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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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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정가 15,000원
판매가 13,500원
저자/출판사 사계절
적립금 68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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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283
발행일 2006-11-15
ISBN 978895828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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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실크로드의 무대, 중앙아시아 역사 현장에 주목하다

일명 ‘비단길’이라는 뜻의 ‘실크로드’는 단지 비단 교역로서만이 아니라, 동과 서의 문명교류 통로라는 의미로 확대되어 왔다. 실크로드 연구는 문명교류사 위주로 전개되었고, 동쪽의 문명과 서쪽의 문명이 어떻게 만나고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의 거시적 측면에 치우쳐 왔다. 즉 동서문명의 ‘가교’라는 측면이 강조되었고, 실크로드를 통해서 어떤 인물이 이동했고, 어떤 물자가 전달되었으며, 어떤 종교나 사상이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주류를 이뤄왔다. 정작 문명교류의 무대이자 주요 변수였던 중앙아시아 역사 현장에 대한 연구는 밀려나 있었다.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거나 거쳐 간 국가와 민족의 수는 무수하며, 중앙아시아 지역의 역사에는 그 자취가 아로새겨져 있다. 문명교류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역사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고, 또 중앙아시아 지역은 단지 문명교류가 지나쳐 가는 경유지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문명교류를 매개하고 그 양상을 규정하는 주요 변수이기도 했다.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중앙아시아 역사 현장에 대해 밀착한 연구들을 싣고 있으며, 문명교류의 양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이뤄진 교류가 만들어낸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유한 역사를 보여준다.

중앙아시아학회 10년의 성과물

한국에서 중앙아시아 연구는 일제시대 입수된 오타니 컬렉션과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중앙아시아 유물을 토대로 시작되었고, 1990년대에 현지 답사가 이뤄지면서 본격화되었다. 1993년 발족된 중앙아시아연구회를 발전시켜 1996년에 창립된 중앙아시아학회는 역사, 언어, 고고미술, 복식 등의 각기 다른 분과의 연구자들 200여 명이 모여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는 10년 학회 활동을 중간 결산하는 것이자, 현재 중앙아시아 연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성과물이다.

책 속으로

전통적 실크로드건 현대적 실크로드건 간에 실크로드란 조어(造語)는 유럽문명 중심주의의 소산이다. 원래 실크로드란 명칭은 중국 비단의 일방적인 대서방 수출에서 유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단이 로마제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진귀품이었음을 기리기 위해 사용되어왔다. 사실 비단이 동서 교역품의 주종으로 오간 것은 기원을 전후한 짧은 한때의 일에 불과한 것으로, 진정한 문명교류의 차원에서 유래된 말은 아니다. 따라서 그 사용이 적절치 못하기는 하지만, 비단이나 비단 교역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에 하나의 아칭(雅稱)으로 그냥 관용되었다.--- p.14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던 상인들을 상세히 기록한 현존 자료 중 첫 번째는 600년경 투르판 외곽의 한 관소에서 1년 동안 거둔 세금의 내역을 기록한 영수증 37건이다. 신발 바닥에서 분해했기 때문에 이 영수증들은 내용상 단절이 있으며 연속적이지 않다. 현지의 관리들은 매 보름마다 거둔 세금을 장부에 기록했고 그 액수를 은화의 수로 적었다. 첫째 달과 열두 번째 달 사이의 보름 기간 중 아홉 번은 전혀 세금을 징수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이 특정 세관의 세무가 불안정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37


 

7세기 소그드 무용인은 뾰족한 모자를 쓰고 좁은 소매가 달린 아래 도련이 넓은 포를 입고 반소매의 반비를 입고 있다. 심목고비이며 장화의 끝과 손끝도 뾰족하게 과장된 모습이다.--- p.100


 

한진 시기 누란?영반 지역은 중원에서 서역으로 통하는 중요한 노선인 ‘누란도(樓蘭道)’의 요충지였다. 다양한 차원에서, 중원 둔수병은 이곳에서 주둔하면서 방어를 담당하고, 중원 사신 등은 이곳을 분주히 오갔다. 일부 둔전병리(屯田兵吏)?사신 혹은 한지 상인이 객사하거나 전사하여 매장될 때, 한의 전통 장례습속에 따라 매장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따라서 이곳에 문화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 장례풍속, 즉 명의 수장(隨葬)이 존재하는 것은 정상적이다.--- p.129


 

“범어잡명”에서는 “호”를 한자로 “소리(蘇?)”, 인도의 실담문자(브라흐미 문자)로 Sul?, 일본의 가타카나로 “ソリ(소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은 “蘇?=Sul?=ソリ”는 수그딕(Su?δik)의 범어형의 한자 음사이며 그것이 “소그드”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수그딕(Su?δik)은 돌궐?위구르 시대의 고대 투르크어 비문에서는 수그닥(Su?daq)으로 나타난다. 더구나 이 비문에서는 고비 사막 이남의 오르도스 지방에 있던 소그드인 집단인 “육주호(六州胡)”를 알티 추브 수그닥(Alti ?uv Su?daq)으로 번역하고 있다. 알티는 “육(六)”을 의미하고 추브는 “주(州)”의 음사이므로 여기에서도 “호=소그드인”이라는 등식을 얻을 수 있다.--- p.136


 

“카루나푼다리카”의 고행 부분을 읽으며, 필자는 이 부분의 작자가 라호르 박물관의 불상과 같이 붓다의 고행을 묘사한 훌륭한 조형 이미지를 실제로 보았거나, 적어도 그런 상에 대해 들은 바가 있으리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카루나푼다리카”의 최초 원본이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별경들이 존재했다 해도 그 연대가 간다라의 고행상들보다 올라간다는 확증이 없기 때문에(여기서도 필자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에서 시간의 선후 정도만을 더듬고 있을 뿐이다), 간다라의 조형 이미지들이 “카루나푼다리카”의 서술을 따른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p.178


 

“Yogalehrbuch”와 한역 경전이 유사한 요소를 많이 공유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경전들의 전반적인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즉 유사한 이미지가 경전 내의 다른 맥락에서 다른 순서대로 등장하는 것이다. 한편 유사한 이미지들의 대부분은 매우 특징적인 것들로서 그 유사성이 우연의 결과라고는 하기 어렵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Yogalehrbuch”가 편찬된 시기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그 시기를 확정지을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매우 발달된 단계의 내용으로 판단하건대 아마도 한역 경전보다 다소 늦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한역 경전이 “Yogalehrbuch”에 영향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들 경전은 유사한 요소를 매우 공유하고 있지만, 그 연관관계는 단순히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p.221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신앙이 강제적인 조치만으로 일시에 폐기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처음부터 샤머니즘을 비롯한 전통신앙과 관습을 적극 수용하고 불교 체계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불교나 전통신앙 모두 상대에게 용인될 정도로 변화를 겪었다. 여기에서 이른바 두 집단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데, 몽골 초원 곳곳에 보리수가 만발한 시기에 편찬된 『할하 법전』에 불교 관련 법규가 정비되어 있는 것과 달리 샤며니즘 규제 법규가 전혀 없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보면 『할하 법전』의 종교 신앙 관련 공정은 두 종교의 통합과 화해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어떻든 몽골을 불교 전파 과정은 전체적으로 전통신앙에 대한 탄압에서 통합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도 몽골 불교사의 커다란 특징의 하나이다.--- p.253


저자소개

정수일
파란만장한 삶을 산 학자, 정수일 교수.그는 일제 강점기 연변의 가난한 유민의 아들로 태어나, 북경대학을 거쳐 중국 외교부에서 근무하며 중국의 엘리트로 거듭났다. 그러다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북한으로 건너 가 평양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그 후 평양대학교를 떠나 10년동안 튀니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의 대학에서 이슬람을 전공한 교수로 활동해왔다가 1984년 그는 한국인이 아닌 아랍계 외국인의 신분으로 남한에 돌아온다. 그는 아랍계 외국인으로서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이국스러운 외모와 완벽한 아랍어 구사로 한국에서 만난 아내조차 그를 아랍인으로 믿고 있었다.

1988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였고, 1990년 〈신라와 아랍·이슬람제국관계사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후 단국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강의 하였고, 많은 저술 활동 및 대외 활동을 하며, 한반도의 고대문명과 아시아와 이슬람간의 문명교류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학술 활동을 전개했지만, 그는 1996년 ‘정수일’이라는 이름의 북한공작원으로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되고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감옥에서 ‘문명교류학’이라는 그의 학문연구에 몰두했다. 사형이 선도되기 전, 그는 이미 국내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였지만, 감옥 안에서 그는 자신의 얽혀버린 삶을 반성하듯 더욱 더 연구에 매진하여 200자 원고지 2만5,000장 분량의 연구 초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200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정수일은 석방, 이후 2003년 4월 30일 특별사면 및 복권되었으며 5월 14일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는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를 통하여 자신의 할 일을 학문에 몰두하는 일이라고 다짐한다.“하나하나를 새로이 출발하고 새로이 쌓아간다는 심정과 자세로 과욕이나 성급함을 버리고 천릿길에 들어선 황소처럼 쉼 없이, 조금도 쉼 없이, 오로지 앞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할 것이오. ”현대사의 한국이 놓여있던 갈라짐과 분열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던 학자는 사형수로서 독방에서 해왔던 것과 같이 쉼 없이 이슬람과 실크로드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있다. 어긋난 삶의 복원은 그가 추구하는 학문 속에서, 그 지식이 담긴 글 속에서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씰크로드학』, 『고대문명교류사』,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문명 교류사 연구』, 『이슬람 문명』 등이 있으며, 역주서로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등이 있다.

엮은이 : 중앙아시아학회
1993년 2월부터 활동해온 중앙아시아연구회를 발전적으로 계승, 1996년 10월 12일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2006년 현재 등록회원의 숫자는 200명에 이르고 있고, 학회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연구회원도 70여 명에 달한다. 넓은 의미의 중앙아시아, 즉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삼고 있는 이 학회는 중앙아시아의 역사, 언어, 고고미술, 복식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과 일반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03년 12월 『중앙아시아연구』가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학술지로 선정되어 학문적으로 더욱 성숙한 결실을 일궈내고 있다. 창립년도인 1996년 1호가 발간된 이래 2005년까지 10호가 출판되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는 중앙아시아학회는 금후 학회 활동과 위상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해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의 중아앙시아 연구자들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 김호동

실크로의 개념과 그 확대 | 정수일

실크로드 무역이 한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 500~800년 투르판 오아시스 | 벨러리 핸슨

신 출토자료에 나타난 소그드 복식 | 김용문

누란, 영반 유적지 출토 한진 시대 '명의'의 고고학적 의의 | 위즈용

당대 불교적 세계지리와 '호'의 실태 | 모리야스 다카오

간다라 미술과 경전상의 자료
: 고행불상과 , | 이주형

중앙아시아 불교의 관상 수행 : 문헌과 미술 자료 | 야마베 노부요시

16세기 말 이후 몽골 불교의 확산과 전개 | 이명래


부록 : 논평 | 권영필


줄거리

실크도르, 문명교류의 길

문명교류사 연구자인 정수일은 실크로드의 개념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있었던 협의의 문명교류와 보편적인 인류문명의 교류라는 두 차원으로 정리한다. 정수일은 실크로드 개념을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며 문명교류 일반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실크로드가 연장되고 확장되는 양상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며, 실크로드가 단선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과 서, 남과 북으로 복선적이며 망상적으로 증폭, 확대되었다고 밝힌다. 특히 실크로드가 구대륙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신대륙으로까지 확장되는 환지구로 단계를 설정한다. 또 실크로드가 한반도까지 연장되었다는 통설을 구체적인 사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입증해낸다.
--- 실크로드의 개념과 그 확대 / 정수일

투르판 문서로 복원해낸 1500년 전 오아시스 도시의 생활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인 투르판에서는 죽은 사람을 종이로 된 장화, 모자, 허리띠, 신발 등으로 장식을 했는데, 종이가 귀해서 각종 문서들이 사용되었다. 이 출토 자료는 부분적이고 파편적이기는 하지만 당대를 엿보게 하는 중요한 사료로 쓰인다. 밸러리 핸슨은 투르판 출토 문서를 해독하여, 500~800년 당시 투르판 지역의 생활상과 경제 활동 등을 복원한다. 세금영수증, 진술서, 여행허가증, 계약서, 조서 등을 통해 투르판의 민족 구성과 상업활동, 사회구조, 노예 매매, 종교 생활 등을 밝혀낸다.
-- 실크로드 무역이 한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500~800년 투르판 오아시스 / 밸러리 핸슨
도판 p35 그림 4

복식 문화와 풍속으로 읽어낸 소그드인

실크로드를 유랑하며 문물교류를 매개한 주역은 바로 소그드인이었다.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 사이의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한 소그드인은 국제상인으로서 사방에서 활약했다. 소그드인의 생활은 문명교류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용문은 소그드인들이 남긴 아프라시압 벽화, 판지켄트 벽화, 묘실 석판의 벽화에 나타난 복식과 풍속을 분석하여, 당대의 교류상과 소그드인들의 생활상을 읽어낸다.
--- 신 출토자료에 나타난 소그드 복식 / 김용문

고고학으로 접근한 매장 풍속

‘명의(冥衣)’는 부장용 의류로서 실제보다 작고 조악하게 만들어져 있다. 신강 지역 고고학자인 위즈용은 누란, 영반에서 출토된 명의를 분석 자료로 삼아, 그 특징을 추출해 장례 풍속을 탐구한다. 그러면서 명의가 출토된 누란과 영반의 묘실 구조와 명의 매장이 한진 시대 장례 전통과 장례 관념을 드러낸다고 밝힌다. 또 한진 시대 누란?영반 지역의 위상과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명의 출토를 통한 장례풍속 탐구가 갖는 고고학적 의의를 강조한다.
--- 누란?영반 유적지 출토 한진 시대 ‘명의’의 고고학적 의의 / 위즈용

번역사전을 통한 교류사

불교는 당대(唐代)에 지배적 종교였고, 또 단순한 종교 이상의 학문, 사상 체계, 최첨단 지식의 보고였다. 문화적 교류는 불교와 불승을 매개로 이뤄졌고,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활발했다. 따라서 범어(梵語)와 한어(漢語) 사이의 번역이 불가피했고, 여러 종의 범한사전이 출현했다. 일본에서 전해지는 『범어잡명』은 인도의 실담문자와 한자, 가타가나를 병기하고 있으며, 『번한대조동양지도』는 각국의 국명이 한자와 티베트어로 병기되어 있다. 사전과 지도를 통해 당시의 교류사와 세계상을 보여주는 모리야스는 결론적으로, 한자의 ‘호(胡)’가 소그드를 지칭하는 것이었음을 입증해낸다.
--- 당대 불교적 세계지리와 ‘호’의 실태 / 모리야스 다카오
p136 그림 1 또는 p142 그림 4(오른쪽부터 불교적 우주지도인 <연화대장세계(蓮華臺帳世界>), 티베트 문자로 된 다라니, 각국의 영역이 사각형으로 표시되고 그 안에 한자와 티베트 문자로 국명이 기입되어 있는 <번한대조동양지도(蕃漢對照東洋地圖)>)

간다라 미술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

간다라 미술의 국제적 전문가인 이주형은 이미지가 텍스트에 의존하고 있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간다라 불상에서 특수하게 드러나는 고행상과 그에 관련된 문헌들의 관계를 따져보며, 조형 이미지와 문헌의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 석가모니의 고행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불전 사건을 표현한 조형 이미지를 보는 행위를 간다라 지역 불교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 간다라 미술과 경전상의 자료: 고행불상과 『랄리타비스타라』, 『카루나푼다리카』/ 이주형

구전으로 전승된 중앙아시아 불교의 관상 수행

이주형의 글에서 제기된 중앙아시아 불교의 관상 수행을 다룬 경전과 회화의 관계를 검토하면서, 역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따져본다. 특히 관상 수행에 대한 한역 선경인 『관무량수경』을 중심으로 각각의 경전과 회화, 벽화 등의 내용을 꼼꼼하게 비교하여, 경전들과 회화의 관계가 일치하지도, 무관하지도 않은 불분명한 관계라고 설명한다. 저자 야마베 노부요시는 각각의 경전과 회화가 각기 다른 구전 판본에 의존했다고 정리한다.
--- 중앙아시아 불교의 관상 수행: 문헌과 미술자료 / 야마베 노부요시

법전을 통해 분석한 몽골 불교 정착기

중앙아시아 역사현장에 대한 접근의 일환으로 16세기 이후 몽골에 불교가 어떻게 정착되고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주목할 점은 몽골에서 불교 정착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몽골인이 남긴 법전(法典)을 분석 자료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법률 수준이 종교 의식과 일치하든, 그렇지 않든 당시 사회의 종교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법전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 내린 결론은 불교가 토착 신앙에 대해 탄압과 통합과 화해라는 정교하고 복잡한 정책을 구사했으며, 불교의 토착화와 민간 신앙의 불교화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 16세기 말 이후 몽골 불교의 확산과 전개 / 이평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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