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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연못에 바람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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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빈 연못에 바람이 울고 있다
정가 9,800원
판매가 8,820원
저자/출판사 혜자 스님 지음/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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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286
발행일 200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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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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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청담 대종사 탄신 100주년 기념 평전. 격동의 한국 근대에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혼미하던 불교계의 정화를 위해 헌신하는 한편 종교 간 대화와 화합, 대중 포교에도 주력, 한국 불교의 대표격인 조계종을 재건한 스님의 일대기와 회상, 행장기 등을 수록했다.


저자소개

혜자 스님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14세 때 삼각산 도선사에서 출가하였다. 청담 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참선과 교리공부를 하며 도선사에서 많은 소임을 맡았다. 청담 큰스님께서 열반하실 때까지 곁에서 시봉했으며, 스님께서 열반하시자 통도사 승가대학에서 경학연찬을, 송광사 선원에서 수선안거를 했으며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총무원장 사서실장을 거쳐 현재 호국참회도량 도선사 주지로 있다. 지은 책으로 『사람 노릇하고 살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산중명상집』『절에서 배우는 불교』 등이, 엮은 책으로 『영원한 대자유』등이 있다. 


이상균 

《불교신문》 기자이며 지은 책으로 『한국의 선서화』『발우』가 있다.


목차

스님! 벌써 가셨습니까 ... 13 


다 마음의 장난이구나 -출생에서 진주농고 시절 ... 23 

젊음에 타오르는 부처 -출가 결심 ... 37 

가엾은 조선아! -출가와 조선 불교 학인대회 ... 49 

만물에 불성이 있어 -만주, 수월스님과의 만남 ... 63 

부처가 있는 곳에 머물지 말라 -만공 스님의 가르침 ... 71 

... 


눈알을 달라면 뽑아줘 -종단 복귀 ... 225 

아아, 등불이 꺼졌다 -열반 ... 241 


부록 

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청담 큰스님에 대한 회상 ... 249 

청담 스님 행장기 ... 279 




출판사 서평

청담 큰스님은 일찍이 "설령 금생에 성불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사람을 다 건져놓고 부처가 되겠다"고 당당한 선언을 했다. 청담 큰스님은 교육 포교 역경 3개 과제 등 한국 불교의 대중화, 현대화의 방향을 제시했다'견성성불'과 '중생 구제'라는 수행자의 전범을 그대로 실천한 대도인이었다. 청담 큰스님은 조계종을 대표하는 한국 불교의 역사이자 진정한 자화상이다. 


청담 스님 100주년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기억들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청담 스님의 사리는 8개다. 하지만 자료로 남아 있는 사진에서 다비장을 헤치는 승려들의 손끝에 헤이는 사리는 1000개를 넘는 듯 보인다. 1000개의 사리가 8개로 발표된 것은 청담 스님의 열반 후 모인 장례의원들 사이의 논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정도의 사리면 조선을 포함한 근 5백 년 만의 제일로 많은 사리가 될 것입니다… 사리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은 평소 아상我想,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없었던 청담 스님의 뜻과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 한과의 사리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일반대중들에게 청담 스님의 수행자로서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열반에 드신 스님께서는 평소 팔정도八正道를 즐겨하셨습니다. 사리가 8과 출현했다고 대중들에게 말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청담 스님은 일반인들에게 불교 정화의 선봉장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시대 대처승 제도 등을 도입하여 왜색을 띠게 된 불교를 정화하여 본연의 한국 불교로 돌아가자는 '불교정화운동'은 청담 스님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만나면서 완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참선과 수행, 법문의 견성이었던 청담 스님은 '정화 불교'라는 고답적인 수식에 갇혀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자인 혜자 스님은 머리말에서 말한다. 


"청담 큰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사의 첫 출발이자 회귀처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위대한 발자취는 '정화 불사'라는 화인에 갇혀져 있다.…… 청담 큰스님은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지속될 한국 불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근·현대 한국 불교의 총체적 집합체인 청담 큰스님을 감춰진 역사를 넘어 만나야 한다." 


8개와 1000개, 청담 스님이 태어난 100주년은 무심을 질타한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8'과 달리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992'개의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청담 스님 100주년을 맞아 청담 스님의 재평가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청담 스님, 시대가 요구한 큰스님 

1902년에 나신 청담 스님은 한국의 격동기를 체험했다. 집안의 가장이자 최고의 명문인 진주농업고등학교 재학생인 이찬호(청담 스님)가 승려가 되는 과정은 이미 속세의 영광을 지난한 고행의 길로 전도하는 해탈의 과정이었다. 출가를 위해 만주로 수월 스님을 찾아가기도 하였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하였다. 결국 옥천사에서 법명 청담(靑潭)을 받고 출가에 성공한다. 


그는 이후 지난한 수행의 과정을 거친다. 문수암에서의 지독한 안거는 유명하다. 어린이가 들어갈 만한 토굴에 공양 드나들 자리만 남긴 채 문에다 문을 박고 들어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해가 바뀌는 동안이었다. 그 이후로도 오로지 정신이 남는 경지에 이르는 정진 수행은 계속된다. 


현대 불교의 거대한 분기점을 이룬 봉암사 결사, 청담 스님은 성철 스님과 함께 봉암사 결사의 주역이다. 책의 중간에 만나게 되는 봉암사 결사의 혁명적인 분위기는 그 시절 불교의 활기를 전한다. 가사와 장삼은 회색으로 물들이고 발우는 철발우를 쓰고 대중살림을 위해 스님들이 나무하고 물 긷고 탁발하는 것을 일상화 하는 등의 17개 항의 공주 규약을 제정하고 이는 이후 수행자들의 계명이 되었다. 


청담 스님은 정화불교의 수호자가 되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독신 비구승에게 사찰 농지를 반환하여 세계에 자랑스러운 사찰 문화재를 보호하게 하라'는 담화문은 한국 불교를 들끓게 한다. 그리하여 청담 스님은 1954년 전국 비구승 대회를 거쳐 정화운동의 숨가쁜 전개의 중심이 되었다. 대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문교부의 승인 하에 새롭게 비구승 종단이 출범하지만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절대 권력을 누려온 대처승들의 반박도 만만찮았다. 그 결과 1960년, 대법원이 비구승 승소인 원판결을 뒤집어 버린다. '불법에 대처승 없다'란 플랜카드를 앞세운 비구승은 대법원 앞으로 행진하고 대법원장의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정화운동의 꽃이었던 6비구 할복 사건이 일어난다. 


그는 당대當代와도 끊임없이 만나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당시 『법화경』 우리말로 옮긴다는 가톨릭 신자인 이광수를 만나 토의를 통해 『법화경』 번역을 막고 불교신자로 개종시켰고, 조지훈 시인과의 정화논쟁을 통해 정화불사의 의지의 대변자 노릇을 하였다. 세계 불교 지도자 대회와 한국종교지도자회를 주도한 종교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소설처럼 읽히는 책은 청담 스님의 숨겨진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 부록으로 마련된 청담 스님의 시자를 지냈던 스님들의 회고를 통해 그분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본문 소개 


봉암사 결사와 그 풍경 

"성철 스님, 나 청담이 왔소," 관음전 문이 벌컥 열리며 투박하고 무뚝뚝한 얼굴의 성철 스님의 얼굴이 보였다. "와 이리 늦었노. 그리 가지고 공부하것나. 퍼뜩 들어오그라. 상의할 것이 많데이." 

한국현대선불교의 새로운 얼굴이 탄생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속리산 복천암 상주 포교당 문경대승사를 넘나들며 세웠던 승풍 진작을 위한 총림건설의 원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널찍한 봉암사 대중방에는 결연한 태도를 한 수좌들이 모여 있었다. 청담 성철 자운 성수 도우 홍경 종수 스님 등이었다. 청담 스님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림을 개설하고 청정한 수행을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지금 우리 불교는 왜색 불교로 인해 계율과 청정한 승풍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은 한국 불교를 일으킨다는 결사의 심정으로 이번 총림결사에 참여해야합니다" 

말이 없던 성철 스님도 입을 열었다. 

"제가 여러 문헌을 통해 우리 선대 조사님들이 어떻게 살았나를 늘 살펴봤습니다. 결론은 총림개설을 통한 백장청규의 실천에 있었습니다. 스님들이 스스로 밥을 해먹고 나무를 하고 그리고 수행도 하는 수행공동체가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의제를 통일하고 의식을 통일해야 합니다." 

봉암사 대중들은 이 자리에서 17개 항에 달하는 '공주 규약'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왜색풍의 가사 장삼 발우 등도 바꿀 것을 결의했다. 가사와 장삼은 회색으로 물들이고 발우는 철발우를 쓰기로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살림을 위해 스님들이 나무하고 물 긷고 탁발하는 것을 일상화했다. 봉암사 결사에 대한 소문을 천리만리 퍼져나갔다. 많은 스님들이 정말로 그렇게 하는 것인가를 확인하러 참가하기도 하고 보러왔다. 그러나 수행 규칙이 너무도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떠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신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식을 들은 인근 신도들이 봉암사로 밀려드는 것이었다. 청담 스님과 성철 스님이 대중들을 소집했다. 

성철 스님이 입을 열었다. 

"스님과 신도들 간의 위계 확립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신도와 스님간의 위계를 위해 신도들은 스님에게 삼배를 하게 합시다. 뿐만 아니라 보살계법회를 일상화하고 천도재 법회에서는 금강경과반야심경을 독송하게 합시다. 그리고 법당에 중단예불을 폐지하고 반야심경으로 독송의례를 전환합시다." 

스님과 신도들 간의 위계 확립을 위해 삼배 그리고 반야심경독송으로 의례를 전환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청담 스님과 성철 스님은 모든 대중들과 운력을 하면서도 총림결사의 틀을 잡아나가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다. 


청담 스님의 글 

깊은 밤 승려들은 바람과 적요를 만난다. 그것들은 길을 건너고 나무숲을 헤지면서 풍경소리가 뎅그렁 뎅그렁 울리는 산간의 사원을 찾아온다. 승려들은 바람소리를 본다. 바람은 기체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데도 본다고 하는 것은 보는 것이 눈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음으로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하늘이 푸른 것을 보고 노을의 아름다움을 보고 적요의 쓸쓸함을 보고 그것들 속에 내재한 만상의 이치를 본다. 

승려들이 아니 사유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을 이러한 밤으로 택하는 이유는 밤에 가장 조용하게 그 모든 것들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의 밤을 나는 찾아갔던가. 검은 이파리 사이에서, 냇물 가에서, 의문들은 머리를 들고 일어서고 그것들은 마치 도금한 놋그릇들처럼 반짝이면서 나의 가슴에 와 부딪친다. 무수한 파장이 일어난다. 물결은 왜 아래로 흘러가며 나뭇잎은 왜 한없이 서걱이는 걸까. 왜 나는 그 소리들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일까. 안다는 것이란 또 무엇일까. 물결이 흐르는 것은 땅이 경사졌기 때문이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에 밀리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있어서 흐르고 흔들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밤에 밖에 나와 보면 그런 평면적인 대답이 무미건조하고 그 너머에 그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그 것이 무엇일까. 조주 스님은 이럴 때 무어라고 대답하셨을까. 여전히 무(無)라고 대답하셨을까.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또 다른 의문이 일어난다. 견성이란 무엇인가. 자기의 본성을 보는 것이다. 본성이란 그러면 무엇인가.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자기의 본체 즉 만물의 근원에 자리한 불(佛)이다. 

"어떤 처사는 그 불을 구하여 일생을 보낸 끝에 어느 날 한 대승을 만나 이야기 했었다. '이대로 시주만을 얻어먹고 도를 얻지 못하면 죽어서 소밖에 될 것이 있겠소.' 이때 대승은 이렇게 말했다. "소가 되더라도 무비공(無鼻孔)만 되면 좋지." 무비공이라는 그 말에 순간 처사는 대오(大悟)하고 꿇어 엎드리었다. 사람들은 해탈을 가리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한다. 무수한 승려들은 이렇게 의문에 의문을 넘어간다. 가령 나만하더라도 일찍이 견성(見性)의 미미한 그림자를 보았을 때 세상에 내던진 소리가 있었다. 


'만상의 나무들이 누렇게 시드는데 

벼랑 위에 오직 한 나무 싱싱하게 

푸르러 있더라.' 


오늘 나는 어두운 도선사의 나무숲을 헤치고 가면서 그 게송에 의문을 던진다. 어떻게 '잎사귀가 시들고 '홀로 푸르다'는 흔적을 남기고 지혜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을까.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아직도 미망의 그림자를 벗어버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닐까. 마치 바람처럼 마치 달빛처럼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고, 어떠한 그릇에도 어떠한 시간에도 자유자재인, 시늉할 수 없는 그것이라고 부른 것이 아닐까. 그럴 것이다. 모든 법이 다 군더더기 일 따름이다. 선사들께서는 팔만사천 법문이 필요 없다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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