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명 | 선림의 수행과 리더쉽 (성철스님이가려뽑은한글선어록04) 정선스님의 선림보훈 |
---|---|
정가 | |
판매가 | 13,500원 |
저자/출판사 | 정선 / 장경각 |
수량 | |
페이지수 | 316 |
발행일 | 2017-07-20 |
상품간략설명 | [양장본] |
SNS 상품홍보 | |
---|
(최소주문수량 1개 이상 / 최대주문수량 0개 이하)
사이즈 가이드책 소개
정선스님의 선림보훈 『선림의 수행과 리더쉽』. 이 책은 성철스님이 가려 뽑은 한글 선어록 시리즈 네 번째 책으로서 송대(宋代) 선사들의 어록이나 전기에서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어구와 기연(機緣) 등을 모은 선림보훈(禪林寶訓)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목차
뇌암도추(懶庵道樞)
출판사 서평
『선림보훈(禪林寶訓)』은 송대(宋代) 선사들의 어록이나 전기에서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어구와 기연(機緣) 등을 모은 글이다. 문헌에 따라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선문보훈(禪門寶訓)』 등 이라고도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서문에 따르면 원래는 우리에게 『서장(書狀)』으로 잘 알려진 임제종 양기파(楊岐派) 묘희대혜(妙喜大慧, 1089~1163)스님과 죽암사규(竹庵士珪, 1082~1146) 스님이 운거산(雲居山) 운문사(雲門寺)에서 토굴을 짓고 살면서 모은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출판?유포되지 못하고 순희(淳熙) 연간(1173~1189)에 정선(淨善)스님이 운거산에 갔다가 조안(祖安)스님에게 낡고 손실된 『선림보훈』을얻었다. 이후로 정선스님은 10여 년 간 여러 어록과 전기를 참고하여 50여 편을 추가로 모아 전체 300여 편으로 구성된 현재 상태의 『선림보훈』으로 다시 편집하고 서문을 붙여 1182년 2권으로 간행하였다.
『선림보훈』에는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 스님부터 불조졸암(佛照拙庵, 1121~1203)까지 150여 년의 세월동안 송대에 활약한 임제종 선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선림보훈』 서문에도 밝히듯이 총림의 도덕이 쇠퇴해가는 현실을 염려하여 옛 스님들의 말씀이나 수행을 수립하여 납자들의 귀감이 되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선림보훈』의 두드러진 특징은 각 편마다 출처를 밝혀놓은 점이다. 이런 방식은 이후 『인천보감(人天寶鑑)』(1230년) 등에서도 보이는데, 『종문무고(宗門武庫)』, 『총림성사(叢林盛事)』, 『고애만록(枯崖漫錄)』등 여러 스님들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담는 송대 주요 문헌들의 흐름에서도 독특한 특징이다.
거사와 주고받은 서한으로 유명한 대혜스님이 편집을 시작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림보훈』에는 송대 선사들이 거사들과 얼마나 많은 교유가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상당하다. 지역 군수는 물론 왕안석(王安石)이나 장상영(張商英) 등과 같은 정치인부터 황정견(黃庭堅) 등의 문인까지 여러 거사가 등장한다. 또한 유가의 문헌을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송대의 유교와 불교와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
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선림보훈』에는 주지살이와 관련한 스님들의 법문이 많은부분을 차지한다. 교단 내적으로 선종 사원의 구색을 갖춘 송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림보훈』은 명대 이후로 대장경에 편입되어 여러 선종 문헌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런 만큼 명말(明末)에서 청대(淸代)에 걸쳐 몇 가지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명말 숭정(崇楨) 8년(1635) 운서사의 대건(大建)스님이 지은 『선림보훈음의(禪林寶訓音義)』 1권이 처음 나왔고, 이를 토대로 명말 영력(永曆) 4년(1650) 장문가(張文嘉)와 장문헌(張文憲)이 편찬한 『선림보훈합주(禪林寶訓合註)』 4권이 나왔다. 이어 영력(永曆) 8년(1654) 앞의 『합주(合註)』에서(序)를 썼던 행성(行盛)스님은 42분 스님의 깊은 뜻을 염송(拈頌) 74수로써 나타내고, 『선림보훈염송(禪林寶訓拈頌)』 1권을 지었다. 그 후 청(淸) 강희(康熙) 17년(1678) 덕옥(德玉)스님의 『선림보훈순주(禪林寶訓順?)』 4권과 강희(康熙) 45년(1706) 지선(智禪)스님의 『선림보훈필설(禪林寶訓筆說)』 3권이 있다. 이처럼 많은 주석서가 나오게 된것은 그들 서문에서 번번이 밝히고 있듯 총림이 쇠퇴함에 따라 총림의 귀감이 되는 것을 밝히고자 한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일찍 『선림보훈』이 간행되었다. 현재 보물 제700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림보훈』 2권본은 그 간기(刊記)에 의하면, 고려 우왕(禑王) 4년[선광(宣光) 8년, 1378] 충주의 선찰(禪刹)인 청룡사(淸龍寺)에서 개판(開板)하였다.
양가(兩街) 요암행제공(了庵行齊公)이 『선림보훈』을 얻어 보고는 처음 보는 것이라 감탄하면서 그의 문인 상위선사(尙偉禪師)에게 판각하여 유포할 것을 부탁하니, 상위선사는 만회(萬恢)스님과 함께 모연하고 고식기(高息機)와 최성록(崔星錄)이 모연을 도왔다. 그리고 환암(幻庵)스님이 글[題]을 써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조선 중종(中宗) 20년[가정(嘉靖) 4년, 1525] 순천 대광사(大光寺)에서도 2권으로 된 『선림보훈』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