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새로나온 책
공급사 바로가기
붓다북,불교용품,불교서적,불교사경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상품명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
정가 30,000원
판매가 27,000원
저자/출판사 채상식 / 혜안
적립금 1,350원 (5%)
수량 수량증가수량감소
페이지수 403
발행일 2017-08-30
상품간략설명 [양장본]
SNS 상품홍보
SNS 상품홍보

개인결제창을 통한 결제 시 네이버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합니다.

상품 옵션
옵션 선택

(최소주문수량 1개 이상 / 최대주문수량 0개 이하)

사이즈 가이드

수량을 선택해주세요.

위 옵션선택 박스를 선택하시면 아래에 상품이 추가됩니다.

상품 목록
상품명 상품수 가격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 수량증가 수량감소 (  1350)
총 상품금액(수량) : 0 (0개)
바로구매하기 장바구니 담기 SOLD OUT 관심상품등록
부처님오신날

이벤트

관련상품

  • 비슬산의 도인, 일연선사 (대구의 뿌리 달성 산책18)

    15,000원

책소개


오랫동안 고려불교사와 일연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 채상식 교수는 일연 연구의 결정판인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에서 《삼국유사》라는 필터를 거쳐 그에게 접근하는 방식보다는, 일연을 중심축에 두는 연구방향을 택하였다.




저자소개


저자 채상식은 부산 동래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 
1979년~1981년 청주사범대학(현 서원대) 전임강사 
1981년~현재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저서 및 편저 
『高麗後期 佛敎史硏究』(일조각, 1991), 『범어사』(공저)(대원사, 1994), 『일본 고중세 문헌 속의 한일관계사료집성』(공편)(혜안, 2005), 『최해와 역주 『졸고천백』』(편저)(혜안, 2013)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일연 연구의 기초적 접근 
Ⅰ. 일연 연구의 현황과 과제 
1. 머리말 
2. 「일연비문」을 둘러싼 문제 
3. 일연의 사상적 경향 
4. 『삼국유사』의 찬술기반 
5. 맺음말 

Ⅱ. 「일연비」의 현상과 복원 
1. 머리말 
2. 일연비가 걸어온 자취 
3. 일연비 탁본의 소개 
4. 맺음말 

제2장 일연의 생애와 활약상 
Ⅰ. 일연의 생애와 迦智山門의 추이 
1. 머리말 
2. 「일연비문」에 대한 검토 
3. 그의 생애와 가지산문의 동향 
4. 맺음말 

Ⅱ. 일연의 단월과 그 성격 
1. 머리말 
2. 일연을 초청한 鄭晏 
3. 「일연비음기」에 새겨진 단월 분석 
4. 일연의 강화도 초청 
5. 일연 만년의 단월 
6. 맺음말 

Ⅲ. 「일연비」에 보이는 淸?과 山立의 정체 
1. 머리말 
2. 문제의 제기 
3. 청분과 산립을 별개의 인물로 보는 설 
4. 양자를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 
5. 맺음말 

제3장 일연의 사상과 특징 
Ⅰ. 일연의 행적과 사상적 경향 
1. 머리말 
2. 그의 행적과 선사상 
3. 그의 저술과 사상적 경향 
4. 연구의 전망 
5. 맺음말 

Ⅱ. 일연의 『重編曹洞五位』에 보이는 사상과 특징 
1. 머리말 
2. 내용상 특징 
3. 일연의 편찬 의도와 역사성 
4. 맺음말 

Ⅲ. 仁興社와 관음신앙 
1. 머리말 
2. 인흥사의 사격과 판각 활동 
3. 인흥사의 관음신앙과 그 의미 
4. 맺음말 

제4장 仁興社刊 『歷代年表』와 『三國遺事』의 찬술 
Ⅰ. 『역대연표』의 내용 분석 
1. 머리말 
2. 『歷代年表』에 대한 연구성과 검토 
3. 『歷代年表』의 현상과 내용 분석 
4. 맺음말 

Ⅱ. 『삼국유사』의 찬술 기반 
1. 머리말 
2. 일연의 학문 경향과 시대인식 
3. 『삼국유사』 찬술의 기초 작업 
4. 『삼국유사』 찬술의 의미와 독창성 
5. 맺음말 

Ⅲ. 『삼국유사』의 간행과 범어사본의 자료적 가치 
1. 머리말 
2. 현전 『삼국유사』 판본 소개 
3. 범어사 소장 『삼국유사』와 주요 판본의 비교 
4. 범어사 소장 판본의 자료적 가치 
5. 맺음말 

제5장 결론 

부록 역주 普覺國師 一然碑?陰記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일연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삼국유사』에 담긴 역사상과 시대정신을 구명한다! 
일연(一然, 1206~1289)은 『삼국유사』와 연관해서 호명되어왔다. 선승(禪僧)의 삶을 살았던 일연은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삼국유사』의 찬자라는 점이 중시되었다. 지금껏 『삼국유사』에 대한 높은 사학사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연의 행적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는 형편이다. 고려시대 가장 격동기였던 13세기를 살았던 일연의 생애가 중요한 것은 그가 역사가이기 이전에 승려라는 사실과, 그가 생존한 시기가 민족사상의 일대 격변기라는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오랫동안 고려불교사와 일연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 채상식 교수는 일연 연구의 결정판인 이 책에서 『삼국유사』라는 필터를 거쳐 그에게 접근하는 방식보다는, 일연을 중심축에 두는 연구방향을 택하였다. 
일연은 최충헌이 권력을 장악한 시기에 경상도 장산(현 경산)에서 한미한 출신으로 태어났다. 고려가 몽고와 근 30년간의 전쟁을 치르는 시기에는 가지산문에 입문하여 수선(修禪)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초청받아 대장경 조성의 막바지에 참여하였다. 이를 큰 전환점으로 하여 일연은 불교교학을 비롯한 유학과 제자백가 등의 다양한 학문에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중편조동오위』를 편수하기도 하였다.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원간섭기를 열었던 왕정복고 세력에 의해 일연은 국왕 및 중앙 정치권력과 연결이 닿았다. 이후 그는 국존에 책봉될 정도로 불교계를 대표하게 되었다. 일연은 만년에 황폐해진 고려사회를 재조(再造)하려는 노력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선승의 삶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사상과 신앙을 표방하였다. 당시 시대상황이 그로 하여금 수행 못지않게 구원과 희망을 강조하는 교화에 눈을 돌리도록 하였다. 이때 그가 신앙을 강조하면서 귀착한 것은 사서(史書)의 편찬과 관음신앙이었다. 바로 『삼국유사』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일연의 저술과 편수한 서적이 100여 권에 이른다는 것은 제자 산립이 “화상의 문풍(門風)은 광대(廣大)하여 모두 갖추었다.”라고 표현한 것과 통한다. 일연의 저술은 모두 현전하지 않아 그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현전하는 『삼국유사』와 17세기 일본 조동종에서 간행했던 일연이 편수한 『중편조동오위』를 통해서 그의 사상적·신앙적 폭과 깊이를 가늠해 보면, 일연은 선종과 교학을 망라하였으며, 밀교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 개략적인 일연 소개에 이어, 본서에서 다룬 주요 내용 몇 가지를 간추려본다. 


일연의 행적은 2006년 그의 탄생 800주년을 맞아 군위 인각사에 일연비를 복원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게 되었다. 이는 파손되기 이전에 만든 일연비의 탁본첩을 대조, 판독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일연이 원종 2년(1261) 왕명에 따라 강화도의 선월사에 머물면서 ‘멀리 목우화상(牧牛和尙) 지눌(知訥)을 계승했다’란 구절이 밝혀져 「일연비문」 필사본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또 일연의 행장과 비음기를 찬술했으며 일연비를 건립한 인물이 청분(淸?)임이 확인되었다. 청분은 비음기를 찬술한 산립이며, 충렬?충선왕 양대에 걸쳐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인물로서 가지산문의 핵심적인 위치에 오른 승려이다. 추측컨대 청분은 가지산문이 일연을 정점으로 크게 세력을 형성하여 불교계의 중심 교단으로 등장하게 되자, 일연의 입적 후 그의 계승자로 추대된 인물로 보인다. 
한편 일연은 비슬산에서 근 20여 년 수행하다가,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주석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대장경 조판에 참여하였으며 간접적이지만 수선사의 혜심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일연의 행적은 정치권력의 향배에 따라 전개되었다. 일연이 대선사가 되고 원종의 명에 의하여 선월사에 주석하게 된 것은 왕정복고 세력들과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일연은 수선사를 대신한 계승자로 부각되었으며, 중앙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주로 경상도의 여러 사찰에 주석하면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그러다가 충렬왕의 명에 의하여 운문사에 주석하고, 충렬왕이 동정군의 격려차 경주에 갔을 때 일연을 행재소에 불렀다. 이어 일연은 국존에 책봉됨에 따라 승려로서 최고 승직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가지산문은 왕권과 밀착하여 무신란 이후 주류를 이루던 수선사와 백련사를 대신하여 원간섭기에 불교계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일연이 만년에 이르러 최고의 승직과 그가 속한 가지산문이 부상하는 등의 화려한 길을 선택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일연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기 위해 현실참여의 길을 모색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일연으로서는 많은 고뇌와 자기 성찰, 암울한 시대상에 대한 인식 등이 따랐을 것이다. 
결국 일연이 본래 지향했던 승려로서의 목표인 수행과 교화를 위한 노력은, 장년기 이후 그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한 단월들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되었던 측면이 있다. 물론 그가 비슬산을 떠난 것은 그가 속한 가지산문의 재건과 불교계가 처한 현실을 타개하고 개혁에 힘쓰기 위한 의도였음은 충분히 짐작된다. 그러나 일연의 만년에 연결된 단월들은 대부분 종교적 열의와 귀의처로 일연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충렬왕과 그의 주변 측근세력들에게는 불교계의 지원이라는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연은 현실적으로 그 단월들의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만년에 나아간 길은 『삼국유사』의 찬술이었다. 이를 통해 무신정권, 대몽항전, 원간섭기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고통을 받았던 민중들에게는 구원과 희망을 제시하고, 이민족의 침탈에 대해서는 민족의 자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일연은 일차적으로 공안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한 선승이다. 그의 비문에 보이는 비슬산에서 수행할 당시에 남긴 오도송과 인각사에서 임종할 때 나눈 선문답은 간화선을 중시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현전하고 있는 『중편조동오위』를 비롯한 그의 저술을 통해 일연은 다양한 선사상의 흐름을 종합하고 점검하려는 태도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일연이 수행한 간화선은 당말에 임제종에서 주창한 선수행 방법이며, 대혜종고가 체계적으로 정립한 간화선만을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일연은 12세기에 불교계가 북송으로부터 받아들인 다양하면서도 새로운 선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일연은 선승이면서도 다양한 불교를 포용하고 밀교까지도 수용하는 탄력성을 가진 사상적 경향을 보였다. 곧 일연의 사상은 수직적, 원리주의적인 경향을 띤 것이 아니라 수평적, 포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일연이 조동종에 심취한 선승으로서 조동선을 선양하기 위해 『중편조동오위』를 찬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연은 간화선에 입각한 선승으로서 다양한 선사상을 비교?종합하고 더욱이 당시 간화선을 표방한 임제종과는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조동종의 기본서인 『조동오위』에 관심을 갖고 그 가운데 의심이 가는 내용에 대해 보충하고 몇 가지 내용에 대해서는 나름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 이는 일연이 운문종의 선경(善卿)이 찬술한 『조정사원』을 중편한 것과도 상통한다. 더욱이 일연은 유학을 비롯한 제자백가에도 밝았을 정도로 다양한 학문체계를 갖추었다. 
그러나 일연은 선사상과 교학 및 밀교에만 머물지 않고 신앙적인 측면을 크게 강조하였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인흥사에 주석할 당시 일연은 왕정복고와 원간섭기로 이어지는 시대적인 상황을 목도하였다. 그때까지 선승인 일연은 이 시대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교화와 신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따라서 전란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농민과 천민들의 희망과 구원을 향해 노력하였다. 14년간 인흥사에서 주석할 때 그의 두드러진 행적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관음신앙의 표방이며, 다른 하나는 사서의 편찬으로, 『역대연표』를 제작했고 그를 기반으로 『삼국유사』의 찬술에 착수하였다. 
일연이 주관한 『역대연표』는 사서 편찬을 위한 도구로서 말 그대로 ‘연표’이다. 아울러 인흥사에서 간행한 『법화경보문품』 등은 관음신앙과 다라니신앙, 교훈을 주기 위한 내용을 담은 불서들이다. 이는 『삼국유사』 편목 중에 신주?감통?피은?효선 등이 민중들을 향해 가장 강조한 편목이라는 점과도 통하는 바, 현상과 방편의 영역인 ‘상(相)’과 ‘용(用)’으로서 밀교의 고승을 통한 신통력, 신앙심에 바탕한 감통, 도가 은사(隱士)들의 행적,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인 효 등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러한 내용은 인흥사에서 간행한 불서류가 지향하는 의도와 부합하며, 특히 일연이 말년에 그의 제자 선린에게 간행을 부탁할 정도로 깊이 간여하였던 『인천보감』의 찬술과 연관된다. 
결국 일연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비록 선사상을 바탕으로 한 수행관에 입각하였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하기 쉬운 신앙적인 측면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일연의 신앙적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인흥사를 통한 관음신앙이었다. 이는 또한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중들에게 신앙적 대안을 목표로 하여 일연이 찬술한 『삼국유사』로 연결된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신앙과 역사가 합일점을 모색한 것이다. 


일연이 인흥사에 주석하면서 간행한 『역대연표』는 『삼국유사』라는 사서를 찬술할 때 사용하기 위한 ‘연표’이다. 형태상으로 『역대연표』와 『삼국유사』 왕력의 기재양식이 거의 일치한다. 또 『역대연표』에서는 마지막 장에 신라?고구려?백제의 순으로 역대 왕명과 재위년수를 밝히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즉위년칭원법을 따르고 있다. 『역대연표』는 현전하는 우리나라 연표 중 가장 앞서는 목판이다. 
그렇다면 일연은 『삼국유사』를 찬술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갖추었을까. 일연은 대장경을 열람하면서 여러 장소(章疏)까지 통달한 인물이며, 나아가 제자백가 등 불교 이외의 전적에 관한 독서량과 여러 학문에도 박식하였다. 또 “뿌리와 마디가 얽힌 것과 소용돌이가 치는 물결처럼 글씨가 험하여 추측하기 어려운 곳까지 살을 긁어내고 뼈를 발라내어 소통시켜”라는 것과 “많은 의문을 쪼개어 풀어냄이 맑은 거울에 비추는 것과 같았다.”라고 한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일연은 사물을 대하는 치밀한 태도와 고증하는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역사서의 편찬은 시대정신이 확립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장경 조성에 참여함으로써 일연은 현실에 대한 확연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당시 상황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인식한 것은 무신세력과 몽고였다. 그가 가장 고민한 것은 몽고와 전쟁을 치르면서 무너진 ‘민족’의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는 문제와 농민과 천민들의 피폐된 삶을 개선하는 문제였다. 이는 사서를 찬술하고 신앙적으로 관음신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시대인식이 만년에 찬술한 『삼국유사』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의도를 갖고 찬술한 『삼국유사』의 인용서목을 보면, 일연이 직접 자료를 수집한 것이 많지만 만년의 일연으로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집필은 어려움이 많이 따랐을 것이다. 따라서 『삼국유사』는 물론 일연이 주축이 되었지만 그의 단독 찬술이라기보다 그의 문도들이 참여하여 만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국유사』가 관찬이 아니면서도 방대한 자료의 수집과 내용의 충실성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일연을 정점으로 가지산문이 불교계의 중심 교단으로 부각된 측면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일연은 고려사회 내부의 변화와 대외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삼국유사』는 국가, 국왕 중심의 역사관으로 권신을 비판하는 내용과 단군으로부터 민족사의 체계를 정립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일연은 궁극적으로는 고려를 재조(再造)하려는 역사의식을 가졌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삼국유사』의 찬술로 나타났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성격을 야사, 설화민담집, 하나의 만록(漫錄), 불교(문화)사 등으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고, 시대의 고민과 일연 및 불교세력의 사관을 반영한 역사서로 읽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품후기 상품의 사용후기를 적어주세요.

게시물이 없습니다

상품문의하기 모두 보기



붓다북 빠른메뉴

팝업닫기
팝업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