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간’이라는 주제는 ‘공간’과 함께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철학과 종교에서 주된 관심거리 중 하나였다. 당연히 불교에도 ‘찰나’부터 ‘아승기겁’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대한 다양한 개념이 있으며, 경론에도 시간과 관련된 수많은 언급이 있고, 이를 해석하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이 책은 초기불교부터 화엄불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교 종파 속에서 전개된 시간과 존재에 관한 논의를 한문 원전들에 의거해 추적하며 해설한, ‘불교 시간론’에 대한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1.

불교는 윤회의 족쇄에서 벗어남, 즉 해탈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는 연기, 공, 무상 등의 교의에 기반한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시간에 대한 관심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변화, 곧 무상無常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곧 불교에서의 시간에 대한 관심이 무상에 대한 관심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고, 불교에서 시간이 논의되는 주요한 이유가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 등에서 나타나는 ‘시간에 대한 집착을 소멸시키고자 함’이라는 말이 된다.

이 책은 불교 한문 원전들에 나타난 불교 시간론을 밝히려고 시도한 책이다. 즉 대소승의 다양한 경론에 담긴, 시간에 대해 논의하는 주요 원문을 제시하고, 이를 번역하고, 해설과 주를 붙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되거나 소개되지 않은 다수의 내용이 들어 있다.

즉 저자는 불교의 시간론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밀린다왕문경』에서는 12연기론적 시간관이 나타나고,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교법론 연구)에서는 번뇌론적 시간관이 나타나며, 용수의 『중론』에서는 인과부정론적 시간관이 나타나고, 승조의 「물불천론」에서는 운동부정론적 시간관이 나타나며, 현장의 『성유식론』에서는 종자론적 시간관이 나타나고, 법장의 「10세장」에서는 법계연기론적 시간관이 나타남을 밝히고 있다.

시간에 대한 불교의 일반적 관점은 당나라의 보광普光이 『구사론기』에서 말한 “시간은 따로 실체가 없고 법에 의거해 가립한다”(時無別體 依法而立)는 문장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시간은 심리적이거나 물리적인 현상(法)의 외부에 자립적으로 있는 실체가 아니며, 또한 심리적이거나 물리적인 현상의 변화에 의거해 가상적으로 수립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서양철학의 시간관과는 다르다.

서양철학에서는 시간을 경험에 앞서면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른바 선험적인(a priori)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반면, 불교의 시간은 선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후험적인(a posteriori) 것에 가깝다. 이는, 불교에서는 시간과 존재에 관한 집착의 소멸을 의도하기에, 시간과 존재를 실체화할 우려가 있는 선험적 논의들을 삼간 것이라고 여겨진다.

한편 저자는 번역과 해설에서 한자漢字 한 글자로 표현되는 불교 용어를 가급적 두 글자로 바꿔 표현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예컨대 탐貪, 진瞋, 만慢은 탐욕, 진노, 오만으로 바꾸어 표현하였고, 업業은 행업行業으로, 식識은 인식認識으로, 색色은 형색形色으로, 공空은 공허空虛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는 다소 낯설 수도 있지만, 원전을 이해하는 데 가독성可讀性을 높여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2.

이 책은 불교의 시간론을 주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주제의 배경적 이해를 위해 저자는 관련된 주요한 교리들도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불교 시간론을 불교의 일부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불교 시간론을 통해 불교 전반을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즉 시간론을 통해 불교학의 인식 지평을 확대한 것이다.

불교의 시간론과 관련해서는 기존에 2종의 번역서가 출간되어 있을 뿐이다. 국내에 관련 연구가 축적되어 있지 않은 반증이다. 이 책이 불교의 시간론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되어 이후 보다 폭넓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소개

정은해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교육학·사회학을 수학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2013~14)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존재란 무엇인가』, 『마르틴 하이데거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존재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성』, 『소리나리의 철학산책』, 『현대 존재론–하이데거의 자화사건적 존재론과 가다머의 지평융합적 존재론』, 『유교명상론–불교와의 비교철학』, 『마음과 시간–불교견성론의 현상학적 해명』이 있다.

목차

서문·5

서론: 불교 시간론의 개관 15

제1부 초기불교의 시간관 35

제1장 『밀린다왕문경』의 12연기론적 시간관·37

1. 시간의 존재 여부·38

2. 시간의 근본원인과 시작점·41

3. 시간의 부단성과 시작점·44

4. 시간의 근본의 불분명성·48

제2장 세친의 번뇌론적 시간관·53

1. 부파의 종류·53

2. 설일체유부의 번뇌론·55

3. 번뇌의 수면과 선정의 시간·71

4. 번뇌의 대상의 시간적 위치·78

제3장 세친의 3세 실유설 비판·94

1. 시간 논의의 지형·94

2. 유부의 3세 실유설·96

3. 세친의 3세 실유설 비판·110

4. 유식의 3세 실유설 비판·134

제2부 중관불교의 인과부정론적 시간관 143

제4장 『중론』의 시간론과 인과론·145

1. 「관시품」에서의 시간론·145

2. 「관인과품」에서의 인과론·157

제5장 『십이문론』의 시간론과 인과론·178

1. 「관유과무과문」·179

2. 「관삼시문」·209

3. 「관생문」·216

4. 중관학파 시간론의 의의·225

제3부 승조 불교의 운동부정론적 시간론 231

제6장 승조의 「물불천론」·233

1. 운동 여부에 대한 상반된 견해·233

2. 운동과 정지의 구별적 비분리성·241

3. 원인과 결과의 구별적 비분리성·249

4. 비연속적 연속으로서의 시간·251

제7장 승조의 「반야무지론」에 관한 문답·255

1. 지혜의 몸체의 무지 여부에 관한 문답·257

2. 경계의 관조의 무상 여부에 관한 문답·285

3. 지극한 당면함과 진실한 시인함의 유무에 관한 문답·293

제4부 유식불교의 종자론적 시간론 303

제8장 제1능변식과 종자론·305

1. 능변식의 세 종류와 능변의 두 종류·306

2. 제1능변식의 세 양상: 아뢰야식, 이숙식, 일체종자식·310

3. 종자의 분별: 차별적 공능, 실유, 상분·317

4. 종자에 관한 본유설과 신훈설·322

5. 종자의 6의미와 소훈과 능훈의 4의미·345

제9장 제3능변식의 양상, 자성, 3성·364

1. 제3능변식의 양상: 경계 요별의 6전식·365

2. 6전식의 성품과 행상·371

3. 6전식에서 3성이 함께함의 여부·373

제10장 시간의식론으로서의 5심론·382

1. 『유가사지론』제3권 속에서의 논란 문단·385

2. 규기의 『유가사지론약찬』에서의 두 논사의 설명·386

3. 규기의 『대승법원의림장』에서의 5심에 대한 설명·396

4. 둔륜의 『유가론기』에서의 네 논사의 설명·406

5. 선주의 『법원의경』에서의 평론·413

6. 청범의 『오심의약기』에서의 평론·420

제5부 화엄불교의 법계연기론적 시간관 429

제11장 법장의 화엄일승의 교리·431

1. 5교 10종론·433

2. 3성 동이론·444

제12장 법장의 원인 6의론과 연기 6상론·494

1. 원인 6의론·495

2. 연기 6상론·517

3. 문답에 의한 6상의 해석·520

제13장 십현 연기의 동전 비유·538

1. 십현 연기의 두 부문: 과증 부문과 원인 부문·539

2. 이체문에서의 두 부문: 상즉과 상입·547

3. 동체문에서의 두 부문: 상입과 상즉·577

제14장 십현 연기 무애법·592

1. 십현 연기의 의미건립·593

2. 십현 연기의 의미해석·595

3. 십현 연기를 세운 10가지 관점·624

4. 법장의 「보왕여래성기품」 해설·626

제15장 법장의 10세장·646

1. 10세장의 건립문·647

2. 10세장의 상섭문·650

3. 법장의 시간론의 의의·670

맺음말: 논의의 총괄적 요약·673

찾아보기·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