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上堂)하여 말했다.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밝아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을 멀리 벗어나서, 진실되고 항상됨을 몽땅 드러내고 문자에 얽매이지 않는다네. 마음은 오염됨 없이 본래 완성되어 있으니 허망한 인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곧장 여여(如如)한 부처로다.” (41쪽) 본래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 곧 자기의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찾아다니며 부처를 구하는데, 선지식이 말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다.’는 방편의 약에 의지하여 밖으로 찾아다니며 구하는 병을 치료하면, 밖으로 찾아다니며 구하지 않게 된다.... 더보기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밝아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을 멀리 벗어나서, 진실되고 항상됨을 몽땅 드러내고 문자에 얽매이지 않는다네. 마음은 오염됨 없이 본래 완성되어 있으니 허망한 인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곧장 여여(如如)한 부처로다.” (41쪽)
본래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 곧 자기의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찾아다니며 부처를 구하는데, 선지식이 말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다.’는 방편의 약에 의지하여 밖으로 찾아다니며 구하는 병을 치료하면, 밖으로 찾아다니며 구하지 않게 된다. 병이 나으면 약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만약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다는 것에 고집스레 머문다면, 이것은 선병(禪病)이고, 확실한 성문(聲聞)이니, 마치 물이 얼어 얼음이 되면 비록 얼음이 모두 물이지만 목마름을 해갈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97쪽)
부처님은 집착이 없는 사람이고, 구함이 없는 사람이고, 의지함이 없는 사람이니, 지금 바쁘게 뛰어다니며 부처를 탐내고 찾는다면, 모두가 부처를 등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랫동안 부처님 가까이 있으면서도 부처님의 본성은 알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만 바라보면서도 육도(六道)를 윤회한다. 오랜 시간 지나서 이윽고 부처님을 보는 이에겐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고 말한다.’라고 한다. (191쪽)
물었다. “어떤 것이 마음의 해탈입니까?” 백장이 답했다.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지식을 구하지도 않고, 더럽거나 깨끗한 의식이 사라지고, 다시 구함이 없는 것을 옳다고 지키지도 않고, 의식이 사라진 곳에 머물지도 않고, 지옥의 구속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천당의 즐거움을 좋아하지도 않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면, 비로소 해탈하여 장애가 없다고 일컬으니, 그렇다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전부 일러 해탈이라고 한다.” (3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