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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북,불교용품,불교서적,불교사경

한국 다완의 문양 그 향기로운 상징세계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상품명 한국 다완의 문양 그 향기로운 상징세계
정가 22,000원
판매가 19,800원
저자/출판사 정동주/상상의숲
적립금 99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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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207
발행일 2008-12-22
ISBN 97889961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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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류 최초의 그림문자, 그릇에 새겨 넣은 문양의 상징 이야기!
한국 ‘동다완東茶碗’의 원형을 재현하기 위해 줄기차게 작업해 온 한국차문화학자
정동주가 풀어놓는 상상력과 상징으로 가득 찬 신비로운 문양의 세계!


오랫동안 차 생활을 해온 저자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완에 새겨진 그림 문양과 문양 없는 문양, 다완의 생김새를 중심으로 인류가 걸어온 상상력을 서술한 책이다. 인류의 신화와 함께 탄생한 다완은 그 자체로 문양 없는 문양이자 상징물로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등장한 다완의 다양한 형태 속에서 시대의 보편적 관념과 미학을 어떻게 읽어낼까?'라는 측면에서 풀어내고 있다.

다완은 찻잔, 그릇의 범주에서 실용적인 도구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다완은 의미나 역사성에 있어 정신 영역에 속하는 그릇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과거의 토기들이 제천의식에 사용된 제기라는 측면에서 하늘과 땅의 중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제기에 표현되었던 빗살무늬, 지그재그 문양들이 15세기 고려시대의 다완에 재현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문양의 상징성을 추적하였다. 그리고 문양 없는 문양까지도 문양의 범주에 포함시켜 기도문이라는 다완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있다.


저자소개

정동주
정동주는 1949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다. 1983년에 시집 『농투산이의 노래』를 출간하며 등단하였고, 1984년 제8회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순례자』, 『논개』, 『이삭줍기』, 『논두렁에 서서』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활동하였고, 1995년부터는 '한국문화론' 연구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천민과 짓밟힌 이들의 삶에 관한 기록인 『백정』, 『까레이스키 또 하나의 민족사』, 「조선천민제도연구-백정을 중심으로」, 남성이 쓴 한국 여성사 『어머니의 전설』과 한국 정신의 숲을 노래한 『한국인과 소나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등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글을 꾸준히 발표했다. 한국 불교에 관한 저서로는 『조선 오백년 불교 탄압사, 부처 통곡하다』, 『불교의 향기, 그 다섯 아름다움』가 있고, 불교TV를 통한 2년 동안의 강의를 진행하였다.

오랫동안 차 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옛 문헌에 나타난 한국의 전통 차 '동다東茶'를 연구하고 직접 차나무를 심고 길러 동다를 구현했으며, 한국의 다완 '동다완東茶碗'의 원형을 재현하기 위해 여러 작업을 하고있다. 이와 같은 성과를 토대로 1990년대 후반부터는 '동다문화론'을 근간으로 한 '한국차문화학'을 집대성하기 위해 연구와 강의,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차와 관련된 저서로는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한국 차살림』, 『한국인과 차』, 『우리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 『다관에 담긴 한ㆍ중ㆍ일의 차 문화사』, 『한국 다완의 문양 그 향기로운 상징세계』등 한국의 차와 찻그릇, 차 문화에 관한 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다헌정에 '정동주의 차이야기' 칼럼을 기고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한국 다완의 문양, 그 향기로운 상징세계
1장 빗살무늬에 새겨진 마음 풍경
빗살무늬의 상징성 / 하늘여신, 뱀, 강, 물 그리고 비 / 비와 빗살무늬의 전설과 민속
/ 빗살무늬 상징 의미의 변천
2장 넉넉함을 비는 톱니무늬
이중으로 새겨 넣은 톱니무늬 / 톱니무늬의 / 의미를 찾아서 / 15세기 조선의 꿈
3장 번개무늬에 담긴 하늘 소식
하늘 소식을 듣다 / 지옥신 불뱀과 번개무늬
4장 묵화무늬다완과 신라의 꿈
문무왕의 고백과 차 / 월지에서 차회를 열다 / 통일신라의 미래를 꿈꾸다 / 신라의 차 문화와 불교
5장 청빛으로 빚은 연리문
고려청자의 한 종류 / 연리에 담긴 뜻 / 실험성 짙은 문양의 세계

제2부 한국의 다완, 문양 없는 문양의 세계
1장 문양 없는 토기의 속삭임
인류가 남긴 토기의 이동로 / 토기의 너부죽한 표정
2장 다완에 새긴 얼굴의 주인공
영혼을 달래는 진혼 의식 / 영묘사 막새와 다완의 얼굴
3장 막사발 백자다완의 소박한 풍경
암울한 시대에 등불을 켜다 / 다선일미의 수행 정신 / 막사발이 만들어지다
/ 막사발의 참 아름다움과 초의의 선택

4장 전통이 녹아 있는 온고지신 다완
온고지신 미학의 특징 / 작가정신과 도자 미학
5장 역사의 길목을 지킨 다완들
연기로 옷을 입히다 / 통완이 걸어온 길 / 천목 다완의 추상성 / 전통을 뒤흔든 백자 다완
6장 한국인의 마음, 보시기 다완
보시기라 불린 반찬 그릇 / 작은 사발 보시기 다완

제3부 한국의 동다완, 그 원형을 찾아서
1장 한국 차 문화를 이끌 동다완
한국 차 문화의 실상 / 동다와 동다완 / 동다완의 원형을 찾아서
2장 평등한 공존, 동다완의 세계
세계로 향한 중국, 일본의 차 문화 / 동다완이 품은 차살림 향기

제4부 흙으로 빚은 운명교향곡, 이도다완
1장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다
일본 다도의 병폐 / 무라타 쥬코의 소박한 차법 / 카스가 신사의 이도다완 / 에치고의 이도다완
/ 타케노 죠오의 미의식 / 센노 리큐의 다도확립

참고문헌
색인


출판사 리뷰

“과거에서 현대까지, 토기에서 다완까지, 아름답게 수놓인 문양들과
다완의 문양 없는 문양이 껴안고 있는 상징성을 읽어냄으로써
다완의 정체성을 깊이 들여다본다.”


다완은 동양의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그릇이다. 그릇이라 하면 무엇인가를 담는 용도로 사용되는 실용적 용기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완은 함축된 의미나 그 역사성에 있어서 실용성의 범주를 벗어나 의미 범주, 정신 영역에 속하는 그릇이다. 다완의 역사는 인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재 우리가 보게 되는 일련의 토기들은 고대 공동체를 일정한 이념으로 묶어 내는 구심점이자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제천의식에 사용된 제기였다. 하늘 신과 땅 위의 생명이 소통하는 통로 역할은 제사장의 몫이었고, 제사장은 공동체의 삶을 떠안고 있는 정신적 지주이자 하늘 신의 대리인으로서, 신과 인간의 중간자였다.

땅 위의 소리, 공동체의 영속을 위한 소망과 감사를 전하는 자리는 곧 신과 대면하는 자리다. 그 자리에 제사장이 있었고, 제사장의 손에는 토기가 들려 있었다. 토기는 초기 인류가 상상한 하늘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하늘로 날아올라 소망을 전하도록 새 모양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토기에는 그림문자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문양 또한 인류가 상상한 자연의 언어다. 자연의 언어란 신의 손끝에서 비로소 이뤄지는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증언하는 생명의 언어에 다름 아니다. 인간과 신이 소통할 수 있는 소리 없는 언어, 말 없는 언어가 토기이며 문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제사장의 토기를 기도문이라고 했다.

그 토기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다완의 형태로 발전했고, 문양 또한 전통처럼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 이래 시작된 이 끈질긴 생명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바로 여기가 『한국 다완의 문양, 그 향기로운 상징세계』가 딛고 서 있는 출발점이다. ‘한국차문화학’을 집대성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는 저자 정동주는 과거의 토기부터 현대의 다완까지 아름답게 수놓인 여러 문양들과 다완의 문양 없는 문양이 껴안고 있는 상징성을 읽어 냄으로써 기도문이라는 다완의 정체성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1.『한국 다완의 문양, 그 향기로운 상징세계』의 의의

1) 미개척 분야, 다완의 문양을 오려내다

빗살무늬, 수직선, 물결무늬, 지그재그선, 톱니무늬, 번개무늬, 구름무늬, 꽃무늬를 비롯해 역사의 한 장을 채우는 漢字무늬 등 다완의 기원이 된 토기에서부터 현대의 다완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온 문양들을 빼놓지 않고 한 권에 담아냈다. 또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토기들의 계통을 쫓아 각각의 문양들이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발견되는 이유, 3,000년에서 5,000년이라는 오랜 시간 이동해 온 인류의 이동로을 따라간 토기와 문양의 전달 경로, 선사시대와 청동기, 가야를 거쳐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초기 인류가 놓인 자연환경과 시대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가 문양의 상징의미에 끼친 영향, 시대의 지배적 이념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문양들이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거듭 나타나는 이유 등을 130여 컷에 이르는 수록된 사진 자료를 통해 직접 만나볼 수 있다. 한국의 다완 가운데 상징성이 두드러진 다완들만 선별해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2) 문양 없는 문양, 시대를 온몸으로 말하다

다완에 새겨진 문양만이 문양이 아니다. 다완은 그 자체로 시공간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양이요, 예술로 승화된 인류의 미적 실체다. 다완의 모양에 시선을 집중하면 선과 면과 흙이 뿜어내는 색채가 공간을 채우는 문양으로 성큼 다가오고, 다완을 빚은 누군가의 속 깊은 손짓이,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왜 그 다완이 그때, 그곳에 있었는가? 이 질문에 화답하듯 저자 정동주는 너부죽한 생김새의 토기에서 선사시대를, 사람 얼굴을 한 다완에서 신라를, 초의 선사의 막사기 다완에서 조선을, 조선의 백자다완에서 세종을, 천목다완의 추상성에서 21세기의 사회상을, 신라의 토기부터 현대까지 면면이 이어지는 보시기 모양의 다완에서 한국인의 내면을 그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불러내고 읽어낸다. 이렇듯 저자 정동주의 문양에 대한 미학적 접근은 새기고 긁고 그린 문양의 범주를 뛰어넘어 다완의 역사 그 시작점, 하늘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의 토기에 이미 함축된 시대의 상징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3) 격절된 다완, 원형을 복원하다

고려와 문화적 단절을 끈질기게 추구해 온 조선은 황하문명의 후예인 한족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한반도의 차 문화를 사실상 소멸시켰다. 1600년을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의식儀式 행사에 차가 빠지게 되었고, 1800년대 ?어 초의 선사와 인연을 맺었던 추사, 다산 등 극소수의 지식인과 수행 승려들에 의해 차 문화가 잠시 나타나기도 했지만, 당시 유통된 대부분의 차는 청나라에서 들여온 것이었고, 우리나라에 차나무는 있었지만 차를 만들 줄도 몰랐거니와 마시는 사람이 드물었다. 물론 차 마실 그릇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조선 왕조는 종곡을 맞았다.

저자 정동주는 격절된 한국의 차 문화를 되찾기 위해 오랜 시간 여러 문헌과 토기, 다완들을 연구해 왔으며, 그 결과물로 한국 차 문화의 기틀이 될 다완을 복원했다. 이 다완에 이르기까지 저자 정동주가 찾고자 한 선조들의 차 정신이 무엇인지, 그 정신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다완의 모양은 어떠해야 하는지 오랜 산고의 과정을 하나하나 찾아가 본다.

『한국 다완의 문양, 그 향기로운 상징세계』의 주요 내용

1) 특별한 문양들의 속삭임

인류는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기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창안했다. 특히 인류의 역사 초기에 일련의 그림으로 의사를 전달한 그림문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화된 관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호가 되었다.

빗살무늬는 인류의 역사 맨 앞장을 차지하는 문양이다. 빗살무늬와 지그재그무늬가 새겨진 당시의 유물들은 오늘날로 치면 기도문이 적힌 종이 같은 것인데, 지그재그무늬는 동물이 지나간 흔적을, 빗살무늬는 창을 뜻했다. 하지만 빗살무늬는 신석기 시대에 되자 상징의미가 바뀌었다.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신석기 시대에 아시아와 유럽에서 비를 상징하는 문양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6,000년 전의 기온은 1988년보다 평균 2도 이상 높아 무더웠고, 고온과 열기로 유럽 전역이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12,000년 전과 기원전 8000∼5000년 미국은 지금보다 2.1도 이상 높았고, 무더위와 한발로 생태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를 토대로 고대 연구가들은 빗살무늬가 ‘비’를 의미한다고 결론 내렸다.

유럽과 아시아의 농부들은 잦은 가뭄 때문에 비를 갈망했고, 제사장은 제사를 자주 올려 하늘여신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했다. 또 비가 내리지 않으니 초목이 자랄 수 없어 동물들도 번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비를 뜻하는 수직선 무늬와 땅 위의 생명을 뜻하는 지그재그무늬가 생겨난 것이다. 수평의 물결무늬는 경우에 따라 하늘에 실려 있는 수증기나 비, 구름을 뜻하기도 했다. 톱니무늬는 씨앗을 뿌려 놓은 땅(들판), 경작한 땅, 그 땅에서 자라는 새싹을 뜻한다. 씨앗이 움 트고 새싹이 자라 수확이 풍성하기를 톱니무늬를 통해 기원한 것이다. 당시에는 물과 식량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신성한 사명이었다.

그런데 톱니무늬가 15세기 백자다완에도 나타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조선은 토지제도와 조세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회는 혼란스럽고 분열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백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식량을 많이 생산하는 일이 중요했다. 세종은 재위 기간 내내 토지제도를 손질하고 식량 증산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으며, 뒤이은 왕들도 식량 증산 정책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백자다완에 톱니무늬를 새긴 이유는 순한 단비가 제때마다 흡족하게 내려 들녘마다 곡식이 풍성하고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기를, 그래서 사람과 동물 모두 걱정 없이 배불리 먹으며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천둥, 우레, 번개를 나타내는 번개무늬 또한 전 세계에 걸쳐 전해지고, 대지의 만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를 뜻했다.

신라 문무왕 때의 그릇 '묵화무늬다완'에는 구름무늬, 꽃무늬를 비롯해 言, 貞, 榮, 茶 자가 쓰여 있다. 구름무늬는 비에 대한 갈망을, 꽃무늬는 구름의 조화로 비가 내려 삼라만상이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言은 군자의 언행을, 貞은 굳센 마음과 변치 않는 절개를, 榮은 존경받는 영예로운 직위를, 茶는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것을 뜻한다. 통일신라가 만들어 갈 풍요롭고 조화로운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리문은 문양이 추상적이고 색채가 오묘해 불교의 연기사상緣起思想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12세기 중엽에 완椀으로 제작되었다가 80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연리문 자기가 노경조盧慶祚에 의해 현대작품으로 소개되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밝고 어두운 면의 병렬과 대립, 부정형으로 자유롭게 나눠진 선과 선 안의 분할된 면은 1970년대의 대립과 갈등을 표현한 듯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연리문은 한마디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문양이다. 도자의 전통적인 형태, 문양, 색채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거부하고, 저항한다. 동시에 연리문의 색채며 무늬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를 그려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흙으로 디자인된 세상

문양을 따로 새겨 넣지 않더라도 다완의 형태와 색깔을 통해 시?의 표정과 사상을 보다 강하게 암시할 수 있다. 문양 없는 문양의 상징세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양 없는 토기의 속삭임에 귀 기울려 보자. 빗살무늬가 없는 토기는 낙동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 식량과 물이 풍부하게 넘실대는 강가에 살았기에 인류는 비를 목말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너부죽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진 그릇 모양에서 풍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인류의 모습이 느껴진다.

8세기의 신라 토기 '사람얼굴무늬완'을 보면 도대체 누구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인지 궁금하다. 신라는 통일을 이뤘지만 전쟁의 후유증이 너무 커 전쟁 중에 희생된 영령을 달래기 위해 천도제를 올렸다. 영묘사 절터에서 발견된, ‘신라인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인면막새 또한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 궁금하다. 자식이 천도하길 기도하는 어머니거나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사람얼굴무늬완'과 인면막새를 나란히 두고 보면 어딘가 닮은 데가 있다.

'초의백자다완'은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반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는 경제적 토대가 붕괴되고, 신분제도가 무너져 사람들의 가치관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세상에 선보인 것이 막사기로 주로 생활그릇이었다. '초의백자다완'도 조선 서민들의 생활그릇이었다. 고급백자에서 볼 수 없는 구멍들이 촘촘히 나 있고 빙렬도 보인다. 거짓 없이 웃으면서 서로를 다독이며 한 시대를 건넌 19세기 조선 서민들의 숨소리가 그대로 그릇에서 느껴진다. 초의는 바로 이런 막사발을 다완으로 사용한 것이다. 모든 생명은 서로 관련이 있고, 평등하다는 불교 교리를 근간으로 한 초의의 민중 구원사상, 다선일미와 맥이 통하는 다완이다.

통완 형태의 다완 중에서 천목유약을 입힌 ‘천목유통형다완’은 화려한 색채, 장엄함이 느껴지는 추상 무늬, 유려하면서도 힘찬 멋을 지닌 유적 덩어리, 날아갈 듯 가볍고 종이처럼 엷은 몸체를 지녔다. 천목다완 또한 현대에 들어와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신현철의 작품은 은하수를 옮겨다 놓은 것 같다. 무수한 별들이 빛나고 있다. 작가는 하늘의 별 무리를 다완에 살며시 얹어 놓아 세상살이에 지치고 외로운 인간들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힘차고 당당한 모습 속에 고요함과 평온함이 숨 쉬고 있다.

통완 형태의 현대작품 중에는 전통을 뒤흔든 백자다완도 있다. 전통 백자의 차갑고 엄격한 선을 울퉁불퉁 비틀어 버렸다. 차는 배부르기 위해 마시는 것도, 맛난 것을 즐기기 위해 먹는 것도,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정신의 등대 같은 것이다. 삶이 수월치 않은 시대에 어찌 다완 홀로 고고할 수 있겠냐는 작가정신이 담겨 있다.

‘보시기’는 김치나 깍두기 같은 반찬을 담는 작은 사발로 반찬 그릇이다. 보시기 모양의 다완은 역사가 깊다. 고대 신라의 '토기완'에서부터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규칙한 빙렬이 그릇의 크기와 조화를 이뤄 고졸미가 느껴지고, 소탈하면서 부드럽고 편안하다. 이 땅에 살았던 무수한 서민들의 품성과 생활모습이 오랜 역사 속에서 보시기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시기는 우리나라 다완의 전통적인 모양이라 할 수 있다.

3) 복원된 동다완의 마음자리

동다東茶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기 위해 부르는 한국 차 문화의 이름이며 동시에 일본의 다도, 중국의 다예처럼 한국 차 문화의 몸과 정신을 상징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다완東茶碗은 우리나라 차를 마시는 데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릇이라 풀이할 수 있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제자 한재 이목이 지은 우리나라 유일의 창작 다론『다부茶賦』에서 “흰 사발 꺼내 손수 씻어 놓고 바위틈에서 나온 샘물 끓는 모습 바라보네.”라는 구절에서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영남 사림학파 선비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 차 사발을 손수 씻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를 마실 때 사발, 즉 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옥구’로 적은 그릇의 생김새를 확인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다 디자인을 완성해 작가에게 의뢰하여 만든 것이 '우송분청덩굴문다완'이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 차 문화의 기틀이 될 다완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동다완의 원형을 찾기 위해 도움 받은 다완들은 여러 가지다. 한국인의 심성 속에 깃들어 있는 따뜻함의 세계를 흔히 ‘인정人情’이라 한다.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손빚음 흔적이 선명한 '흑도다완', 넉넉함과 소박함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흑유다완', 단순함의 절정에 이른 듯한 아름다움을 지닌 '청자철채완', 자연스러움과 소박함을 사질토 한 가지 흙만으로 실험해 본 '심산동다완', 그 외에 '죽연백자동다완' 등이 있다. 동다완은 따뜻함과 부드러움, 쓸어안음과 보살핌, 소박함과 자연성을 함축하는, 모든 생명의 평등한 공존을 꿈꾼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는 우리 시대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

4) 일본 차 문화를 바꾼 이도다완

저 유명한 이도다완은 조선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에서 성장해 세계적 예술품이 된 운명교양곡이다. 조선의 생활잡기가 일본에 건너가 다완 중의 다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도다완이란 이름을 붙인 센노 리큐는 스승 타케노 죠오와 함께 조선을 찾았다. 일본 차 문화의 병폐를 바꾸기 위해 다완으로 사용할 그릇을 찾기 위해서다. 그들이 웅천 왜관에 도착했을 당시 일본인 그릇 수입상들은 그릇 굽는 가마를 여럿 지어 놓고 조선의 사기장들을 고용해 그릇을 굽고 있었다. 이들은 다완보다 높이와 입지름이 훨씬 큰 조선의 생활잡기들을 눈여겨보고 그중에서 쓸 만한 그릇을 여러 개 구입했다.

타케노 죠오는 이 그릇들 가운데서 한 점을 골랐다. 그가 선택한 그릇이 저 유명한 '타케노이도다완'이다. 비교적 크기가 큰 편에 속하는 이 그릇의 특징은 과감하고 힘찬 물레선과 당당한 굽에서 성큼 들어 올린 허리의 가파른 각도다. 그는 일본의 차실이 정치적인 장소가 아니라 편안하고 다정다감한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랐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모양새를 갖춘 그릇을 조선에서 찾아낸 것이다.

※ 타케노 죠오가 죽자 일본 차 문화의 정신적 스승은 센노 리큐가 되었고, 1578년 10월 15일 당시 일본의 실력자 노부나가가 연 이른바 ‘야부노이치종화차회’에서 ‘이도다완’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때부터 ‘고려다완’으로 총칭되던 다완들과 ‘이도다완’은 구별이 되었다. 흔히 이도다완은 16세기에 조선에서 만들어졌고, 1510년을 전후해 일본 차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지 따져 보아야 한다. 우선 센노 리큐가 이도다완이란 이름을 붙이기 이전의 일본 차회 관련 기록에는 차회에 사용된, 한반도에서 가져온 그릇들을 고려다완이라고 총칭했다.

즉 일본은 한반도에서 다완 외에도 생활잡기를 들여왔고, 일본의 일부 차인들 중에는 생활잡기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다완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선택된 그릇들이 적어도 12세기 가마쿠라 막부 때부터 차회에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센노 리큐가 이도다완이라 부른 뒤부터 그와 같은 종류의 그릇들을 고려다완과 구분해 이도다완이라 불렀다고 보아야 한다. 한반도에서 일찍부터 만들어진 생활잡기가 일본에 건너와 이도다완이란 이름을 갖게 되면서 눈부시게 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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