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불교의 수장, 인권과 평화의 수호자로 상징되는 달라이 라마의 대담집. 지은이 쟝 끌로드 까리에르는 개인적인 관심사나 종교적 관점을 초과하는 질문들로 달라이 라마의 사상과 그 주변을 탐색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교리 중심의 불교 해석서도, 달라이 라마 연구서도 아니다.

직접 대담을 통해 작성된 글이기 때문에 해석상의 근저한 차이는 있을망정 달라이 라마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얽기설기 엮어 놓은 허술한 책은 아니다. 책의 컨셉도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에 초점을 맞추어 가능한 한 달라이 라마의 실제 언변과 사고의 깊이를 탐색하도록 하였다.

인터뷰어의 첫번째 질문은 '시대인식'에 대한 것이다. 까리에르는 (종교상의) 두 가지 전통, 즉 인도인의 우주관에 기댄 '파괴의 시대'와 불교에서 말하는 '축복받은 시대'를 대비하여 이들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

이에 달라이 라마는 두번째 시대인식에 동의를 표하면서 그 근거로 세가지를 예로 든다. ① 전쟁이란 개념이 축소되거나 폭력의 사용이 많이 자제되었다는 점 ② 종교 단체간의 관용과 대화('아힘사'[보편적인 사랑]의 확산)가 이루어진다는 점 ③ 타국민을 '하나의 인류'라는 개념에서 바라본다는 점이 그것이다. 근거가 제시되자마자 인터뷰어의 반박이 따랐지만 '평화적 국면'이라는 달라이 라마의 시대인식은 시종일관 바뀌지 않았다.

이어 '교육과 산아 제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불교는 '깨달음'을 중시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교육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그 점에서 티벳 불교도 자신들만의 학교를 건립하고 후학 양성에 사력을 다해왔는데, 티벳 불교의 수장 달라이 라마 역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고 강조했다.

달라이 라마가 여느 종교 지도자와 색다른 점이 있다면 '산아 제한'에 있어서다. 그는 산아 제한에 대해서 '널리 알려서 추천할 필요가 있지요'라고 답하며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특히 이 점은 (인간만의 생존이 아닌) 생태계의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돋보였는데, 그 와중에서도 중국에 의해 자행되는 티벳민에 대한 강압적인 인구통제는 '티벳 토지 점령 정책(식민지 건설)'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있었다. 이 점은 달라이 라마가 현재 티벳 독립의 선봉임을 뚜렷히 확인시켜 준다.

그밖에 종교의 보수성, 유럽 통합, 환경 문제, 제3세계의 무지, 경전 해석의 다양성, 기술적 진보와 영적 성장의 불균등성한 발전에 대해서 대담을 진행하였다. 이 주제들 역시 매우 중요하고 촉박한 문제들로 그 중에는 앞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만큼 영구적인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같은 점을 종합해 볼 때 본서는 달라이 라마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을 폭넓게 타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히 종교 지도자의 숭고한 말씀을 듣는 차원을 떠나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요동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담의 진지함에서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