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일치일란一治一亂, 이 단 한마디로 설파한 적이 있다. 요컨대 한번 잘 돌아갈 때가 있으면 한 번은 엉망일 때가 있다는 뜻이다. 바둑으로 치면 내가 한 수 두면 다른 이가 한 수를 두어야 하는 세계, 이 세계에선 검은 돌만 두 번 놓을 수 없는 법이다. 그렇듯 세상은 늘 돌고 돈다. 삶뿐이랴. 역사도 일치일란한다. 중국 역사는 이 말이 얼마나 적확한지 잘 보여준다. 중국 고대 문명을 찬란하게 꽃피웠던 주나라 시기를 치세라 한다면, 주나라가 무너지고 군웅이 할거하는 시기는 난세다.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중국 문명의 초석을 다졌던 주나라는 봉건제도라는 독특한 정치 구조를 채택한다. 그 넓은 땅을 중앙정부가 직접 다스릴 수 없기에 이른바 ‘지방자치’를 시도한 셈이다. 중앙정부는 왕이 다스렸다. 지역을 나눠―이를 분봉이라 한다―충성심이 강한 친족이나 공신을 파견해 다스리게 했다. 이렇게 파견된 지방 수장들을 제후 혹은 공이라 불렀다. 왕과 제후가 서로 ‘치’하면 정국은 안정된다. 그러나 둘 중 하나거나 둘 다거나 어디선가 ‘난’하기 시작하면 백성이 고달파진다. 권력에 빈틈이 보이면 욕망이 꿈틀거린다. 전쟁이다. (본문 83~84쪽)
중국인은 허풍이 세다.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그러는지는 몰라도 중국 하면 ‘뻥’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뻥’을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좋게 말하면 풍부한 상상력이다. 중국에서 무협영화가 발달한 것도 바로 이 상상력 때문이다. 중국의 허풍과 상상력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이 바로 『장자』이다. 『장자』는 허구에 가까운 우화로 진리에 접근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보통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훨씬 멀리까지 나아간다. 이른바 충격요법이다. 장자는 우리에게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장자는 진리란 상대적이며 인간의 편협한 시각은 진리를 왜곡한다고 주장한다. ‘미’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미는 곧 ‘추’가 되기도 한다. 미추만 그렇지 않다. 범위를 확장하면 진리의 절대성도 무너지고 상대적 진리만 남는다. 지구인 모두가 동의하는 절대적 미인이 존재하는가! 자문하면 장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금방 느낌이 올 것이다. 진리가 다양할수록 상상력의 범위가 넓어진다. 중국인은 장자 덕분에 상상력의 무한 원천을 얻었다. (본문 88~89쪽)
(공자의 제자이자 경제적인 후원자였던)자공은 질문하기를 좋아했다. 무엇을 묻는다는 은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말했던 ‘무지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자공의 탁월성은 여기에 있다. “나는 무지하다. 모르는 것은 묻고 배워야 한다.”
자공은 진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스승 공자에게 묻고 또 묻는다.
“자장과 자하 중에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가 이에 답을 하셨다.
“자장은 과過하고 자하는 불급不及하다.”
그러자 자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낫겠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친 것과 모자란 것은 같다.”
자공은 그들의 장단점을 보고 배우고자 공자에게 누가 더 현명한지를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한 마디를 그에게 전해준다. 고사 과유불급의 출전이 바로 여기이다. ‘지나침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오역이다. 이는 이 구절의 맥락과 공자의 평소 가르침을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주희의 주석은 이렇다.
“자장은 재주가 많고 관심사가 넓어 구차하고 어려운 일을 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중中에서 지나친다. 자하는 지켜야 할 도리를 돈독히 하고 근엄하게 지키므로 관심의 규모가 좁다. 중中에서 모자라는 편이다.”
주희는 둘 다 중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중에 미치지 못했기에 과하든 모자라든 매한가지다. 그러므로 과유불급은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가 아니라 중용에 미치지 못하므로 ‘모자란 것도 더한 것도 다 문제’라고 이해해야 한다. (본문 126~127쪽)
사람들 사이에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아마도 사십, ‘不惑’일 것이다. 사십이 되면 생의 후반기에 접어든다. 전반기에 뿌렸던 씨를 거두는 나이이다. 그만큼 재물도 쌓이고 지위도 올라간다. 경제 사회적 지위가 확보되면 그에 따른 문제가 파생한다. 재물을 쌓는 과정에서 송사도 따르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만나는 사람도 많아진다. 여기에 수많은 충돌과 유혹이 따라온다. 이럴 때는 확고한 자기 기준이 있어야 한다. 즉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의 경계를 가를 척도가 필요하다. 유혹이라는 외부적 사태를 자기 내부의 확고한 기준으로 물리쳐야 한다. 공자는 마흔에 이를 완성한다. 그것이 이른바 불혹이다. 괴력난신怪力亂神과 이단異端에 흔들지 않는 주관을 확립한 것이다. 주희는 『논어』 주석에서 불혹의 의미를 정확히 짚는다. “사물의 타당한 이치를 의혹 없이 확신하게 되면 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