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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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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정가 35,000원
판매가 품절
저자/출판사 엔닌 지음/김문경 옮김/중심
적립금 1,58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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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562
발행일 2001-01-30
ISBN 978898952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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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9세기 중엽 불법을 찹아 10년에 걸쳐 당나라를 순례한 일본 천태종 제3대 좌주 자각대사 엔닌의 일기체 기록. 기록 당시 8, 9세기의 해상권을 장악했던 신라인들의 모습들과 동아 해상교역을 이끌었던 장보고와 그 선단의 정확한 발자취를 상세히 볼 수 있다.


목차

서문 ...7 
엔닌의 여행 경로 ...10 
입당구법순례행기 제1권 ...15 
입당구법순례행기 제2권 ...155 
입당구법순례행기 제3권 ...309 
입당구법순례행기 제4권 ...433 
엔닌 연보 ...541 
참고문헌 ...543 
찾아보기 ...546 


출판사 서평

▶ 일본의 국보 엔랴쿠사(延曆寺)에 장보고(張保皐) 기념비를 세우게 만든 책 

2002년 1월 13일, 일본 교토에 있는 엔랴쿠사에서는 9세기 초중반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을 독점했던 해상왕 장보고를 기리는 높이 4.2미터의 거대한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다. 이 행사는 국내 언론으로부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한일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대단히 의미 깊은 것이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한국의 불국사에 일본인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운 것과 같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엔랴쿠사는 일본 천태종 총본산으로 일본의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 국보이다. 
그러면 일본은 왜 그들의 유서 깊은 국보에 장보고의 기념비를 세우게 했는가. 
그것은 일본 천태종 3대 좌주로서 일본 불교사상 가장 뚜fut한 족적을 남긴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엔랴쿠사의 주지를 지낸 지가쿠 대사(慈覺大師) 엔닌이 서기 838년 당나라에 들어가 10년간 구법 순례를 할 때 장보고와 그 휘하의 재당(在唐) 신라인들로부터 받은 도움 때문이었다. 
엔닌은 일본을 출발해 귀국할 때까지 9년 6개월에 걸친 구법활동을 일기체로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남겼는데 이 책 안에 그가 신라인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절반 가까이는 신라인들이다. 
미국의 저명한 동양학자 라이샤워는 이 책을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현장법사의『대당서역기』와 함께 세계 3대 여행견문록으로 손꼽고 있다. 
이제 이 뜻 깊은 책이 신라사 연구의 권위자이며 재단법인 해상왕장보고연구회 회장인 숭실대 김문경 명예교수에 의해 국내에서 최초로 완역 역주본으로 나오게 됨으로써 우리는 9세기 동아시아의 사회상과 재당 신라인들의 활동상을 직접 접할 수 있게 되었다. 

▶ 엔닌의 입당 구법 순례 과정 

이 책은 엔닌이 45세 때인 서기 838년 6월 13일 청익승(請益僧)으로 견당사선(遣唐使船)을 타고 하카타만(지금의 후쿠오카)을 떠나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847년 9월 17일 다시 하카타만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과 귀국 이후 3개월간의 생활을 일기체로 기록한 여행견문록이다. 
엔닌은 당초 당나라에 들어가 천태종의 발상지인 태주(台州) 천태산을 순례하고 천태종의 경전에 관한 의문점을 풀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당 조정에 의해 천태산 순례의 허락을 받지 못하자 오로지 불법(佛法)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견당선에 동승했던 신라인 통역과 상의해 귀국선에서 내려 당나라에 머물기로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불법체류를 시도한 것이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엔닌은 신라인들의 도움으로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지금의 산동반도 끝에 위취)에서 839년의 겨울을 보내게 된다. 엔닌은 적산법화원에 머무는 동안 신라승 성림화상으로부터 북쪽에 있는 대주(代州)의 오대산이 남쪽의 천태산 못지않은 불교의 성지라는 말을 듣고 오대산행을 결심한다. 
적산법화원의 원주(院主) 법청(法淸) 스님을 비롯한 신라인들의 도움으로 엔닌은 840년 봄 오대산 순례에 필요한 공험(公驗·여행증명서)을 당나라 관리로부터 발급받아 적산원에서 2,990리 떨어진 오대산 순례를 떠난다. 
오대산 대화엄사에서 2개월 동안 머물며 수많은 불교의 유적을 순례하고 고승들로부터 경전 강론을 들은 다음 엔닌은 840년 8월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도착한다. 
엔닌은 당시 당 조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환관 구사량의 배려로 장안의 거찰 자성사에 머물며 일본에 없는 불교 경전을 필사하고 밀교의 행법인 지념(持念)의 비법을 전수받는다. 구사량은 대단히 불심이 깊은 인물로 승려들이라면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돌보아주었다. 
그러나 장안에 머물기 2년째 되었을 무렵부터 당시 황제 무종에 의한 대대적인 불교탄압인 이른바 회창폐불(會昌廢佛)을 만나게 된다. 
결국 엔닌은 불교탄압의 와중에서 845년 5월 강제로 환속되어 귀국길에 오른다. 엔닌은 그동안 필사한 경전 등을 몰래 꾸려 장안을 나서지만 그의 귀국길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귀국선을 찾아 양자강 하구의 양주(揚州)에서부터 산동반도의 끝자락 등주(登主)까지를 두 차례나 오르내리며 2년간 무려 5천 리를 헤맨 끝에 재당 신라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귀국선을 구하게 된다. 엔닌은 귀국선상에서 다시 머리를 깎고 승복을 갈아입고 청해진을 거쳐 하카타만으로 입항한다. 
한마디로 엔닌의 구법활동은 신라인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따라서 『입당구법순례행기』 자체도 신라인들의 도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재당 신라인들의 활동상과 신라불교의 의식을 전하는 귀중한 자료 

일본의 견당선에는 신라인 통역들이 한 명씩 동승해서 이들과 당나라 관리들과의 교섭을 중개했으며 견당사 일행 가운데도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838년의 견당선은 3척으로 구성되었는데 당나라에 들어오면서 풍랑을 만나 다시 쓸 수 없을 만큼 파손된다. 다음해 견당사절단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초주에서 신라인들에게 부탁해 신라배 9척과 신라 선원 60명을 구해서 귀국한다. 
엔닌이 순례한 산동일대의 큰 절에는 대부분 신라원이 있었는데 이러한 신라원은 당나라를 여행하는 신라승과 신라인 무역업자들이 머무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장안은 물론 해안의 주요 지역에는 대부분 신라인들이 모여 사는 신라방이 있었다. 
엔닌은 순례 여행중 신라원에서 머물기도 하고 신라방의 통역과 관리들로부터 공험의 발급과 관련해 전적인 도움을 받는다. 초주에 사는 신라인 통역 유신언은 엔닌과 일본 본국 사이의 연락은 물론 엔닌이 일본으로 가지고 가기 위해 몰래 장안에서 갖고 온 경전 필사본 등을 맡아 보관해주고 귀국선을 알아보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다. 
엔닌은 적산법화원에 머무는 동안 재당 신라인들이 추석 명절을 지내는 풍습과 그 유래를 나름대로 적고 있으며 적산법화원의 강경의식(講經儀式)과 일일강의식(一日講儀式), 송경의식(誦經儀式) 등을 순서대로 아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엔닌은 이러한 불교의식이 대부분 신라식으로 거행되고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것은 신라 강경법회의 행법을 전하는 유일한 기록으로 우리 불교사 연구에 실로 둘도 없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 3대 여행견문록 가운데 하나 

엔닌의 순례행기는 일본인다운 꼼꼼한 기록으로 9세기 중엽 당나라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며 신라와 발해, 일본과 관련해서도 정사에는 나오지 않는 귀중한 자료를 곳곳에 남기고 있다. 
대운하를 통해 양주에서 해주까지 이르는 동안 배를 옆으로 여러 척 묶어 물소가 끌고 가게 한다든가 소금을 실은 배들이 수십 리나 이어지고 운하 주변에 부유한 집들이 즐비하며 물새를 인공사육하는 사람 등도 등장한다. 황하나루에서는 크고 작은 배들이 서로 손님을 태우기 위해 경쟁하고 사람과 나귀의 뱃삯이 얼마라는 것에서부터 곳곳의 물가와 인심 등을 적고 있다. 등주에서 오대산에 이르는 2,300리 길에는 메뚜기의 피해로 농민들이 시름에 잠겨 있고 먹을 것이 떨어져 도둑이 횡횡하며 어떤 지역에서는 메뚜기 떼가 길을 덮어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한식날에는 관리나 민간인 할 것 없이 사흘을 쉬며, 섣달 그믐날 해질 무렵 지전(紙錢)을 태우고, 정월 초하루 새벽에는 민가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만세를 부르며, 당시 이미 인쇄된 새해 달력이 팔리고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또 일본의 견당사 일행 가운데 일부가 당나라에서 매매를 금지하는 약품 등 금수품을 시장에서 구입했다가 당나라 관헌에게 구금당한 경우라든가, 당나라 관리들의 지위에 따른 옷 색깔, 주의 자사나 절도사 등 고위 관리들의 행차 모습 등도 상세하고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한마디로 엔닌의 순례행기는 9세기 중엽 당나라의 정치, 경제, 민속, 종교, 법제, 지리 등 사회상 전반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산간벽지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는 촌부에서부터 무한권력을 휘두르는 황제의 상상을 넘는 사치와 폭정이 등장하는가 하면 해안의 번성하는 항구 도시와 당제국의 수도 장안의 화려함까지 한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라이샤워 박사가 이 책을 세계 3대 여행견문록의 하나로 꼽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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