리카라 족에게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라면 아라파호 족에게는 ‘바람 속 영혼처럼 눈이 흩날리는 달’이다. 2월이 클라마트 족이 ‘춤추는 달’이라면 3월은 모호크 족에게 ‘훨씬 더디게 가는 달’이 된다. 4월은 체로키 족이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다. 아파치 족은 5월을 ‘나뭇잎이 커지는 달’이라고 했고 아라파호 족에게 6월을 ‘더위가 시작되는 달’이었으며 유트 족은 7월을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이라고 부른다.
8월은 풍카 족에게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달’이고 9월은 파사마퀴다 족의 ‘가을이 시작되는 달’이다. 마운틴 마이두 족은 10월을 ‘어린 나무가 어는 달’이라고 했고 체로키 족은 11월을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이라고 했다. 그리고 12월은 샤이엔 족의 ‘늑대가 달리는 달’이자 수 족의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이고, 퐁카 족에게는 ‘무소유의 달’이었다. 북아메리카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그 문학적 상상력은 일 년 열두 달의 이름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인디언식으로 이름 붙인 열두 달을 표현한 이재은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인디언의 속삭임』 속 12개 장들을 차례차례 펼쳐 나가면, 자연의 변화를 바로 곁에서 느꼈던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 앞에는 오직 하나의 삶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 아파치 족의 결혼식 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