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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북,불교용품,불교서적,불교사경

보리도차제광론 (1-2권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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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보리도차제광론 (1-2권 세트)
정가 53,000원
판매가 47,700원
저자/출판사 쫑카파 / 나란다
적립금 2,39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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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1권 243p / 2권 3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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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리도차제광론 2

    27,000원

  • 보리도차제광론 1

    20,700원

책소개

이 책은 티벳어로 '장춥람림첸모'이다. ‘장춥(보리菩提)’은 깨달음이란 의미이며 ‘람’은 길(도道), ‘림(차제次第)’은 단계, 순서, 과정 따위를 말한다. 즉 깨달음의 길을 가는 순서 혹은 과정이라는 의미이다. ‘첸모’는 자세히 해설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서 한문으로 ‘보리도차제광론(菩提道次第廣論, 이하 광론)’이라고 한다.
이 책은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붓다를 이루는 길로 이끄는 안내서이자 지도이다. 이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그 길을 따라 가면 반드시 성불이라는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사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깨달음의 길을 안내하는 거대한 지도이지만 목적지에 따른 안내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또 방대해서 사용할 줄 모르는 여행자에게는 활용하기가 어렵다. 이 책은 깨달음의 길을 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어디를 거쳐 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풀어내면서 동시에 하나의 구조로 체계화되어 있어 활용하기 좋은, 매우 훌륭한 지도이다.
‘보리도차제(람림)’의 연원은 아티샤(Atiśa, 980-1052) 존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쫑카빠 대사는 『광론』의 예비수습편에서 보리도차제는 근원적으로 미륵보살의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의 가르침이며 동시에 『보리도등론菩提道登論』의 가르침을 해설한 것이므로 『보리도차제론』의 실질적인 저자는 자신이 아니라 아티샤 존자라고 밝히고 있다.
『광론』의 예비수습편에서 잘 나와 있듯이 아티샤존자는 기울어져 가는 티벳 후기 불교의 중흥조로서 국가적 차원에서 왕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인도에서 모셔온 존귀한 스승이다.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정신적 스승을 모셨던 그 간절함은 당시의 시대 상황의 절박함을 짐작케 한다. 당시는 밀교라는 미명 하에 자칭 인도의 아사리(阿闍梨,ācārya), 빤디따(paṇḍita)라고 하는 이들에 의해 사도邪道가 크게 성행하여 무엇이 정법인지 사법인지를 구별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예쎼 외(ye shes ’od) 왕은 이러한 종교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에서 바른 스승을 모셔 와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에서 정법과 사법을 가려 줄 뛰어난 스승을 초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찍이 예쎼 외 왕은 역경사 린첸 상보(rin chen bzang po)를 비롯한 스물 한 명을 인도로 유학을 보내 인재로 키웠으며 티벳에 돌아온 뒤에는 그들이 경론을 번역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인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역경사들에게 정법과 사법을 가려 주고 티벳 땅의 쇠락한 불교를 중흥시킬 수 있는 스승이 누구인지를 묻자 그들 모두 디빰까라 씨리쟈나(Dīpamkaraśrījñāna,아티샤 존자의 본명)라는 분을 모셔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말대로 아티샤 존자를 모시기로 결정한 예쎼 외 왕은 인도에 유학했던 스물 한 명의 인재 가운데 한 명인 역경사 갸 쭌뒤 쎙게(rgya brtson ’grus seng ge)에게 많은 금을 주고 여덟 명의 조력자와 함께 인도로 가서 스승을 모셔오도록 하였다. 하지만 아티샤 존자를 모시는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초청을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실제 스승을 모셔 오는 데까지 많은 재정이 필요했던 탓에 금을 채굴하는 일에 왕이 직접 나서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주변 지역의 이슬람교를 신봉하던 갈록(gar log) 왕에게 볼모로 잡히게 되었다. 그가 불교 국가의 왕이었던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갈록은 불교를 버리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하며 그를 가두었다. 예쎼 외 왕을 살리기 위해 달려온 손자 장춥 외(byang chub ’od)에게 갈록은 인도에서 스승을 초청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지배하에 들어오거나 혹은 예쎼 외 왕의 신체 크기만큼의 금을 받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장춥 외는 금을 구해 예쎼 외 왕의 목숨을 구하기로 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머리를 제외한 신체의 크기에 해당하는 금을 구했지만 갈록 왕은 머리 크기만큼의 금까지 모두 가져 올 것을 요구하며 끝끝내 예쎼 외를 풀어 주지 않았다.
더 이상 금을 구하지 못했던 장춥 외는 예쎼 외를 찾아가 전쟁을 일으켜 무력으로 해결한다면 많은 사상자가 따르는 살생과 악업을 피할 수 없고, 인도에서 스승을 모셔 오는 것을 포기하고 악법을 따르는 왕의 지배하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예쎼 외 왕은 웃으면서 “내가 죽더라도 남은 일을 네가 잘 해낼 수 있겠구나. 법을 위해서 죽는다면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내게 두 가지 소원이 있다. 갈록 왕에게 한 톨의 금도 주지 말고 인도에서 스승을 모셔 오는데 쓰도록 해라. 설사 스승을 모셔 오는 일을 실패하더라도 이 모든 사실을 스승께 고하여 불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연으로 내생에는 스승을 실제 뵐 수 있도록 가피하시고 제자로 거두어 주십사 했다고 전해 다오.”라고 하며 풀려나기를 포기하고 죽기를 원하였다. 그의 죽음 후 장춥 외 왕이 그 유지를 받들어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아티샤라는 뛰어난 스승을 티벳 땅에 모시게 된 것이다.

역사 속에서 불교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써 쓰였다면 티벳의 두 왕은 오직 깊은 신심으로 불교의 위대한 유산을 바르게 계승하려는 애민정신과 보살정신을 보여 주었다. 그와 같은 예쎼 외의 숭고한 희생과 장춥 외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 가르침을 접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왕이 보여주었던 불법에 대한 진심이 아티샤 존자로 하여금 마지막 여생을 오로지 중생들을 위한 마음으로 전법에 헌신하게 만든 것이다. 아티샤 존자의 전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한 나라의 왕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향락을 다 누렸으나 출가하여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받으며 존경과 환대를 받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해발 3500미터가 넘는 척박하고 황량한 땅, 유배지나 다름없는 변방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결단했다는 것은 보살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티샤라는 인물은 인도의 국가적 인재였기 때문에 티벳 방문도 오직 3년이라는 기한 아래 허락되었으며 3년이 지난 후 인도로부터 귀환을 독촉 받게 되었다. 그의 귀환을 바라는 인도의 수많은 제자들과 대중의 열망이 커지고 귀환 요청이 계속되자 아티샤 존자는 인도 제자들을 위해 모든 가르침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보리도등론』을 저술하였고 자신이 인도로 귀환하는 대신 그 책을 인도로 보내었다. 『보리도등론』을 받아 본 인도인들은 아티샤 존자께서 귀환한 것과 다름없다고 크게 만족하였고 존자는 티벳 땅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로써 마침내 법통을 바로 세우고 불교를 중흥하여 대승의 정법을 널리 선양하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부처님의 모든 교설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는 『보리도등론』을 시작으로 티벳 땅에 도차제의 가르침이 뿌리내리고 훗날 제 쫑카빠 롭상 닥빠(rje tsong kha pa blo bzang grags pa)에 의해 그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쫑카파

쫑카빠 대사의 행적은 전생의 인연과 원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생에 제석당왕여래帝釋幢王如來(Indraketudhvājaraja) 전에서 미래 악세惡歲에 중관사상과 금강승의 도를 널리 전하겠다고 서원하였으며 그러한 원력으로 1357년 암도지역의 쫑카 마을에 태어났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재세 시에는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부처님께 수정염주를 공양하며 발심하였는데 부처님께서 미래에 그가 당신의 정견을 바르게 지니고 널리 알리게 될 것이라고 수기하셨다.
쫑카빠 대사가 태어나기 전에 최제 된둡 린첸(chos rje don grub: 대사의 첫 번째 스승)은 부모에게 찾아가 이 아이는 특별한 존재이니 태어나면 항상 청결을 유지하여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였다. 3세에 제4대 까르마파 롤빼도르제(rol pa`i rdo rje)로부터 우바새 계율을 받고 꾼가닝보(kun dga` snying po)라는 이름을 받았다. 같은 해에 된둡 린첸은 다시 부모를 찾아가 때가 되었음을 알리고 대사는 사원으로 가게 되었다. 7세에 된둡 린첸으로부터 사미계를 받고 롭상 닥빠(blo bzhang grags pa)라는 이름을 얻었다. 3세에서 16세까지는 은사 곁에 머물며 불교를 수학하였다.
16세가 되었을 때 ‘더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불법과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배움을 위해 위 지역(티벳 중앙지역)으로 떠날 뜻을 스승께 아뢰자 스승께서도 5부 경서 가운데 반야, 중관, 인명(因明: 불교 논리학)이 중요하다고 조언하시며 배움의 길을 허락하셨다. 1373년에 중앙 지역으로 가서 17세부터 36세까지 20년 동안 인도와 티벳 논사들이 지으신 5부 경론을 완전히 배웠다.
쫑카빠 대사는 전생에 이미 많은 것을 성취한 대성취자였기 때문에 육신의 스승들뿐 아니라 문수보살께도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경론에 통달하였기에 36세 때 이미 설법으로 많은 중생을 이롭게 하였지만 악업정화와 복을 짓는 것, 스승과 본존(밀교의 부처님)이 둘이 아님을 관하는 본존관, 경론의 참구라는 이 세 가지에 더욱 매진하라는 문수보살의 말씀에 따라 1392년 여덟 명의 제자를 데리고 올가(A’ol Ga)라는 곳에서 3년간 용맹 정진하였다. 그로써 현교와 밀교의 일체 경론이 진정한 가르침임을 깨치게 되었으며, 그 후 53세까지 밤낮으로 현교와 밀교를 수행하여 마침내 일체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갤첩 다르마 린첸(rgyal tshab dar ma rin chen), 캐둡 겔렉 뺄상(mkhas grub dge legs dpal bzang), 제 겐뒨 둡(rje dge `dun grub), 둘진 닥빠 갤첸(`dul `dzin grags pa rgyal mtshan), 잠양 최제 따시 뺄댄(`jam dbyangs chos rje bkra shis dpal ldan) 등과 같은 수많은 뛰어난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입적하기 전까지 설법과 논쟁, 저술 활동을 통하여 교학과 수행의 법을 명확히 천명하여 불법을 널리 선양하였다. 1419년, 6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번역 : 박은정
대학졸업 후 도미渡美하였다가 달라이라마와의 인연으로 2000년에 인도로 건너갔다. 그 후 13년간 티벳의 전통학제에서 티벳어와 티벳불교를 수학하였다. 달라이라마가 설립한 승가대학(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의 분교(College for Higher Tibetan Studies)에 입학하여 티벳어학 및 기초 논리학을 배우고 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에 진학하여 반야와 중관 과정을 졸업하였다. 2002년에 달라이라마 한국어 공식 통역관으로 발탁되어 2018년까지 활동했다. 귀국 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구)티벳장경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나란다불교학술원에서 티벳원전을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목차

[1권]

추천의 글
역자 서문
해제
Ⅰ. 법의 정통성에 허물이 없음을 보이는 저자著者의 수승함
Ⅰ-[1] 훌륭한 가문에서의 탄생
Ⅰ-[2] 그 생애에 공덕을 갖추는 과정
Ⅰ-[2]{1} 교법을 두루 아시는 교학의 덕을 갖추는 과정
Ⅰ-[2]{2} 여법성취 증법證法의 덕을 얻어가는 과정
Ⅰ-[2]-{2〈1〉 뛰어난 계학을 갖추다
Ⅰ-[2]-{2}-〈11. 별해탈계를 구족하는 과정
Ⅰ-[2]-{2}-〈12. 보살계를 갖추는 과정
Ⅰ-[2]-{2}-〈13. 금강승계를 갖추는 과정
Ⅰ-[2]-{2〈2〉 두 가지 뛰어난 정학을 갖추다
Ⅰ-[2]-{2}-〈11. 보편의 정학[共定學]
Ⅰ-[2]-{2}-〈12. 특별한 정학[不共定學]
Ⅰ-[2]-{2〈3〉 뛰어난 혜학을 갖추다
Ⅰ-[2]-{2}-〈11. 보편의 혜학
Ⅰ-[2]-{2}-〈12. 특별한 혜학
Ⅰ-[3] 불법을 위한 행적
Ⅰ-[2]{1} 인도에서의 행적
Ⅰ-[2]{2} 티벳에서의 행적
Ⅱ. 가르침에 귀한 마음을 일으키는 법의 수승함
Ⅱ-[1] 모든 교법에 모순이 없음을 깨닫는 이익
Ⅱ-[2]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특별한 가르침으로 보게 되는 이로움
Ⅱ-[3] 부처님의 뜻을 조속히 얻는 이로움
Ⅱ-[4] 죄행이 저절로 소멸되는 이로움
Ⅲ. 두 가지 수승함을 갖춘 법法을 듣고 설하는 방법
Ⅲ-[1] 청문자가 법을 듣는 법
Ⅰ-[2]{1} 법을 듣는 공덕
Ⅰ-[2]{2} 법과 설법자에 대한 공경
Ⅰ-[2]{3} 청문법의 실제
Ⅲ-[2] 설하는 방법
Ⅰ-[2]{1} 법을 설하는 공덕 사유하기
Ⅰ-[2]{2} 부처님[敎祖]과 법에 공경심 일으키기
Ⅰ-[2]{3} 설법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
Ⅰ-[2]-{2〈1〉 마음가짐
Ⅰ-[2]-{2〈2〉 몸가짐
Ⅰ-[2]{4} 법을 설하는 대상과 법을 설하지 않아야 할 대상의 구별
Ⅲ-[3] 마지막 공통의 행법
Ⅳ. 본 가르침으로 제자를 인도하는 순서
Ⅳ-[1] 모든 도의 근원인 선지식을 의지하고 섬기는 법
Ⅳ-[1 ]{1} 확신을 얻기 위한 상설詳說
Ⅰ-[2]-{2〈1〉 의지처인 선지식의 자격[性相]
Ⅰ-[2]-{2〈2〉 스승에 의지하는 제자의 자격
Ⅰ-[2]-{2〈3〉 제자가 스승을 섬기는 법
Ⅰ-[2]-{2}-〈11. 마음으로 섬기는 법
Ⅳ-{1}-〈3〉-1- 가. 보편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
Ⅳ-{1}-〈3〉-1- 나. 근본이 되는 신심의 함양
Ⅳ-[1]-{1}-〈3〉 다. 은혜를 떠올려 공경심 일으키기
Ⅰ-[2]-{2}-〈12. 행行으로 섬기는 법
Ⅰ-[2]-{2〈4〉 선지식을 선기는 공덕으로 인한 이익[得]
Ⅰ-[2]-{2〈5〉 선지식을 잘못 섬김으로 인한 해악
Ⅰ-[2]-{2〈6〉 요결了結
Ⅳ-[1 ]{2} 수행 방법에 대한 약설略說
Ⅰ-[2]-{2〈1〉 수행 방법의 실제
Ⅰ-[2]-{2}-〈11. 정근正勤 시의 수행
Ⅳ-[1]-{2}-〈1〉- 가. 예비행
Ⅳ-[1]-{2}-〈1〉- 나. 본수행
Ⅳ-[1]-{2}-〈1〉- 다. 마지막 행
Ⅰ-[2]-{2}-〈12. 비정근非正勤 시의 수행
Ⅰ-[2]-{2〈2〉 수행에 대한 사견의 차단
Ⅳ-[2] 선지식을 섬기어 어떻게 마음을 닦을 것인가
Ⅳ-[1 ]{1} 가만의 몸을 의미 있게 쓰기 위한 가르침
Ⅰ-[2]-{2〈1〉 가만의 몸이란 무엇인가
Ⅰ-[2]-{2}-〈11. 팔유가八有暇
Ⅰ-[2]-{2}-〈12. 십원만十圓滿
Ⅳ-[2]-{1}-〈1〉-가. 내부적 원만함
Ⅳ-[2]-{1}-〈1〉-나. 외부적 원만함
Ⅰ-[2]-{2〈2〉 가만의 몸의 가치를 사유하기
Ⅰ-[2]-{2〈3〉 가만의 몸의 얻기 어려움을 사유하기
Ⅳ-[1 ]{2} 가만의 몸을 의미 있게 쓰는 법
Ⅰ-[2]-{2〈1〉 보편적 도에 대한 이해
Ⅰ-[2]-{2}-〈11. 일체교설이 세 근기의 도로 수렴되는 이치
Ⅰ-[2]-{2}-〈12. 세 근기의 도를 차제대로 이끄는 이유
Ⅳ-[2]-{2}-〈1〉-가. 세 근기의 도를 통해 이끄는 의미
Ⅳ-[2]-{2}-〈1〉-나. 그와 같은 차제대로 이끄는 이유
Ⅳ-[2]-{2}-〈1〉-2- 1) 실질적인 이유
Ⅳ-[2]-{2}-〈1〉-2- 2) 의의
참고 문헌
인용 경전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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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역자 서문
해제
일러두기

하근기(下根器)의 도
Ⅰ. 하근기의 도로써 마음을 닦는 방법의 실제
Ⅱ. 하근기 의요가 일어난 경계
Ⅲ. 하근기 도에 대한 사견의 차단

중근기(中根器)의 도
Ⅰ. 중근기 의요 수행의 실제
Ⅱ. 중근기 의요의 경계
Ⅲ, 중근기 도차제의 대한 사견의 차단
Ⅳ. 해탈도

부록
참고문헌
인용경전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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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1. 『보리도차제광론』 의 독보성과 관련 저작

『보리도차제광론』은 쫑카빠 대사께서 1402년 46세의 나이에 저술하신 것이다. 『보리도차제광론』이 저술되기 전에도 『땐림첸모(bstan rim chen mo)』(도룽빠 저)와 같은 『보리도등론』의 해설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쫑카빠 대사의 저술처럼 경론의 전거를 밝히고 논거를 제시함으로써 의문을 해소하고 선대 선지식의 특별한 가르침을 보강하여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수행의 원리를 설명한 것은 드물다. 그런 이유로 수행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수행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첨언한다면 『보리도차제광론』은 까담파의 전통 안에서도 독보적인 저술일 뿐만 아니라 다른 교파의 저술과 비교해 봐도 독보적인 저작이다. 수행체계를 설명하는 다른 여러 저작들은 대부분 하근기나 중근기의 도에 그 설명이 치우쳐 있고 상근기의 지관止觀에 대한 것은 대체로 요약되어 있다. 이에 반해 대사의 『보리도차제광론』은 가장 많은 지면을 지관止觀 편에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어 지관에 대해 『보리도차제광론』처럼 자세하게 다루는 해설을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보리도차제광론』 자체가 매우 방대한 해설서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내용을 요약하여 저술한 것이 『람림딩와(중론)』 『람림충와(약론)』이며, 도차제와 관련된 주제 별 가르침을 담은 적지 않은 해설서들이 대사의 제자들에 의해 저술되기도 했다. 도차제에 관한 저작 가운데 대표적인 여덟 권을 ‘람림티첸게(lam rim khrid chen brgyad)’- 『광론』, 『중론』, 『약론』, 『쎄르슈마』(3대 달라이라마 저), 『잠밸셸룽』(5대 달라이라마 저), 『람림델람』(4대 판첸라마 저), 『뉴르람』(5대 판첸라마 저), 『렉쑹닝쿠』(곰첸 응아왕 닥빠 저)-라고 하고, 『람될락장』(파봉카 저)을 비롯한 열여덟 권을 ‘람림티쫍게(lam rim khrid bco brgyad)’라고 한다.

2. 『보리도차제론』 의 특징과 이익

보리도차제의 가르침에는 세 가지 특징과 네 가지 큰 이익이 있다. 먼저 세 가지 특징으로 첫째, 현교와 밀교의 핵심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과 둘째, 마음을 다스리는 순서를 우선으로 설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하기 매우 용이하다는 점이며 셋째,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의 교의에 정통한 스승들의 비전(祕典)으로 보강하였기 때문에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특별하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경론에서 말씀하신 도(道)와 어긋남이 없는 정도(正道)를 설하고 그것에 부족함과 과함이 없으며 수행자체에 그 어떤 오류도 없다. 게다가 상근기 중생만이 아니라 하근기, 중근기 등 각 근기의 모든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보리도차제는 일체 교설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다.
그와 같은 도차제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면 또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로 부처님의 일체 교설에 모순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의미상으로 어떠한 모순도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일체 교설이 지향하는 바에 모순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깨닫게 되면 부처님 가르침에 우열을 가리거나 소승과 대승을 차별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도차제의 가르침은 일체 교설을 진정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 밖에서 따로 구할 바가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는 뜻이자 부처님의 말씀을 실제 수행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됨을 뜻한다. 대사는 일체 교설을 진정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기 때문에 교법을 많이 배워도 수행하는 법을 모르거나 수행하려는 마음이 생겼을 때 따로 법을 구하게 된다고 하셨다. 세 번째는 부처님의 뜻을 조속히 얻게 되고, 네 번째는 모든 죄업이 저절로 소멸된다.

3. 『보리도차제론』 에서 말하는 세 근기의 도

이 책에서는 ‘께부(skyes bu: 사람) 쑴(gsum: 세)’을 세 근기로 번역하였다. 기존의 중국어 번역에서 삼사三士라는 용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번역된 대부분의 책에서도 그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께부 충우(skyes bu chung ngu), 께부 딩(skyes bu ’bring), 께부 첸보(skyes bu chen po)를 순서대로 하사.중사.상사라고 하고 이를 삼사라고 한다. 사람을 상.중.하로 나누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 다시 말해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는 총체적인 역량과 더불어 기질이나 성향, 바람 따위를 잣대로 근기에 따라 나눈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하사.중사.상사라는 용어 대신 『석량론釋量論』에 근거하여 하근기.중근기.상근기라는 우리에게 좀더 익숙한 용어를 쓰게 되었음을 밝힌다.
근기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어떠한 기준에서 구별되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근기에 속한다. 예비수습편에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듯이 하근기에는 주로 현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와 주로 내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두 가지 하근기가 있으며, 그 가운데 도차제에서 말하는 하근기는 후자에 해당된다. 도차제에서의 하근기가 주로 내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라면 하근기의 도(道)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하근기의 마음[意樂]이 필요하다. 어떠한 길을 가기 위해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길을 가지도 않으며,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근기의 그러한 의요를 어떻게 일으킬 것인가? 누구나 현생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현생이 금방 끝나고 곧 내생이 시작된다면 가까운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현생에 매몰되어 내생이 가까운 미래임을, 곧 닥칠 현실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깨우는 사유와 통찰이 필요하다. 그것이 하근기의 도에서 말하는 죽음의 무상관과 가까운 미래에 겪게 될지도 모를 악도에 대한 고통관이다. 그와 같은 사유를 통하여 내생의 행복을 구하는 하근기의 의요가 생기면 실질적으로 내생의 행복을 이루는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삼귀의와 인과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십선十善의 실천과 악업의 정화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하근기의 도의 구조가 짜여 있다.
중근기의 도道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중근기는 상대적으로 고통이 적은 선취의 행복을 추구하는 하근기의 목적에 만족하지 않는 자이다. 왜냐하면 선취에 태어나서 누리는 행복은 참된 행복이 아닐뿐더러 잠시 선취의 행복을 누리더라도 그것은 유한해서 다시 악도에 태어나므로 결국 고통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중근기는 하근기가 구하는 선취의 행복조차도 괴로움으로 보고 악도와 선취라는 윤회에서 영원히 벗어나 해탈하기를 바라는 자이다.
그러한 바람이 없으면 중근기의 도로 들어갈 수 없으며 중근기의 본래 목적인 해탈을 이룰 수도 없다. 따라서 그러한 중근기의 의요를 일으키기 위해서 고제와 집제를 통해 윤회의 해악과 윤회의 과정을 사유하고 더불어 십이연기로써 윤회의 원인과 결과를 통찰하면 윤회에 대한 환멸과 염증을 느껴 비로소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려는 참된 출리심이 생기게 된다. 그러한 중근기의 의요가 생기면 해탈을 이루는 실질적인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삼학이다. 하근기와 중근기의 도는 이와 같이 각 근기의 의요를 일으키는 방법과 실질적으로 그 근기가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을 순서대로 설명한다.
대사께서 『광론』에서 수차례 강조하고 있듯이 하근기의 도 없이는 중근기의 도로 나아갈 수 없고, 중근기의 도를 거치지 않으면 상근기의 도로 나아갈 수 없다. 상식적으로 하근기의 도에서 말하는 고통에 대한 통찰 없이 윤회의 고통에 환멸을 느끼는 중근기의 출리심이 어떻게 생길 것이며 선취의 중생들까지 연민하는 상근기의 자비심이 어떻게 생길 수 있겠는가? 이것은 아래 근기의 도란 상위 근기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임을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세 가지 근기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한 노력 여하에 따라 키울 수도 있는 것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세 근기의 도에 있어 그 순서와 과정들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세 근기의 도의 구조를 파악하고 접근하는 데 용이할 것이다.

〈본문 일부〉

올바른 논[正論]과 구결(口訣, man ngag) 없이 혼자 힘으로 교설을 배우기 때문에 후대의 중생들은 그 뜻을 얻지 못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스승[軌轍師]들께서 경을 해설하는 논서와 구결문口訣文을 저술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구결이라면 경장에 대해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구결의 가르침을 아무리 배워도 그것이 경론의 의미에 확신을 주지 못하거나 경론과 상충되는 도를 설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버릴 바이다.
어떤 이들은 삼장을 수행의 핵심이 없는 현학(衒學)의 대상으로 삼고, 수행의 핵심적 의미를 설하는 가르침은 따로 존재한다고 이해하며, 정법에 있어 교학[經敎]과 수행의 법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인식은 청정한 현교와 밀교의 경(經), 그리고 경의 해설서인 청정한 논(論)에 대해 큰 신심을 일으키는 것을 방해한다. 경론은 내밀한 의미를 설하지 않고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경시한다면 그것은 ‘법을 버리는 업장(業障)’을 쌓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해탈을 구하는 이들에게 속임 없는 최상의 가르침은 분명 삼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뛰어난 경론의 가르침에만 의지해서는 스스로 지혜가 부족하여 그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처럼 경론에 대한 이해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스승의 구결을 구해야 하는 것이지, ‘경론은 지식을 위한 것일 뿐 핵심이 없고 구결이야말로 내밀하고 깊은 뜻을 설하므로 뛰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76~77쪽)

우리의 번뇌는 매우 거칠어 스승을 섬기는 법을 모른다. 알더라도 행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법을 듣는 이들에게는 스승으로 인한 무량한 죄가 생긴다. 하지만 이를 참회하거나 반성하는 등의 마음이 생기기 어렵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대로 스승을 섬기는 공덕과 섬기지 않는 해악을 알고 거듭해서 사유해야 한다. 무수한 전생에서 스승을 어떻게 섬겨 왔는지 그것을 돌아보고 마음속 깊이 참회하여 다시금 불경의 죄를 짓지 않을 것을 여러 차례 다짐한다. 제자[法器]의 요건에 있어서도 스스로 노력하여 갖추어야 한다. 선지식을 알아볼 수 있도록 선지식의 완전한 자격과 요건을 거듭 사유한다. (145쪽)

‘수행(곰, sgom)’이라는 이 유명한 말은 선(善)의 대상에 반복하여 마음을 기울이고 함양하는 것이다. 무시이래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휘둘려왔으며, 마음을 내가 내 뜻대로 휘두르지 못하였다. 그러한 마음도 번뇌와 같은 장애들을 쫓음으로써 모든 잘못과 허물이 생겨났다. 수행이란 이러한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선한 대상에 원하는 대로 마음을 부리기 위한 것이다.
두서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수행하면 ‘수행할 가짓수는 이 정도이고 이런 순서로 해야지’라고 생각하여 행하여도 자신의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원하는 대로 선의 대상에 마음을 부리는 데 큰 장애가 생긴다.
처음부터 버릇이 잘못 들면 한 평생 수행[善行]에 허물이 생기기 때문에 먼저 수행할 대상의 수(數)와 단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명확하게 정해진 수행 대상과 다른 어떤 것에 마음을 쓰지 않겠다는 결의를 여러 번 깊이 다진다. 그처럼 확정된 수행보다 지나치거나 부족함 없이 억념(憶念)과 정지(正知)를 갖추어 수행해야 한다. (155쪽)

들음이 많을수록 들음에서 생기는 지혜[聞慧]가 많고, 문혜가 많을수록 사유가 많으며, 사유가 많을수록 사유에서 생긴 지혜[思慧]가 많아진다. 이 사혜가 많을수록 닦음[修]이 많아지고, 닦음이 많으면 허물을 차단하고 공덕을 이루는 방편이 많아지는 까닭에 수행에 있어 문사의 중요함을 경론에서 거듭 말씀하신 것이다.
문사를 통해 정립된 것은 닦음[修]을 위해서가 아니라 표면적인 지식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하거나, 닦을 때 정립된 내용과는 무관한 것을 닦는다면 마치 경마장을 만들어놓고 엉뚱한 곳에서 경마를 하는 것과 같다.
만일 그렇게 되면 경론에서 말씀하신 문사의 중요성은 무의미한 말이 되고, 세 가지 지혜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이치를 설하는 경교의 보편적인 체계까지도 무너지게 된다. 또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반드시 많이 배울[多聞]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말도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들을 이해하지 못한 증거로, 현교와 밀교를 많이 배운 자나 전혀 배우지 못한 자 모두 이후 실제 수행에서 별 차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며 또 수행을 하는 자가 법을 듣고 경책[經冊]을 보며 생각하는 것 등을 흠으로 여기는 나쁜 전통들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170쪽)



출판사 서평

『보리도차제론』이 티벳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가치는 티벳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문에서 늘 회자되고 법문 주제로 자주 채택되곤 해서 존자님의 법문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역작이고 티벳 수행자들에게 사랑받는 필독서라 하더라도 우리 한국 불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리도차제론』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말 그대로 깨달음의 길이라는 도의 과정을 해설하는 책이라는 점도 있지만 우리사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14세기라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나온 이 역작은 쫑카빠라는 인물의 시대적 고민에서 나온 시대적 산물이다. 대사의 저작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시대상과 문제를 읽으면 지금 우리에게 이 저작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저작은 당시 티벳 불교사회가 안고 있던 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 티벳 불교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왔다. 스승의 부재, 교리적 오해, 맹목적인 믿음, 가치관의 혼란 등 대사의 시대가 그랬듯이 이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김성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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