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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 대장경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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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 대장경의 길을 열다
정가 18,000원
판매가 16,200원
저자/출판사 정진원 / 우리출판사
적립금 81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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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253
발행일 2023-09-15
ISBN 978897561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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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정진원

정진원은 홍익대학교에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를 주제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국어학자이다. 이후 동국대학교에서 삼국유사를 주제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훈민정음 불경과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국내외 강의와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 모든 여정이 K Classic 한국학으로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다.《중세국어의 텍스트언어학적 접근 방법》,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삼국유사, 자장과 선덕의 신라불국토프로젝트》 등의 저서가 있다.




목차


009 … 여는 글 -「석보상절」, ‘월인석보’에서 ‘석보월인’의 세계로 제자리 찾기
023 … 첫 번째 이야기 - 「석보상절」, 조선불교의 시작
033 … 두 번째 이야기 -「석보상절」의 의미와 편찬 다빈치 코드
041 … 세 번째 이야기 -「석보상절」 속 훈민정음 대사전과 편찬 목적
051 … 네 번째 이야기 -「석보상절」은 훈민정음 최초 산문 작품
065 … 다섯 번째 이야기 -「석보상절」 3권, 싯달타 태자 탄생
077 … 여섯 번째 이야기 -「석보상절」 3권과 「월인천강지곡」의 만남
087 … 일곱 번째 이야기 -「석보상절」 3권, 싯달타의 태자 수업
098 … 여덟 번째 이야기 -「석보상절」 3권, 싯달타 태자의 이상형 찾기
108 … 아홉 번째 이야기 - 싯달타 태자, 신의 경지 기량을 펼치다
118 … 열 번째 이야기 - 싯달타 태자의 결혼과 사문유관
129 … 열한 번째 이야기 -사문유관, 병듦과 죽음에 대하여
142 … 열두 번째 이야기 -사문유관, 사문(沙門)을 만나 출가를 결심하다
156 … 열세 번째 이야기 - 싯달타 태자, 6년 후 아들 출산을 예언하다
166 … 열네 번째 이야기 - 싯달타 태자, 출가 일주일 전후와 ‘곡두’의 의미
177 … 열다섯 번째 이야기 -싯달타 태자, 출가하는 날 하늘의 장엄
192 … 열여섯 번째 이야기 - 설산수도, 어찌 수고로운 인연을 닦아 수고로운 과보를 구하는가
203 … 열일곱 번째 이야기 - 설산 수도, 무색계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 선정 수행
213 … 열여덟 번째 이야기 - 라훌라 출생과 야수다라의 백척간두 진일보
223 … 열아홉 번째 이야기 - 싯달타 태자의 6년 고행
234 … 스무 번째 이야기 - 싯달타 태자의 정각과 수자타 소녀의 우유죽 공양
248 … 맺는 글 -「석보상절」의 공덕과 가피




책 속으로

여는 글 / 「석보상절」, ‘월인석보’에서 ‘석보월인’의 세계로 제자리 찾기

「석보상절」과의 시절 인연
훈민정음으로 1447년에 쓴 최초의 산문책 「석보상절」이 드디어 독자와 만나는 시간이 도래하였다. 나는 앞서 1459년에 완성된 「월인석보」 제1권과 제2권에 해당하는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와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을 책으로 출간한 바 있다.
그러면 왜 세 번째 출간하는 책이 「월인석보」 제3권이 아니고 「석보상절」 제3권인가. 간단하다. 한마디로 「월인석보」 제3권이 현재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석보상절」 제3권은 「월인석보」 제2권의 내용과 이어지는 책이다. 초간본이 아닌 것이 애석하지만 중간본으로나마 「석보상절」 첫 번째 책으로 전하고 있다. 그것이 「월인석보」 제3권 대신 「석보상절」 제3권으로 여러분을 만나게 된 직접적인 연유이다.
한편 「석보상절」 1권과 2권은 아직 전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절묘한 우연이자 필연인가. 그리고 천우신조로 「월인천강지곡」 상권에 194장이 전한다. 「석보상절」 3권에 해당하는 「월인천강지곡」 상권의 내용으로 「월인석보」 제3권의 면모도 함께 알아볼 수 있는 기적이자 가피의 책이다.

「석보상절」 편찬의 주인공 세종과 소헌왕후 그리고 수양대군
우리는 그동안 「월인석보」 1권과 2권을 통하여 훈민정음으로 지어진 첫 산문 「석보상절」의 직접적인 편찬 동기가 세종의 부인 소헌왕후의 극락왕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교입국의 조선에서 불교 책 석가모니 일대기를 그리기 위한 대의명분에 불과할 뿐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백성들에게 양반 귀족 특권층의 지식 권력을 공평히 공유하려는 것임을 책 전체를 정독하면서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이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산문 책 「석보상절」을 지금 우리가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세종과 소헌왕후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소헌왕후는 죽음으로써 불교의 극락왕생 대상 역할을 충실히 해 준 셈이다. 글자를 창제한 왕의 부인 정도는 세상을 하직해야 그 글자로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문장의 책을 만들 수 있는 유교의 세상. 그렇다면 그 첫 훈민정음 산문 책을 쓴 저자는 누구인가. 세종과 소헌왕후 부부의 아들인 수양대군 되시겠다.
책을 완성한 1447년은 수양대군이 서른이 되던 해로 훈민정음을 반포한 1446년의 이듬해이다. 정확히 10개월만에 이룩한 대작 불사 완성이다.

훈민정음의 생명력은 「석보상절」이란 도도한 강물에서
문자가 있으면 무엇하나. 모름지기 문자를 운용하여 문장을 만들고 그 글로 인간의 심금을 자유자재로 표현해 웃고 울고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문자의 가치가 있는 것임을 세종과 수양대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으로 이미 1445년에 조선의 개국을 찬탄하는 노래 「용비어천가」를 지어 시험한 바 있다. 그러나 노래란 짧고 함축적이어서 완전한 서사를 구사한다고 할 수 없는 문장이다. 강물처럼 유려하고 흐름이 도도한 대하드라마 같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과연 훈민정음 새 문자로 운용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석보상절」은 그 긴장감 가득한 첫 시험대에 오른 절체절명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그야말로 24권이란 대작을 단 10개월 만에 완성도 높게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 주인공이 바로 수양대군이었던 것이다.
「석보상절」의 저자 수양대군과 집단 지성
지금 읽어 보아도 흠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완전무결한 경지의 책이다. 불가사의이다. 어떻게 새 문자 훈민정음 첫 시험작이 바로 대표작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솔직히 믿지 않는다. 이것은 오래 공들이고 무수한 단련 끝에 얻어질 수 있는 경지의 작품이다. 세종과 수양대군이 천재임을 전적으로 인정하지만 한 천재의 역량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24권 대작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정독하면 할수록 이것은 오랫동안 숙련된 집단 지성의 힘으로 이룩한 역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런가. 이제부터 한 글자 한 글자 수양의 육성으로 읽어 나가기로 한다.
우리가 지금 한글을 자유자재로 쓰게 된 데에는 세종 부부와 수양 그리고 한 사람의 공로가 더 있다. 수양의 부인 정희왕후이다. 수양이 세조가 되고 그 세조가 만든 간경도감에서 훈민정음 불경들이 속속 편찬된다.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세조가 세상을 떠나자 정희왕후는 손자 성종을 수렴청정하며 간경도감 사업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최소 세종 부부와 세조 부부의 가피에 힘입어 현재 문자로 평등한 세상, 세계 속의 한류 그 중심에 한글이 있음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석보상절」과 ‘석보월인’의 세계
「석보상절」은 「월인천강지곡」을 함께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다. 「석보상절」 제3권과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월인천강지곡」을 찾아 맞추어 보니 그야말로 상보적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정독을 할수록 왜 12년 후 합본 「월인석보」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명약관화하였다.
불교경전의 순서는 부처의 설법과 그것을 노래로 요약한 게송으로 되어 있다. 수양대군의 「석보상절」이 부처의 법문이라면 세종의 「월인천강지곡」은 그 법문을 읽고 노래한 게송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경전의 순서에 따라 당연히 ‘석보+월인’의 순서로 쓰여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왜 ‘월인+석보’의 순서로 책을 합편했을까. 그것은 아버지의 작품을 앞세우고자 한 아들의 겸양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600년이 지난 지금 「석보상절」을 현대국어로 풀어 쓰면서 그 순서를 바로잡는다. 「석보상절」이 중심인 책이어서 「월인천강지곡」을 뒤에 놓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제 600년 동안 아버지를 기린 것으로 충분하니 불교경전의 순서대로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석보상절」은 게송 형식의 「월인천강지곡」을 정리 요약한 운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과 세조는 천재였다. 특히 누구나 다 아는 아버지 천재에 가려 세조는 그동안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극악무도함만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세종의 아들 세조도 아버지 못지 않은 천재였다.
아버지 세종은 재위 32년인데 비하여 세조는 14년이다. 절반도 못 미치는 치세 동안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을 궁굴리고 다듬고 깁고 보태어서 만든 「월인석보」는 조선 대장경의 금자탑이요 그 원본에 해당하는 「석보상절」 24권과 「월인천강지곡」 600여 수가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 1459년 「월인석보」라는 조선식 대장경의 완성은 1461년 간경도감 설치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주옥 같은 우리말로 쓰여진 훈민정음 대장경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리고 11년간 조선 대장경의 역사가 이어지는데 세조 14년인 1468년 세조가 승하한 후 부인 정희왕후 섭정으로 그 대단원의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어린 손자 성종을 왕위에 앉힌 또 다른 이유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조선 대장경의 대역사는 세조 부부의 업적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종 부부로 시작된 훈민정음 문자의 시작은 세조 부부가 날개를 달아 21세기까지 ‘붕새’처럼 세계를 향하여 날아가고 있다.
이 책은 2021년 1년 동안 현대불교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깁고 더한 것이다. 또한 배경 「월인석보」 제1권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조계종출판사)’ 「월인석보」 제2권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박이정)’에 실려 있는 내용에 기대고 있다. 이 책이 앞의 두 책과 이어지는 내용이고 연재의 성격상 반복이 불가피하였는데 널리 혜량해 주시기를 바란다.(후략)




출판사 서평


평생을 인문학자로 살아 온 저자의 고전 에세이

석보상절은 훈민정음의 활용성과 실용성을 증명한 첫 산문책이다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 대장경의 길을 열다』는 제목 그대로 훈민정음으로 만든 첫 산문책이자 부처의 일대기를 엮은 ‘석보상절’의 내용과 그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석보상절’은 1447년(세종 29) 전24권 24책으로 간행되었으며 현재는 총 10권(3, 6, 9, 11, 13, 19, 20, 21, 23, 24)만이 전하고 있다. 이 책은 현전하는 ‘석보상절’의 첫 번째 책인 제3권을 다루고 있다. 뒤의 〈여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석보상절’ 1권과 2권에 해당하는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와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을 출간한 바 있는 저자가, 그 뒤를 잇는 이야기인 ‘석보상절 제3’권을 풀어낸 것이다. ‘석보상절 제3’의 내용은 싯달타 태자가 태어난 뒤 정반왕이 관상가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해, 사문유관과 6년 고행, 마지막 성도를 위해 보리수 아래 사자좌에 앉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석보상절’의 옛 글자 훈민정음 원문을 싣고 이를 현대어로 쉽게 해설하고 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훈민정음 반포 이후 문자로서의 실용 가능성을 증명하는 첫 책으로 유교 책이 아닌 부처의 일대기 ‘석보상절’을 편찬한 것이다. 그 까닭은 책의 서문인 ‘석보상절 서(序)’에서 일단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석보상절」 짧은 서문 안에는 우리가 몰랐던 훈민정음과 불교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꼬리를 무는 궁금증 그리고 조선시대 불교 수용의 배경과 역사, 왕들의 개성과 성격 등 무수한 다빈치 코드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은하수를 이루고 있다.”(pp.61-62)고 말한다.
저자는 서문에 담긴 의미야말로 바로 “나라의 말씀을 백성들이 쉽게 익혀 날로 사용하기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취지에 부합하는 실제 상황이요 증거”라고 보고 있다. 특히 낱말을 풀이한 협주(夾註)를 가리켜 ‘훈민정음 사전’이라고 극찬한다.
‘석보상절’ 첫 번째 협주인, “序는 글 ᄆᆡᇰᄀᆞ론 ᄠᅳ들 子細히 써 後ㅅ 사ᄅᆞᄆᆞᆯ 알의 ᄒᆞᄂᆞᆫ 거시라(서는 책을 만드는 뜻을 자세히 써서 나중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다)”, 또 “석(釋)은 석가이며, 보(譜)는 평생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일을 다 쓴 글이며, 상(詳)은 중요한 말은 자세히 다 쓰는 것이며, 절(節)은 중요하지 않은 말은 덜어내 쓰는 것”이라는 등 빼곡하게 이어지는 협주를 들어, 누가 이보다 더 이상 친절하고 쉽고 간결하게 정의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한편 서문은 ‘석보상절’이 소헌왕후의 왕생극락을 위해 “네가 석보(釋譜)를 만들어 번역하는 것이 마땅하겠다”는 세종의 명을 받아, “이때까지 (나온) 여러 경전에서 가려내어 각별히 한 책을” 수양대군이 만들었다고 쓰고 있다(pp.63-64). 그러나 저자는 단 10개월 만에 완성한 24권의 대작 ‘석보상절’을 수양대군 혼자만의 작품으로 보기를 거부한다. 뒷날 ‘월인석보’ 편찬에 자문 역할을 한 신미 스님을 비롯한 열 분의 스님과 신미 스님의 세속 아우로 ‘증수 석가보’를 편찬한 김수온 등과 같은 집단 지성이 ‘석보상절’의 편찬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석보상절 3권’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석보상절’은 세종과 세조가 소헌왕후의 극락왕생과 정각을 염원하며 만든 책이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제3권은 싯달타 태자가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가하는 장면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늙어서 병드는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입의 번뇌를 못 참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병이 나는 것이니 인생에 면할 사람이 없습니다.”(p.133)

사문유관 도중 남문 밖에서의 이 대화를 두고 저자는, “가난한 시집과 친정의 대소사, 우리 집 대식구들을 위해 뼈가 부서지게 일하셨다. 그리곤 나이 마흔에 그 당시 이름도 생소했던 ‘한국형 당뇨’라는 병”에 걸려 결국은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을 떠올린다.(p.134)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조심하였지만 그 길에 동참하고 말았다”며 ‘입의 번뇌를 못 참아’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나로부터 찾고 있다.
싯달타 태자가 부왕에게 출가선언을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한사코 출가를 막는 부왕에게 태자는 ‘늙음을 모르고 병이 없으며 죽음을 모르고 여의는 것을 모르고자’ 출가하겠다고 답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생로병사)’ 근본적인 네 가지 괴로움(四苦) 대신 ‘늙고 병들고 죽고 이별’하는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출가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아버지 정반왕의 간곡한 만류가 심금을 울린다. 태자는 여기서 생로병사 중 생(生) 대신에 이별을 꼽는다(一者不老 二者無病 三者不死 四者不別). 어느 부모인들 자식의 앞길을 막고 싶겠는가. 그러나 가겠다는 길이 어느 인간도 이루지 못한 노병사와 이별이 없는 길이라니, 성문을 굳게 지키고 잠그는 수밖에. 누구나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사서 고생을 하며 살다가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 심정을 헤아리고 눈물을 쏟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석보상절」의 이 장면이 그래서 나도 슬프다.”(p.154)

저자는 태자의 출가 사유에서 네 번째 괴로움으로 ‘생(生)’ 대신 ‘이별’이 언급된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야 살아가면서 “직접 겪고 있거나 간접 체험으로 그 괴로움을 절절히 알아가게 되지만 그 끝에 ‘이별’의 괴로움이 버티고 있는 것은 간과하고 살았다.”고 토로한다. 근래 부군(夫君)과 아버님을 여읜 저자에게 ‘죽음 뒤에 남는 이별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데, 죽음뿐만 아니라 어떤 ‘이별’이든 당사자에게는 모두가 절실한 현재진행형의 괴로움이라는 데서 출가 사유의 의미를 되짚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인도 여행 중 둘러본 싯달타의 고행림이 설산(히말라야)에서 멀리 떨어진 보드가야(성도지) 인근이었음을 떠올리며 설산(雪山)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리다 보면 어느덧 본질은 사라지고 절제가 지나쳐 물심양면으로 인색해진다든지,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어 남에게도 그 잣대를 들이댄다든지, 일부러 가시밭길을 걸어 피투성이가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 또한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석가모니의 팔상 중 ‘설산수도’의 ‘설산’은 ‘설산’이 아니라 ‘고행림’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인생이란 설산은 고행림과 같은가, 다른가.”(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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