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녀는 아주 오래 산길을 걸었고 마을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둠은 위협하듯 가까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알렉산드라는 두 다리의 움직임이 안정되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이대로 영원히 빠른 속도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베트 인들은 이 때때로 찾아오는 주관적인 체험을 자신들이 ‘룽곰(lung-gom)’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비법이라고 도보 여행가들에게 알려주었다. 알렉산드라는 이것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지만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우연하게도, 늦은 시간이라는 상황과 그때까지 걸으면서 쌓인 피로 때문에, 그리고 아득한 목적지, 오직 그 한 곳만을 일관되게 응시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알렉산드라는 황홀경의 걸음 상태에 돌입할 수 있는 알맞은 조건에 놓이게 된 것이다. 밤이 깊었어도 그것이 그녀가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197쪽)
알렉산드라는 가끔씩 거의 공포에 질린 듯한 슬픈 표정에 잠겨 라첸의 계곡으로 내려가는 꾸불꾸불한 산길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이 길을 따라가면 그녀는 다시 번뇌로 가득한 속세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로, 북아프리카로, 집으로, 그리고 남편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에는 다른 방향이 있었으니,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그녀의 관심은 북쪽의 금지된 고갯길로 옮아갔다. 그녀는 글을 통하여 과거에 영국-티베트 협정이 맺어지기 전에는 이 종교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간단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성난 어조로 지적하곤 했다. 이제는 티베트 국경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약 50킬로미터 길이의 방책이 세워졌다. 그녀의 동굴에서 한나절만 걸어가면 이 금단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236-7쪽)
알렉산드라를 바깥으로 나가도록 만든 것은 사람들의 숭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좀더 높은 것을 갈망하는 증거일 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알렉산드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몽골 피리의 떨림과 그뒤에서 불규칙하게 울리는 구리 심벌즈 소리였다. 아첨을 하는 군중들 한복판에서 이 음악은 마치 광활한 초원의 유목민 천막 위로 부는 산들바람처럼 왕년의 디바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바르르 떨리게 만들었다. 머나먼 곳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방랑에 대한 욕망에 조만간 굴복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들판에서 홀로 텐트를 치고…… 이러한 생각이 그녀를 흥분시켰다. (267-8쪽)
기차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알렉산드라는 펑펑 터지는 플래시와 기자들의 성가신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세속적인 생활에 혐오감을 드러내고 또 그러한 태도를 고수해 왔다. 그럼에도 이 돌아온 순례자는 아주 태연하게 수많은 인터뷰에 응했다. 알렉산드라는 파리 언론의 기자들이 그녀 속에서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언론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잔다르크와 같은 유형의 프랑스 여걸이면서 마법사고 동시에 열정적인 동양학자가 되었다. (4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