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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선종 동산법문과 염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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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초기 선종 동산법문과 염불선
정가 13,000원
판매가 절판
저자/출판사 박건주/비움과소통
적립금 59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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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256
발행일 2012-08-10
ISBN 9788997188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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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초기 선종의 염불선 법문을 역주ㆍ해설한 책!

한국종교문화학회 실무공동대표 박건주의 『초기 선종 동산법문과 염불선』. 1세기 중국 돈황에서 새롭게 발견된, 전 달마대사를 초조로 하는 중국선종의 제4조 도신대사와 제5조 홍인대사가 펼친 동산법문을 역주 해설하는 책이다. 초기 선종기에서부터 난해한 법문으로 정평이 나 있는 능가선으로서의 염불선의 행법에 대해 살펴본다. 초기 선종에서 설하는 염불선의 뜻을 밝히고, 후대에 다른 방향으로 엇갈린 모습들을 지적하고 있다. 분별을 떠나 무심함이 곧 진정한 염불임을 말하는 것이 초기 선종의 염불선이고 동산법문의 요지임을 일깨운다.

책 속으로

○… 도신의 염불 법문은 단순히 칭명(稱名) 염불을 통해 정심(淨心)에 이르게 하는 법문이 아니다. 佛이 바로 心이고, 그 心이 無相임을 뚜렷이 알아, 그 뜻이 자심에서 항상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항상 佛을 念한다는 것은 자심(自心)이 본래 無相이고, 평등하여 無二함을 뚜렷이 알아서(了知) 이 自心이 바로 佛임을 뚜렷이 아는 행이다. 이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양자가 염불의 행을 설하고는 있지만 동일한 행은 아니다. (20p)

○… 당시 동산법문을 ‘無生법문’으로 칭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無生의 법문’은 바로 ?능가경?의 핵심 요의이다. 오직 마음일 뿐이고, 能ㆍ所 떠난 一心이기에 무생(생한 바 없음)이다. ?능가경?에 무생이 생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생이 그대로 무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뜻을 알 때 분별 떠나게 되어 진여(眞如)의 뜻이 드러나며, 그러한 뜻을 처음 알았더라도 쉽게 습기(習氣)의 힘으로 흔들리게 되는 까닭에 그 진심(眞心)을 지켜 흔들림 없도록(不移)함이 바로 동산법문의 염불선 법문이다. (24p)

○… 반야바라밀이 무엇인가. 일체가 오직 마음일 뿐이고, 그 마음은 능(能 ; 주관)과 소(所 ; 객관, 대상)가 따로 없는 一心이며, 無生이고, 無相이며, 공적(空寂)하여 見함도 없고, 思議함도 없고, 知함도 없어, 그대로 心이 無心이며, 그래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뚜렷이 깨달아 아는 것이 곧 반야이고, 이 반야지혜로 일체에 걸림 없게 되는지라 반야바라밀이다. 이 반야지혜가 먼저 통해져 있어야 일행삼매에 이르게 된다. (42p)

○… 佛을 念하라고 하니 자칫 佛이라는 생각에 전념하기 쉽다. 佛이란 생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이 곧 佛을 念하는 것이라 하였다. 왜 그러한가. 佛을 念함은 佛心을 念함이기 때문이다. 佛心은 無相이고, 念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念佛은 念心이니 心이란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念의 대상이 될 수 없는 佛心을 어떻게 念한다는 것인가. 생각할 수 없으니 마음을 어디에 두려 해도 둘 바가 없다. 말의 길이 끊어졌고(言語道斷), 마음 갈 곳 멸하였다(心行處滅). 단지 생각하지 않으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自心의 당처 당념에 이러한 義가 구현되어 있음을 了知해야 되는 것이다. (48p)

○… 모든 법계의 두두물물이 설하면서 동시에 듣는다. 소리가 소리이면서 그것을 듣는다. 소리와 듣는 자리가 不二인 까닭이다. 또한 신증(身證)의 자리이다. 한 몸으로 깨어(覺) 있는 까닭이다. 법계가 그대로 일심이어서 일심법계(一心法界)인 까닭이다. 모든 경계상은 일심이 그렇게 된 것이지 그 경계상이 생겼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148p)

○… 자심 밖에 따로 다른 부처님을 생각하며 염불하는 것이 타불(他佛)을 염(念)함이고, 이러한 행으로는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 자심에서 분별함이 없고, 불생불멸하여 如한 심성을 뚜렷이 알아(了知) 이를 지키는 행이 바로 동산법문에서 설하는 염불선의 요체이다. 이러한 행이 他佛을 念함보다 뛰어나다 함은 그 행을 권하기 위함이고, 실은 他佛과 자심의 果體인 如한 자리는 평등하여 둘이 아니다. 157p

○… 염불은 곧 佛心을 念함이고 佛心은 無相이다. 無相이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佛은 覺이고 覺이란 能(주관)과 所(대상, 경계)를 떠난 자리이며 그래서 一心이다.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대상으로 삼아 念하겠는가. 그러한 뜻을 알고 念하는 바 없는 행이 곧 염불이다. (216p)

○… 수증(修證)이 잘 되어가고 있는가 아닌가는 자심이 명정(明淨 : 밝아지고 맑아짐)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無作意, 不用心의 행이 이어지면 마치 물이 맑아지니 물속의 구슬이 뚜렷이 보이는 것과 같아 마음이 자연히 明淨해지게 된다. 앞에서 ‘염불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염불하려고 함도 마음 일어남이고 분별이며, 不可念이 곧 佛(心)이고, 심성이 본래 念하는 바 없기 때문이며, 그 심성이 곧 佛心인 까닭이다. 마음으로 무엇을 하려 하면 이미 위의 선지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최상의 염불이니 곧 염불선이다. (228p)

○… 염불문의 법문을 펼친 ?반주삼매경?이나 진언행(眞言行)을 開示한 밀교 계통의 여러 경론에서 대승 理法의 깊은 뜻을 반복해서 설하고 있는 것은 단지 무턱대고 염불이나 眞言만 오로지 외워 나가라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현금 한국불교계에서 理法은 제대로 숙지시켜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염불이나 화두, 眞言에만 전념하여 매달리게 하는 방식으로 이끌고 있다. 理法을 통하여 自心에서 禪旨(禪理)를 알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다. 이러한 근본을 망각한 채 그냥 쉽고 간단하게 밀어붙이기식으로 정진하고, 그렇게 권장하는 모습은 현 한국불교계의 큰 잘못이다.


저자소개

박건주
저자 박건주는 전남 목포 출생, 전남대 사학과, 동 대학원 사학과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문학박사(중국고대사 전공)이다. 성균관대, 전남대, 순천대, 목포대, 조선대 등 출강, 현 전남대 사학과 강사, 동국대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전남대 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종교문화학회 실무공동대표. 저서에 「중국고대사회의 법률」, 「중국초기선종능가선법연구」, 「달마선」, 역서에 「풍토와 인간」, 「능가경역주」, 「능가사자기」, 「티베트무상심요법문」, 「하택신회선사어록 : 돈황문헌역주 1」, 「북종선법문 : 돈황문헌역주 2」, 「선과 깨달음 : 초기선종법문해설」, 「고금불도논형」, 「금강경해설」 등이 있다. 이밖에 여러 전공 논문이 있다.


목차

글을 펴며
제1장. 동산법문의 연기(緣起)

제2장. 4조 도신대사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
1. 도신대사의 행장(行狀)
2.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의 선리(禪理)
: 「입도안심요방편법문」 역주 해설

제3장. 5조 홍인대사의 법문
1. 홍인대사의 행장(行狀)
2. 「능가인법지(楞伽人法志)」의 홍인대사 법문
3. 「수심요론(修心要論)」 역주 해설

제4장. 염불선의 본 뜻과 그 전개
1. 서언
2. 초기 선종기 염불선 법문의 선지(禪旨)
3. 간심(看心)과 염불선
4. 선종 후기 변화된 염불선의 전개
5. 결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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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초기 선종(달마선)의 염불선 법문 처음 소개

「대품경(大品經)」에 설한다.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 이것을 佛을 念하는 것이라 이름한다.」 … 즉, 佛心을 念하는 것을 이름하여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이라 한다. 心을 떠나서 따로 佛이 있는 것이 아니며, 佛을 떠나서 따로 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염불(念佛)이란 곧 염심(念心)이며, 구심(求心)이 곧 구불(求佛)이다.
- 「입도안심요방편법문」 중에서

대저 수도의 체를 말한다면 자심의 당체가 본래 청정하며, 불생불멸하고, 분별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성이 원만한 청정심이라는 이 지견이 곧 본사(本師)이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염(念)하는 것보다 뛰어나다.
- 「수심요론」 중에서

염불 법문은 원시불교에서부터 설해져 왔고, 교의의 진전에 따라 여러 차원의 행법이 펼쳐졌다. 근래는 염불선이라는 이름이 상당히 널리 유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염불선이 어떠한 행법인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뚜렷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듯하다. 달마대사를 초조로 하는 중국선종은 제4조 도신대사와 제5조 홍인대사의 이른바 동산(東山)법문에서부터 염불법문을 펼쳤는데, 그 내용은 방편의 칭명(稱名) 염불과 염념상속(念念相續)의 행 내지 관행(觀行)으로서의 염불행을 아우르면서 궁극에는 달마대사의 능가선(楞伽禪 : 「능가경」의 禪旨에 의거한 선)에 의하여 성취하는 길을 개시(開示)한 것이었다. 그래서 ‘염불’이 아니라 ‘염불선’이라 할 때는 능가선으로서의 염불선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뜻을 도신대사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과 홍인대사의 「수심요론」, 「능가사자기」에 전하는 「능가인법지」의 글 등에서 뚜렷이 살필 수 있다.
본서에서는 1세기 전 돈황에서 새로 발견된 위의 법문들의 원문을 국내 최초로 역주 해설하면서 능가선으로서의 염불선이 어떠한 행법인가를 자세히 해설하고자 하였다. 능가선은 초기 선종기에서부터 난해한 법문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따라서 본서에 어려운 법문이 나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법문의 논리를 따라 들어가면 이치로 들어가는 길(理入)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서울 도봉구 도봉동의 광륜사 요청으로 계간 「광륜(光輪)」에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연재된 것을 수정 보완하였고, 강릉 성원사 주경스님(2010년 입적)의 요청으로 집필한 「염불선이란 무엇인가」를 후편으로 붙여서 본서의 결론 내지 요약, 후대의 전개사를 기술한 것으로 하였다.

무엇이 최상승 염불선인가?

근래 ‘염불선’이란 용어가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행법인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뚜렷이 알지 못한 채로 설해지고 행해지고 있다. 여러 경론에서 염불선이라 칭해질 수 있는 여러 행법이 설해져 있기 때문에 어느 것만 염불선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소승에서 설하는 염불선이 있고, 대승에서 설하는 염불선이 있으며, 여기에서 다시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모두 논급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단지 달마대사를 초조로 하여 이루어진 선종에서 설하는 염불선에 대해 설명하는데 머무른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초기 선종의 법문에서 보이는 염불선이 최상승의 원만한 염불선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선지(禪旨)가 심오하고 현묘하여 올바로 알아 행하는 이가 드물게 되고, 나중에는 왜곡 내지 곡해되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바가 있다.
따라서 저자는 먼저 초기 선종에서 설하는 염불선의 뜻을 밝히고, 후대에 다른 방향으로 엇갈린 모습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진정한 염불선이 정립되어 널리 유포되길 바라는 것이 저자의 원력이다.

“초기 선종의 달마선 선지(禪旨, 禪理)가 동산법문을 통하여 더욱 자세하고 친근하게 여러 대중에게 베풀어졌다. 동산법문을 통하여 달마선의 가르침이 중국과 한국ㆍ일본 등에 널리 유포될 수 있었으며, 선불교 중심의 불교사가 전개되게 되었다. 특히 동산법문은 왕생염불이나 염불관과는 달리 대승경론에 입각하여 염불은 곧 佛心을 念함이고, 그 佛心은 無相이고, 불가념(不可念)임을 창도하였다. 이른바 염불선이란 바로 이러한 선을 말함이고, 不可念(無念)의 선인 달마선이 바로 염불선이다. 후일 이러한 뜻이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게 되어 여러 이질의 선들이 나와 유행하게 되었다. 염불행만 들어가면 모두들 염불선이라 하고 있으나 초기 선종에서 설한 본래의 염불선은 그러한 행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대승의 깊은 理法을 자심에서 了知하지 못하면 행할 수 없는 것이 초기 선종의 염불선이고 동산법문의 요지이다.”(203p)

분별 떠나 무심함이 곧 진정한 염불!

초기 선종에서 설하는 염불선은 自心이 즉심(卽心)에 佛임을 알고 행하는 선법이다. 당념 당처의 心性이 不可念이고, 無心이며, 無相, 無住, 無生, 無爲, 心不起임을 먼저 뚜렷이 알아야 행해질 수 있는 선법이다. 마음을 어떻게 조정하려는 행이나 어떠한 대상에 전념하는 행이 아니라 당념 당처의 卽心에서 본래 無心임을 알아 卽心에 無心하는 행이다. 自心의 그러한 心性이 곧 佛心이고 自性佛이다. 佛을 念함은 바로 그러한 佛心을 念함이고, 佛心은 不可念인지라 아무데도 念하는 바 없이 있는 것, 즉 마음을 아무데도 둠이 없이 있는 것이 곧 진정한 念佛이고 염불선(念佛禪)이다.
이 행은 반드시 卽心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에서 어떠한 행을 지어 가는 행은 잘못이다. 그 眞心은 본래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어서(法爾自然) 있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별 떠남이 곧 眞如인지라, 분별 떠나 무심함이 곧 진정한 염불이다. 無心한 가운데 경계에 처하여 견문각지(見聞覺知) 하면, 견문각지에 자유자재하게 된다. 이것이 원숙해지면 견문각지가 한없이 넓고 깊어져 지혜의 바다가 된다. 즉 후득지(後得智)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후대에는 선종 초기의 이러한 염불선 선지가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였다. 왕생염불문과 겸수되는 가운데 여러 이론(異論)이 펼쳐지기도 하였고, 간화선의 유행 영향으로 염불을 화두삼아 念念相續하거나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하고 참구하는 이른바 참구염불도 주창되었다. 이러한 행은 초기 선종의 염불선에서 한참 벗어나고 어긋난 행이다.
염념상속(念念相續)의 행은 수행의 공통사항이지만 어떠한 상태로 염념상속 하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마음에서 어떠한 대상을 향해 집중하며 염념상속하는 행은 아직 최상승선(달마선)의 禪旨(禪理)를 알지 못하고 하는 행이다. 그러한 心地법문의 禪理를 모르고 그렇게 전념 일변도로 나가는 행은 많은 폐해를 낳게 된다. 대승의 수많은 경론과 초기 선종의 법문에서 다각도로 自性佛의 법문을 간곡하게 펼친 이유를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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