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본 사리 신앙과 사리를 마주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 이야기!
사리(舍利)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나온다. 하지만 그 사리로 인해 다시 새로운 믿음이 일어난다는 데 바로 사리 신앙의 묘리(妙理)가 있다. 생과 멸이 하나로 이어지는 원리가 바로 사리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사리란 무엇일까? 석가모니가 입적하고 남긴 신골(身骨)인 사리는 제자와 신도에게는 살아 있는 석가모니와 다름없었다. 이 사리는 처음엔 8개의 탑 안에 두어져 몇 백 년을 모셔져 있다가, 인도 아소카왕이 이를 꺼내어 84,000개로 나눈 다음 인도를 비롯해 동아시아 전역으로 보냈다. 세상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후 사리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영험을 보여주거나, 사리를 애써 친견한 이를 격려해 주듯이 기적을 일으켜주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는 불교 경전은 물론이고 역사서에도 많이 나온다.
오늘날 사리 영험담(靈驗談)은 신앙의 영역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도 하다.
신라가 급격히 발전한 데는 자장 스님이 가져온 사리 100과가 사회 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또 신라가 불국토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또 임진왜란의 큰 위기 속에서도 서산과 사명 스님이 불사리를 안전하게 보전하려 노심초사했던 것도 불사리를 통해 사람들의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사리는 사리를 중심으로 하여 숱한 어려움을 헤쳐 나왔던 사람들의 마음 그 자체다.
그래서 불사리 자체보다는 불사리를 매개로 하여 단합과 노력을 끌어낸 사람들의 믿음이야말로 진짜 사리라고 말해도 될 듯싶다. 풍속이 사상과 관습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사리 신앙이야말로 아름다운 풍속이었다고 할 만하다.
사리 신앙을 마주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역사이야기
자장스님이 중국에서 가져온 진신 사리를 봉안한 통도사 금강계단(본문 174쪽)
우리나라 사리 신앙의 역사가 1,500년이나 된다. 이 긴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피면 좀 더 일목요연해질 텐데, 개별 사례 연구는 세밀하게 이뤄졌으나 정작 필요한 통사적(通史的)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 〈사리〉는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리에 관련한 역사의 흐름을 정리하다보니 사리 신앙만이 아니라 사리를 마주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 900여 전통사찰 및 절터를 답사하며 《전통사찰총서》(사찰문화연구원) 전21권을 기획 공동집필했다.
저서로 《한국의 사리장엄》, 《한국의 사찰 현판》(전 3권), 《옥기(玉器) 공예》, 《진영(眞影)과 찬문(讚文)》, 《적멸의 궁전 사리장엄》, 《우리 절을 찾아서》, 《경산제찰을 찾아서》, 《닫집》, 《테마로 읽는 우리 미술》, 《강원도 명찰기행》, 《불교미술 이해의 첫걸음》 등 불교미술 관련서, 《전등사》, 《화엄사》, 《송광사》, 《불영사》, 《성주사》, 《대흥사》, 《낙가산보문사》, 《봉은사》, 《은해사》, 《갓바위 부처님 : 선본사사지》, 《낙산사》, 《대한불교보문종 보문사 사지》 등 사찰 역사 문화서들이 있다. 그밖에 한시(漢詩)에 보이는 사찰의 문화와 역사를 해설한 《명찰명시》를 지었으며, 조선시대 최대의 사찰답사기인 《산중일기》를 번역했다.
1985~1986년 호림박물관 학예사, 2000년 동국대학교 박물관 선임연구원, 1999~2000년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예술학과 겸임교수, 2006~2007년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방문학자(Visiting Scholar)였으며, 현재 능인대학원대학교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