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황철은 붉은 부적을 만들어 집 안 곳곳에 붙이고 입으로 주문을 세 번 외웠다. 그러자 얼마 후 집 안에서 작은 불꽃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것은 반딧불이었다.
바라보고 있던 식구들 모두 깜짝 놀랐다.
“허! 이 엄동설한에 반딧불이라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일세그려!”
여기저기서 너울거리며 춤을 추던 반딧불이 집 담장 한쪽 끝으로 모여들었고, 담 밑에 이르러 서로 뒤엉키더니 큼직한 덩이가 되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횃불을 켜고 살펴보니 마치 해골 같은 모양이었다. 가루가 되어 집 안 도처에 흩어져 있던 것을 황철이 도술을 부려 원래 모습으로 되돌린 것이다. 황철은 그것을 거둬 깨끗한 땅에 묻어주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 뒤로는 괴이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고 식구들의 병도 말끔히 나았다.
- 〈퇴마사 황철〉
휘잉! 바람과 함께 음산한 기운이 미닫이문 사이로 스며들었고, 흔들리는 등잔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방 한 귀퉁이에서 손에 칼을 든 귀신이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한 눈에 입은 귀까지 찢어졌으며 들고 있는 칼은 등잔불 밑에서 푸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귀신은 금방이라도 병자에게 달려들려고 하다가 옆에 있는 이항복을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이보시오, 좀 비키시오.”
그러나 상대가 누구인가! 이항복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귀신을 빤히 노려보았다.
“넌 누구냐?”
귀신이 칼끝으로 한창 열에 들떠 누워 있는 병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전생에 저자와 큰 원한이 맺힌 사이요. 그래서 지금 밀린 복수를 하러 온 것이니 어서 저자를 내게 내어주시오. 만일 일을 방해한다면 당신까지 해치고 말겠소.”
그러나 이항복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어디 맘대로 해보거라.”
- 〈귀신의 복수를 막은 이항복〉
전우치는 돗자리만큼 큰 종이를 펼쳐놓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다 그려 넣었다. 빽빽한 골짜기도 빠짐없이 그리고, 냇가에는 버들가지를 쭉쭉 늘어뜨린 다음 당나귀에 타고 있는 사람도 그렸다. 그런데 전우치가 그림을 다 그리고 붓을 내려놓았는데도 당나귀의 눈에 눈동자가 비어 있었다.
그림을 살펴보던 임금이 이상히 여기고 물었다.
“어째서 당나귀 눈에 눈동자가 없는 것이냐?”
“아, 그렇군요!”
전우치는 그 즉시 붓을 들어 당나귀의 눈에 점 하나를 찍으면서, “소인 물러가겠습니다!” 하고 그 당나귀를 타고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아래 골짜기로 달아나버렸다.
- 〈전우치, 그림 속 당나귀를 타고 달아나다〉
어느 새벽,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아낙이 깜짝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우물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이웃 마을까지 번졌고, 고장 사람들은 곧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며칠 뒤 왜구가 침범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이것이 곧 임진왜란이었다.
그 후로도 또 한 번 이 우물이 넘쳤는데, 1950년 6월 25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었다. 그날도 새벽부터 우물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민족동란의 비극을 알리기 위한 우물의 충정이었다고 믿고 있다.
우물은 이미 두 번이나 넘쳐흘렀다. 지금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늘 정량을 유지하며 조용히 샘솟고 있는 이 우물은 언제 또다시 넘칠 것인가? 도승의 예언대로 과연 세상의 종말은 찾아올 것인가?
- 〈도승과 말세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