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조영문
저자 조영문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필리핀을 시작으로 6대륙 20여 개국을 여행했으며, 아마존 밀림과 사하라 사막과 같은 오지 탐험을 할 만큼 도전적이고 열정적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미국 오하이오 주 마이애미 대학교 교환학기를 마친 뒤, 70일간 북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11개국을 혼자 여행한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삶은 작고, 가볍고, 튼튼하게”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아이파크몰 재경팀에 입사했지만 20대 리스트에는 없던 죽음이라는 실체를 맞닥뜨리며 삶의 질에 대한 의구심을 안고 스웨덴의 쿵스레덴을 종주하기로 결심했다.
공식 코스인 북부 쿵스레덴 450km를 완주하려고 갔으나 현지에서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남부 쿵스레덴 350km 코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완전체인 800km 코스를 종주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트레킹에 도전하여 삶의 길을 닮은 야생의 아름답고 거친 환경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20년 후에 다시 한 번 쿵스레덴을 가겠다고 결심한 후 생명력 넘치고 자기주도적인 30대를 시작하고 있다.(2010)
“혼자 왔나요?” “네, 오늘 셰크티아 오두막으로 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네요. 어제 눈 때문에 너무 고생해서.” “혼자 간다면 위험할 것 같군요. 차라리 돌아가는 게 어때요? 니칼루오크타에서 온 사람들 말을 들어 보니 그 쪽 길은 괜찮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두 배가 넘게 더 걸어야 되네요. 그래도 생각해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본문 66쪽) 발을 앞으로 내디딘 순간 몸이 잠수함처럼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허리쯤에 있던 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턱까지 차올랐다. 한 걸음을 내디딘 것뿐인데 남은 생의 모든 시간을... 더보기 “혼자 왔나요?”
“네, 오늘 셰크티아 오두막으로 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네요. 어제 눈 때문에 너무 고생해서.”
“혼자 간다면 위험할 것 같군요. 차라리 돌아가는 게 어때요? 니칼루오크타에서 온 사람들 말을 들어 보니 그 쪽 길은 괜찮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두 배가 넘게 더 걸어야 되네요. 그래도 생각해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본문 66쪽)
발을 앞으로 내디딘 순간 몸이 잠수함처럼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허리쯤에 있던 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턱까지 차올랐다. 한 걸음을 내디딘 것뿐인데 남은 생의 모든 시간을 단숨에 넘어 죽음의 문 앞까지 도달한 듯했다. 아차, 싶었지만 물속에 잠긴 20kg의 배낭이 등에서 거세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나는 그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쿵스레덴을 종주하고 지금보다 더 멋진, 의미 있는 나만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죽음을 거부하려는 듯 두 팔과 두 다리를 버둥거렸고 순간 손에 쥐고 있던 등산 스틱을 나도 모르게 땅에 꽂은 후 온 힘을 다해 몸을 물 위로 끌어 올렸다.(본문 73쪽)
아비스코에서 출발한 지 8일째 되던 날 싱이에 도착했고 이틀에 걸려 바코타바레까지 가면서 적극적으로 짐을 정리해 나갔다. 하루에 15~20km를 20kg 이상의 배낭을 메고 날마다 걷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일도 이렇게는 못 걷겠다. 이러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쓰러지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배낭을 열고 보물단지처럼 여겼던 것들을 버릴 수 있었다.(본문 83쪽)
“북부와 남부 쿵스레덴을 모두 걷는 한국인은 제가 처음 아닐까요?”
“그럴 것 같네요. 북부와 남부를 모두 걸은 사람은 스웨덴에도 거의 없거든요. 대단한 일이에요!”
“남부도 무사히 다 걷는다면 정말 대단할 거예요.”
“그런데 이곳까지 당신을 보내준 부모님은 더 대단한 것 같네요.”(본문 182쪽)
마지막 65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길의 끝에 서자 도착했다는 기쁜 마음과 쿵스레덴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되었다. 오는 동안 내내 묵묵히 길을 걸었고 복잡하고 미묘하게 울리는 마음의 소리에 집중했다. 두 다리가 없는 여자를 한 남자가 업고 지나가는 것조차 쿵스레덴은 그들을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본문 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