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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013)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상품명 과학과 종교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013)
정가 14,000원
판매가 13,300원
저자/출판사 토머스딕슨 /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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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244
발행일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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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038)

    14,500원

책소개


『과학과 종교』는 과학과 종교 각각의 발생과 성취를 긍정하는 바탕 위에서, 양측이 빚어온 갈등의 양상과 그 쟁점을 짚어보며, 몇 가지 역사적 논쟁 현장을 아울러 살핀 책이다. '과학과 종교'에서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에 주목하는 이 책은 어떻게 해서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대해 지금처럼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며, 지식에 대한 어떤 선입관들이 개입되어 있는지 철학적으로 탐구했다. 또한 이러한 지적 논쟁들에서 언외 의제를 만들어내는 정치적·윤리적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저자소개


저자 : 토머스 딕슨


저자 토머스 딕슨(Thomas Dixon)은 퀸 메리 런던 대학의 역사학 부교수. 국제과학종교학회 회원이며 현대지성사 전문가다. 〈타임스 문예부록Times Literary Supplement〉에 글을 썼고, 심리학의 역사와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철학에 관한 책을 펴냈다. 2009년에 본서로 영국 과학사학회 딩글상(Dingle Prize)을 수상한 바 있다.


역자 : 김명주


역자 김명주는 성균관대 생물학과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1만 년의 폭발』 『다윈 평전』 『생명 최초의 30억 년』 『공룡 오디세이』 『아인슈타인과 별빛여행』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 『해답은 DNA』 등이 있다.




목차


1. 과학과 종교의 논쟁에서 실제로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2. 갈릴레이와 과학철학 
3. 신은 자연 속에서 행동할까 
4. 다윈과 진화 
5. 창조론과 지적설계 
6. 마음과 도덕 

머리말/ 감사의 말/ 참고문헌/ 독서안내/ 역자 후기/ 도판 목록




추천사


2009년 영국 과학사학회 딩글상 선정의

딕슨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과학과 종교의 관계’라는 복잡한 쟁점을 이해하는 데에 과학의 역사가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광범위한 사례를 통해 멋지게 입증한다. 이 책은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 탄탄한 논증, 비전문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가독성을 갖추고 있다. 과학사 분야나 학계 밖의 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책 속으로


현대과학의 관찰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종교적 경험도 앎을 찾는 공동의 시도와 그것을 위한 오랜 협업 과정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종교의 경우, 당신의 망막에 닿는 빛과 신의 영광에 대한 당신의 생각들을 매개하는 것은, 특정한 성서의 오랜 역사와, 그 성서에 대해 인간사회들이 연속적으로 시도해온 독해와 해석이다. 그리고 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동의 노력에서 얻은 한 가지 교훈은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의 스승들은 과학의 스승들만큼이나, 관찰된 것 뒤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 그들의 불안정한 직관과 믿음을 뒤집어놓을지도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23쪽) 

역사가들은, 과학과 종교의 충돌로 기억되는 갈릴레이 사건이 실제로는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오래된 정치적 질문과 관련된 분쟁이었음을 밝혀냈다. 로마에서 반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고, 30년전쟁으로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가톨릭 세력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서로 경쟁하는 지식의 원천들에 대한 질문을 그 자신의 해석과 추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갈릴레이의 주장은 극도로 건방진 태도이자 교회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보였다. (58쪽) 

인간이 ‘창조의 정점이자 완성’이 아니라 ‘개선된 유인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뿐 아니라 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윌버포스는 지적했다. 옥스퍼드 회합에서 윌버포스는 발언의 막바지에, 1000명에 가까운 군중 사이에 앉아 있던 다윈의 가장 충실한 옹호자 토머스 헉슬리를 돌아보며, 그의 원숭이 조상이 할머니 쪽인지 할아버지 쪽인지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헉슬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숙한 과학 토론에서 지적 능력과 영향력을 헛소리나 지껄여대는 데 이용하는 사람을 할아버지로 갖느니 차라리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갖는 편이 낫다고 답했다. (123~124쪽) 

많은 창조론자들은 진화와 관련한 특정한 과학적 결과들을 거부하는 반면, 과학의 성공을 흠모하면서 그 성공을 모방하고 심지어는 도용하려고 시도한다. 모리스와 창조과학자들이 근본주의적 반진화를 대안적 과학으로 포장한 이유 중 하나는, 공립학교에서 진화과학의 대안으로 창조론을 가르치게 하려는 자신들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152쪽)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면서 동성애가 의학적 질병으로 분류되었다. 그 결과 동성애는 비난하기보다는 동정해야 하는 자연적 상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질병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법이 바뀐 1960년대 영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정의하고 강화하는 종교와 의학의 시도들이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은, 오늘날 동성애가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고수하는 소수의 조직들이 바로 종교집단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199쪽)




출판사 서평


자연과 신에 관한 우리의 신념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어떻게 해서 우리는 과학과 종교에 대해 지금처럼 
생각하게 되었는가? 

17세기 갈릴레이, 19세기 다윈, 20세기 스코프스 재판까지 
과학과 종교 간 오랜 갈등의 본질은 주도권 쟁탈이었다 

앎을 향해 나아간 인류의 두 갈래 길, 과학과 종교
 
현대인은 흔히 말한다. 과학은 ‘앎’에, 종교는 ‘믿음’에 복무한다고. 과학은 합리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인류를 발전으로 이끄는 반면, 종교는 맹목적이고 보수적이어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고 많은 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애초에 과학과 종교는 모두 ‘앎’에 대한 좀더 깊은 숙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밤하늘에 뜬 달과 별을 올려다보며 그 운행의 물리적 메커니즘을 궁금해하는 이가 있는 반면, 그 조화로운 사이클의 장엄함과 광막함에 경외감을 품는 이도 있다. 
그 앎에 대한 추구의 결실은 각기 달랐다. 과학은 물리 현상의 이면에 있는 실제의 원리를 탐측하며 거듭 갱신해온 최신의 메커니즘을, 종교는 저 복잡하고 정교한 우주를 만들고 관장해온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존재의 신성과 그 성서적 교리를 결실로 맺었다. 그런데 두 영역은 공통적으로 역사와 문화, 다시 말해 앎을 찾기 위한 오랜 시도와 협업 과정을 통해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뤄냈다. 이 책은 이러한 과학과 종교 각각의 발생과 성취를 긍정하는 바탕 위에서, 양측이 빚어온 갈등의 양상과 그 쟁점을 차근차근 짚어보며, 몇 가지 역사적 논쟁 현장을 아울러 살핀다. 

과학과 종교 간 갈등의 본질은 사회 주도권 쟁탈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제목 그대로 ‘과학과 종교’다. 양측은 근대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우주의 원리에 관한 해석을 두고 논리 다툼을 벌여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운명의 짝패와도 같이 한 덩어리의 인문학적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 기간에 과학은 이전 시기에 종교가 쥐고 있던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의 상당 부분을 빼앗아온 양상을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이다. 과학이나 정치나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해석에서 자신들의 가치가 단연 타당함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당대 사회에 자신들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책 저자는 “당대에 발생하는 사상들 간의 대결은 훨씬 더 크고 깊은 곳에 있는 구조들의 가시적인 말단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이 책 전체에 걸쳐 추구하는 목표가 “어떻게 해서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대해 지금처럼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것, 지식에 대한 어떤 선입관들이 개입되어 있는지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지적 논쟁들에서 언외 의제를 만들어내는 정치적·윤리적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임을 밝힌다. 

종교 진영의 주도권 틀어쥐기 
중세까지 종교가 단단히 틀어쥐고 있던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은, 근대기에 접어들며 이성과 합리의 기치가 굳건해지면서 점차 과학 쪽으로 기울어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과학이 종교에 판정승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과학적 ‘합리성’이 대다수 인류에게 그야말로 합리적인 가치로 인준되면서, 애초 종교 쪽에서는 절대 수용 불가의 영역이었던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도 그 ‘합리성’과 ‘타당성’을 일부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어서, 종교는 그들이 용인한 과학적 합리성의 가치를 교묘하게 비틀어 그들의 새로운 교리 해석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신앙을 가진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분야에서 명쾌히 설명해내기 힘든 지점들을 가리키며, 그런 부분들에 바로 ‘신의 섭리’가 투영되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양자물리학 등 최신의 과학이 보여주는 사뭇 기이하고 불확정적인 면모를, 신이 행동할 수 있는 모종의 ‘틈새’로 이용하려는 끼워맞추기식 논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학이 합리라는 새 시대의 무기를 통해 세계의 해석에서 우위를 점하기 전까지, 종교 진영은 그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과학의 의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지한 바 있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가 주도권 싸움을 벌인 대표적 현장으로서 아래의 세 가지 역사적 장면을 제시한다. 

#1 _1633년 갈릴레이 재판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이 우주에 관한 정확한 기술이리라 짐작한 갈릴레이는, 당대에 새로 개발된 망원경을 활용해 천체를 상세하게 관측한다. 이를 바탕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추기경 마페오 바르베리니가 평소 그의 연구에 대해 지지와 찬사를 보내온 데 고무된 갈릴레이는, 1632년에 호기롭게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다. 그러나 교황 우르바누스 8세로 취임한 마페오 바르베리니는 갈릴레이의 기대와 달리, 이단적 학설을 주창했다며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린다. 관찰과 추론을 통해 자연세계를 관찰한 행위 자체가 죄는 아니었다. 종교개혁 시기에 접어들며 보수적 색채를 강화하던 당대 로마가톨릭 사회에서 교회 교리를 거스르는 역린의 죄를 그는 범한 것이었다. 

#2 _1860년, 다윈을 둘러싼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논쟁 
1831년 비글호에 승선해 5년에 걸쳐 남아메리카 해안을 샅샅이 훑은 다윈은 동식물을 비롯해 온갖 자연물을 탐구하며 탁월한 자연학자로 성장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문헌에 영감을 받으며 자신의 연구를 정리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핵심으로 한 저서 『종의 기원』을 1859년에 발표한다. 이듬해인 1860년 옥스퍼드에서 열린 학술토론 현장에서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는 다윈주의를 신에 대한 모욕이라 비판하며 다윈과 토머스 헉슬리 등을 조롱했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영국의 과학과 종교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이익집단들 간의 충돌이었다. 약 20년 후인 1879년, 다윈의 장례식에서 영국국교회는 그의 진화론을 사실상 승인했다. 그러나 이때도 교회는 성서와의 충돌, 인간의 자유의지나 도덕, 영혼 등의 개념과의 양립 불가능을 이유로 진화론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갈릴레이로부터 두 세기가 지났지만, 종교의 패권은 여전히 상당했다. 

#3 _1925년 스코프스 재판, 그리고 오늘 
다윈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종교 간 논쟁은 특히 진화에 대한 논쟁으로 집중되어왔다. 1925년 미국에서 열린 이른바 ‘스코프스 재판’은, 창조론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가르친 한 교사를 가운데 두고 벌어진 사회 세력 간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교사 스코프스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후 한동안 미국의 학교 대부분은 과학 교과과정에 진화론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약 40년 후인 196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교 지정 금지를 명문화한 미국헌법 수정조항 제1조에 따라 반진화법이 위헌임을 분명히했다. 이후 종교 진영은 ‘지적설계’나 ‘창조과학’의 개념을 등장시키며 반격을 꾀하고 있으나, 헌법 수정조항 제1조에 대한 대법원의 확고한 신념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갈등은 공립학교 교과과정을 둘러싼, 역시나 ‘통제’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다. 

주도권을 쥔 현대 과학에도 허점은 있다 
이처럼 종교의 탄압 혹은 방해에 맞서온 과학 진영은, 현대에 이르러 세상을 분석하고 설명해내는 데 있어 월등한 우위를 점하며 확고한 논리적 승리를 거둔 것 같았다. 그러나 종교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마음’과 ‘도덕’의 분석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의외로 허술한 면모를 노출하고 있다. 그 예로, 이른바 ‘진화윤리학’이 보이는 한계를 들 수 있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 감정이 진화의 산물이라며 과학의 잣대를 강조하는 이 학문은, 인류가 진화에 의해 특정한 자연적 본능들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러한 본능들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라는 윤리적 질문에 맞닥뜨려서는 한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다. 폭력, 절도, 간통을 범하게 만드는 본능들도 나름의 진화적 기원이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과학이 제기하는 현대의 윤리, 혹은 미래에 대한 경고는, 지난날 종교가 사람들에게 행했던 ‘통제’의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 종교의 선지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신이 분노해 대재앙을 내리리라는 경고를 내리곤 했는데, 의학을 비롯한 현대의 과학은 이와 비슷하게, 부도덕한 성적 탐닉, 탐식, 탐욕을 멈추지 않으면 성병, 비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궤멸적 자연재해 등을 겪게 되리라고 경고하고 있다. 내용은 바뀌었지만 본질적인 구조는 똑같다. 과학이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예측을 받아, 정책 입안자와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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