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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아라한의 수행 - 9 위빠사나 선사들의 법문 모음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상품명 미얀마 아라한의 수행 - 9 위빠사나 선사들의 법문 모음
정가 16,000원
판매가 14,400원
저자/출판사 강종미 / 해장각
적립금 72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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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255
발행일 2023-08-01
ISBN 978899664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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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강종미의 『미얀마 아라한의 수행 9: 위빠사나 선사들의 법문 모음』은 〈미얀마 수행센타들 연락처〉, 〈때인구 사야도〉, 〈순룬 사야도〉 등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저자소개


저자 : 강종미

96년 미얀마로 건너가 마하시 선원, 쉐우밍 센타, 때인구 센타 등 명상센타에서 수행한뒤 Mahashi Mahagandayon과 만달레이 Pariyatti Sasana University에서 빨리와 삼장에 관해 배웠다. 한글로 옮긴 경전으로 앙국따라니까야 1,2가 있다.




목차


  • 서문

    미얀마 수행센타들 연락처

    때인구 사야도

    레디 사야도의 법통 제자,
    위빠사나빠라구 사야찌

    순룬 사야도

    웨부 사야도

    쉐우민 사야도

    삿담마란시 사야도

    모곡 사야도

    옥포 사야도

    아누룻다 존자



책 속에서


미얀마에서 존경받는
아라한, 큰스님들의 법문에서
위빠사나 수행 방법을 발췌하여 정리하였습니다.

선사들께서는
“어떤 대상을 취하여 관하든,
물질만 관찰하든, 느낌만 관찰하든, 정신과 물질을 번갈아 관하든…
앞 대상과 뒤따르는 대상의 다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대상이 끊어지는 자리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대상이 연결되어 보인다면 진짜 멸이 아니다.
낱낱이 끊어지는 것이 멸이다.
대상을 따라 쫓기만 하면 위빠사나와는 다른 길을 달려가는 것이다.
때가 무르익어 찰나의 생멸을 보는 그 순간 위빠사나가 시작된다.”라고 말씀하신다.

위빠사나 수행법을 전하기 위해 미얀마 큰스님들의 법문을 번역하였다.
-모곡 사야도, 웨부 사야도, 쉐우민 사야도와 따담마란디 사야도는 법문을 발췌하여
-때인구 사야도와 순룬 사야도는 제자들이 편집한 가르침을
-옥포 사야도는 위빠사나로써 숙고하는 지혜(삼마사나냐나) 부분을
-레디 사야도는 법통을 이어받은 제자(위빠사나빠라구 사야찌)의 편집본을 옮겨 적었다.



때인구 사야도

우옹킨 거사! 내가 직접 보고 체험한 진리만 말하겠다.
첫 번째 도와 두 번째 도에 들어가자, 마음이 천지개벽했기 때문에 내가 특별한 지혜를 얻었음을 알게 됐다. 마치 모태 맹인이 개안 수술을 받고 붕대를 풀자, 맹인 때의 추측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을 보는 충격이었다.
‘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웠다. 검정과 흰색의 대비처럼, 지혜를 얻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달랐다. 첫 번째 도를 증득하자 모든 대상이 ‘느낌’의 성품 하나로만 보이고 들렸다. 냄새, 맛, 접촉도 느낌을 통해 알았다. 예전에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 등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느끼는 성품 하나로만 대상을 알았다.
어떤 이가 ‘대상을 느낌으로 본다면 어떻게 여자, 남자, 개, 돼지…등을 구별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사야도께서 답하시길, 관념(빤냣띠)과 실재(빠라맛타) 둘을 섞어서 본다. 여자를 볼 때 앞마음은 느낌만 알고 뒷마음은 ‘오, 여자!’라고 안다. 이처럼 관념과 실재를 섞어서 안다. 듣고, 냄새 맡고, 먹고, 접촉하고,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느낌으로만 인지한다. 도를 증득한 수다원 성자에게는 대상의 느낌만 보인다. 그렇게 보고 알 때 사견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레디사야도의 법통제자
빠라구사야찌

범부는 더미, 관념(명칭), 형상, 연속성 등 관념(빤냣띠)을 대상으로 살아왔다. 관념으로 실재(빠라맛타)를 분석하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특히 ‘관념에 실재가 들어있고, 실재에도 관념이 있다’며 관념과 실재를 뒤섞는 것도 오류다. 실재 위빠사나(빠라맛타)가 될 수 없다. 실재 위빠사나에는 관념이 한 톨도 들어갈 수 없다. 관념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하면 실재하는 진리를 볼 수가 없다. ‘나’라는 유신견’에 묶여있는 상태이다. 유신견을 벗지 못하면 절대로 도·과에 들 수 없다. 유신견을 제거하려면 (관념이 섞이지 않은) 현재 실재만 관찰해야 한다.
사람을 보면서 ‘중생,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관념(빤냣띠)을 벗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액체인 우유에는 물의 성질이 내포되어 있다. 우유에서 물과 젖을 분리한다고 가정해 보자. 손으로 둘로 쪼갤 수 없다. 천으로 걸러도 안 된다. 마음으로도 나눌 수 없다. 하지만 레몬을 짜 넣은 뒤 응고된 부분을 들어내면 물만 남는다. 레몬은 우유와 물을 분리시키는 매개체다. ‘찰나 생멸’ 지혜가 있어야 관념과 실재를 분리할 수 있다. 지혜가 관념을 만드는 주체 ‘더미, 연속성, 형상’을 제거해 실재를 드러낸다. 이 지혜를 키우려고 현재 찰나의 생멸을 관찰하는 것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무수히 반복 관찰하면 관념(빤냣띠)인 ‘형상, 더미, 연속성’이 서서히 제거된다. 현재 실재(빠라맛타)인 찰나 생멸만 관찰하여 증장시키면 마하 위빠사나가 된다.


웨부사야도

남녀노소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을 쉰다. 들숨, 날숨이 콧구멍 입구에서 부딪치며 들어오고 나간다. 연달아 들어오는가? 끊어져서 들어오는가? 바람이 끊어지는가? 알아차림이 끊어지는가? 물질과 정신이 끊이지 않고 연속해서 일어나는가? 자주 끊기지는 않는가? 부처님께선 손가락 한번 튕기는 사이에 대상이 백만 번을 소멸한다고 일러주셨다. 숫자로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남녀노소 누구나 숨을 쉬지 않는가? 앉아서도 서서도 걸을 때도 일할 때도 숨을 쉰다. 호흡을 멈출 때가 있는가? 멈추어서는 안 된다. 잠잘 때도 호흡한다. 들숨 날숨이 나가고 들어올 때 어디를 부딪쳐 나가는가? 코끝이나 콧구멍 입구를 스친다. 손가락을 코끝에 두면 가볍게 스쳐 가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코끝, 콧구멍 입구를 통해 나가고 들어가는 그 느낌을 관찰하라. 굳이 입으로 ‘들숨, 날숨, 접촉, 알아차림’ 하며 읊조릴 필요는 없다. 숨을 관찰할 때 탐, 진, 치가 있는가? 걱정이 있는가? 심지어 다리 아픈 것도 잊었지 않은가? 앉아서도, 서서도, 걸을 때도, 일할 때도 관찰할 수 있다. 이런다고 돈이 들겠나?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가? 고통스러워 못 하겠는가? 다른 사람이 알겠나?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할 수 있다.
코끝에 마음을 두면, 앎(구분하는 앎) 때문에 무명이 도망간다. 둔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관찰하는 것이다. 놓치지 않고 계속해 가면 시간시간 순간순간이 달라진다. 지혜가 성성하면 어떻게 무명이 끼어들겠는가?
왕이나 장자들은 업무가 많고 복잡하다. 하지만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가르침을 새기며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왕이 쉬는 시간이 많겠는가? 언제나 대신, 장군, 시종들, 사람들과 만나느라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수행 주제를 놓치지 않고, 다른 대상에 끄달리지 않도록 알아차림 하였다.
그렇게 마음을 두면 고통을 일으키는 탐심, 진심, 어리석음이 들어올 틈이 있겠는가? 여러분도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면 이룰 수 있다! 서서, 걸으면서, 먹으면서, 일하면서 수행할 수 있지 않게는가?
서서, 걸으면서, 먹고 마시면서, 몸을 돌보면서도 마음을 코끝에 둘 수 있다. 마음을 두는 일이 과연 피곤한 일인가? 돈이 드는가? 업무를 방해하는가? 사람들이 수근거리는가? 남이 뺏어가는가? 그렇지 않다. 부처님 시대의 사람, 천인, 범천들은 가르침을 받고 전심으로 새기면서 행주좌와에서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도록 연속해서 지켰다. 여러분도 그들처럼 할 수 있지 않는가?
사람들과 말하면서도 관찰할 수 있다. 말하느라 놓친다면 아직 정진력이 약해서 그렇다. 대상을 옮겼기 때문이다. 정진력이 약해서 놓친 것을 알았으면 ‘다음에는 결코 느슨해지지 않으리라’고 결심하라. 과거 선인들도 그렇게 하셨다.

쉐우민 사야도

없음을 알고, 있음을 알아가면서 견해가 청정해진다. 알아차려라. 없는 것은 없다고 알아차려라. 있는 것을 있다고 알아차리면 그릇된 앎과 사견에서 벗어난다. 깨끗하게 사라질 것이다.
수행은 헤매는 마음을 붙들어 매는 게 아니다. 헤매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다. 요동치는 마음을 알아차릴 뿐이다. 달아나면 달아나는 줄, 망상하면 망상하는 줄, 궁리하면 궁리하는 그대로 알아차릴 뿐이다. 알아차리면 됐다. 고요해지도록 만드는 게 아니다. 고요함, 적정, 청정 등을 갈망하는 것은 명상이 아니다. 고요함이 좋은 것이라고 집착하지 마라. 그저 알아차릴 뿐이다. 좋든 나쁘든 고요하든 소란스럽든 그저 알아차릴 뿐이다.
‘어리석은 마음과 사나운 황소처럼 날뛰는 대상을 사띠의 밧줄로 말뚝에 단단히 묶어라’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마음은 거친 황소와 같다. 소를 말뚝에 묶는 것처럼, 어리석고 거친 마음은 사띠의 밧줄로 묶어 말뚝에 매어 두어야 한다. 어디에 묶어야 할까? 코끝을 관하는 사람은 코끝이 말뚝이다. 몸 전체가 말뚝이다. 무엇을 묶어야 할까? 마음이 수행 주제만을 맴돌도록 단단히 묶는다.


옥포 사야도

위빠사나 지혜의 첫 번째 단계. 숙고하는 지혜[삼마사나냐나]
오온에서 숙고 고찰한다.
과거, 현재, 미래, 내부, 외부, 거친 것, 미세한 것, 저열한 것, 고귀한 것, 멀리서, 가까이서 일어나는 이 몸[물질]은 소멸, 파괴되는 무상無常한 것이다. 두렵고 괴로운 고통이다. 실체가 없고 통제할 수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무아다. 이렇게 숙고하는 것이 삼마사나냐나[숙고하는 지혜]이다.


명상은,
마음을 뒤덮은 때 - 미래에 대한 걱정, 우울, 두려움…을 씻어내는 물입니다.
과거,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도록 하는 닻이며,
인연의 소중함을 비춰주는 거울,
일상의 생산적, 효과적, 풍요롭게 만드는 해결사입니다.
가장 소중한 나를 더 사랑하도록 돕는 조력자로써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미얀마는 명상의 가치를 알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나라입니다.
아라한에 도달하셨던 근대 미얀마의 큰스님들께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고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신 수행법을 묶었습니다.  
부디 이책이 본래 면목을 되찾는 단초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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