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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책의 탄생 : 새로운 고전입문)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상품명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책의 탄생 : 새로운 고전입문)
정가 18,000원
판매가 17,100원
저자/출판사 나카지마 다카히로/글항아리
수량 수량증가수량감소
페이지수 268
발행일 2010-06-15
ISBN 978899390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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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양에서는 <장자>를 어떻게 읽었는가?

    중국의 고전을 넘어 세계의 고전인 <장자>는 인류의 사유와 역사에서 탐구의 중요한 촉매역할을 해왔다.『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에서는 <장자>의 성립 경위와 그 독해의 역사를 조명한다. 중국사상사에 있어서의 <장자> 독해는 물론이고 이제껏 별로 다뤄지지 않았던 서구에서의 최신 연구를 참조하고, 나아가 들뢰즈의 철학이나 알폰소 링기스에 의한 근원적인 소리를 둘러싼 통찰 등 현대의 언어와 조우시키며, 장자의 새로운 면모를 일깨운다.

    저자소개

    저자 : 나카지마 다카히로

    저자 나카지마 다카히로(中島隆博)는 1964년 일본 고치현 출생. 1991년 도쿄대학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중국철학전공 박사과정 중퇴. 현재 도쿄대학대학원 총합總合문화연구과 준교수. 중국철학, 비교철학 전공. 
    주요저서로 『잔향殘響의 중국철학: 언어와 정치』(글항아리에서 번역출간 예정), The Chinese Turn in Philosophy, 『철학』(이와나미 <휴머니티즈> 시리즈), 『법과 폭력의 기억: 동아시아의 역사경험』(공편)이 있고, 역서로 프랑수아 줄리앙, 『세勢 효력의 역사: 중국문화 횡단』이 있다.
    역자 : 조영렬
    역자 조영렬(曺榮烈)은 1969년 경기도 여주 출생. 1995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0년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수료. 현재 고려대학교대학원 중일어문학과 일본문학 박사과정 재학. 
    주요역서로 『하루사메 모노가타리』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 강의』 『요시카와 고지로의 공자와 논어』 『문화편력기』 『이슬람: 종교, 법 그리고 정신의 내면』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 추천의 글(강신주) 

    제Ⅰ부 책의 여로 ― 『장자』 동서고금 
    제1장 『장자』의 계보학 
    제2장 중국사상사에서의 『장자』 독해 ― 근대 이전 
    제3장 근대 중국철학과 『장자』 ― 호적과 풍우란 
    제4장 서양에서의 『장자』 독해 

    제Ⅱ부 작품세계를 읽다 ― 물화物化의 핵심을 둘러싸고 
    제1장 『장자』의 언어사상 ― 공명하는 오랄리테 
    제2장 도를 듣는 법 ― 도는 똥오줌에 있다 
    제3장 물화物化와 제동齊同 ― 세계 자체의 변용 
    제4장 『장자』와 타자론 ― 물고기의 즐거움의 구조 
    제5장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 ―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에필로그 
    참고문헌 
    『장자』 편명 일람 
    역자의 말

    출판사 서평

    1. 『장자』가 『노자』보다 먼저 성립 : 
    ‘노장’이라는 선후 개념은 후대의 발명이다
     

    『장자』라는 책은 역사상 일시에 완성된 것이 아니고, 한 인물이 지은 것도 아니다. 다만 상당 부분이 장자(장주莊周)라는 인물이 지은 것은 분명하다. 사마천의 『사기』 「노자한비열전」에 장자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사마천은 노자가 공자와 만난 적이 있고, 나이로는 노자가 공자보다 위라고 설정하고는 노자를 계승하는 이로 장자를 그렸다. 그러나 이것은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이 당시 통용되던 황로黃老라는 개념 대신에 새로 발명된 ‘도가’라는 아이디어를 보강하기 위해 『장자』에 실린 몇몇 에피소드에서 재구성한 픽션이었다. ‘노장老莊’이라는 호칭은 이미 『회남자』 「요략」 편에 보이는데(그것이 일반화된 것은 3∼4세기 위진 이후이다), 사마천이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노장신한老莊申韓’(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자)이라 병칭하고 ‘도가’를 구성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사기』가 전하는, 노자에서 장자로 이어지는 ‘노장’이라는 개념은 재검토 대상인 것이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장자는 전국시대 중기에서 전한 무제武帝 시기(재위 BC141-87년)에 걸쳐 『장자』라는 텍스트를 성립시킨 사상가의 한 사람이고, 노자는 전국시대 말부터 한초漢初에 『노자』라는 텍스트의 성립에 관여했던 사상가의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노자에서 장자 혹은 『노자』에서 『장자』로 이어지는 계승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이상, 후대에 만들어져 통용되던 ‘노장’이라는 개념으로는 장자와 『장자』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2. 『장자』의 탄생 : 현행본은 서진의 곽상이 정리한 것이다 

    중국의 옛 텍스트가 모두 그렇듯이 『장자』도 오랜 편찬의 역사를 거쳤다. 장자를 언급한 문헌 중에 오래된 것은 『순자』 「해폐」 편과 『여씨춘추』 「거우」 편, 「필기」 편이다. 그러니까 기원전 3세기 중반에는 『장자』 텍스트의 일부가 알려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대에는 『사기』에 장주의 저서 ‘십여 만 자’라고 쓰여 있듯이 꽤 두툼한 텍스트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서목록인 『한서』 「예문지」에 이르면 ‘장자 52편’이라 되어 있어, 전한 말에 텍스트가 확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현행본으로 남게 된 것은 서진西晉의 곽상郭象이 지었다는 곽상주 33권 33편이다. 곽상본의 구성은 ‘내편 7, 외편 15, 잡편 11’이다. 내편은 일실된 기타 텍스트와 편수가 같다. 따라서 내편은 『장자』에서 좀 더 ‘고유한’ 텍스트라고 이해되어왔지만 내, 외, 잡의 구별 자체가 편찬과정에서 이루어진 이상, 내편이 본래의 『장자』를 전하는 부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 

    3. 불교와 장자의 만남 : ‘만물제동’을 새롭게 해석하다 

    지은이는 『장자』 독해의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불교와의 관계라고 강조한다. 불교가 중국에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은 곽상보다 후대인 동진東晉 시대였다. 동진시대에 불전의 한역과 해석이 큰 진전을 보았는데, 그 특징은 격의불교라는 것이다. 즉, 불교에서 보면 ‘외전’이라 할 중국 텍스트(특히 ??노자??와 ??장자??)의 용어를 사용하여 불교를 이해하려 한 작업이다. 모리 미키사부로가 설명하듯이, 동진의 중국지식인들은 ‘반야의 공空’을 ‘노장의 무無’ 관념을 통해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경전의 한역 자체가 이미 이런 작업을 실행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열반涅槃을 ‘무위無爲’, 진여眞如를 ‘본무本無’라고 번역했는데, 둘 다 범어를 번역하는 데 노장의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역 경전 자체가 이미 격의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고, 노장적 색채가 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열반’을 ‘무위’, ‘진여’를 ‘본무’, ‘보리’를 ‘도道’, ‘불교’를 ‘도교’, 그리고 ‘공’을 ‘무’로 한역하여 불교를 이해하는 것은 쿠마라지바鳩摩羅什의 새로운 역경譯經까지 이어졌다. 모리 미키사부로는 쿠마라지바에 의한 새로운 번역을 통해 ‘반야의 공’의 의미가 명료하게 이해됨으로써, 역으로 『장자』의 ‘만물제동설’이 진정으로 이해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은이는 모리가 자신의 『장자』 이해를 더욱 불교 쪽으로 끌고 간다면서, 불교를 『장자』에 끌어대는 것이 중국불교의 입장에서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불교와 『장자』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별도의 독해 가능성을 새롭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4. 노신은 장자를 어떻게 읽었는가 : 세속과 함께하는 장자 

    호적은 장자를 천박비천한 달관주의로 보았고, 풍우란은 이 세계의 신비에 접촉하는 역방향의 신비주의로 보았다. 노신은 스스로에 대해 “사상 면에서도 장주, 한비韓非의 독毒에 중독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만년에는 『장자』의 기사를 제재로 한, 『고사신편』에 수록된 「기사起死(죽은 이를 되살려내다)」라는 작품을 썼다. 
    그 글에서 노신이 묘사한 장자는 도사 복장을 하고 가다 길가에서 우연히 촉루??(해골, 『장자』 「지락」 편에 나오는 해골 에피소드)를 만나 스스로 도교풍의 주문을 외어 불러낸 ‘사명대신司命大神’의 힘을 빌려 되살려낸다. 그런데 되살아난 500년 전의 사내가 도리어 자기 옷과 짐을 내놓으라고 장자를 협박한다. 곤란해진 장자는 경찰을 불러, 『장자』 「제물론」 편의 문장을 알고 있는 순경에게 그 사내를 맡기고 초왕을 면회하러 떠난다. 그런데 그 순경도 사내에게 트집을 잡혀 몹시 애를 먹다가 다시 경찰을 부른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노신은 세속을 초월했을 장자가 얼마나 세속적인가를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그 조롱은 노신 자신에게 되돌아올 쓰디쓴 것이었다. 노신은 만년에 지은 「나는 사람을 속이고 싶다」는 글에서 장자를 인용하면서, 서로를 잊고 강과 호수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꿈꾸었다. 여기서 지은이는 지적한다. “그러나 철저히 무관심하게 망각하고, 세속을 초탈하여 유유히 자족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 세속 세계를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는 이상,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세속에 살면서 세속을 뛰어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노신이 묘사한 장자처럼, 다른 사람의 눈에는 조롱거리로 비친다고 해도 말이다.” 
    노신은 『고사신편』에서 세속을 넘어선 신비주의적 방향과, 세속에 바싹 다가가려는 방향이 혼재하고, 그것들이 ‘소설’ 공간에 극도의 긴장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지은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잔고기밖에 없고, 그 잔고기조차 때가 되면 물이 말라 ‘바싹 마른 수레바퀴 자국 속의 붕어’가 될 잔고기이다. 그러나 실은 그것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즉, 뭍에서 말라버릴 붕어 신세에 자족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도가의 교리’가 가르치는 바는 아닐까. 그것이 얼마만큼 절망스럽든, 그것의 가능성을 남김없이 실현하는 방법 외에 이 세계를 변용시킬 길은 없다. 노신은 장자의 ‘출세出世의 설’을 조롱하고, 이 세계에 투철하게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고 보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역방향의 신비주의에 일말의 관심을 걸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5. 서양에서의 장자 독해 : 장 프랑수아 비유테의 경우 

    서양에서 이루어진 『장자』 해석에서 새로운 경지를 열어 보인 이는 장 프랑수아 비유테Jean Francois Billeter(1939- )이다. 자신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록을 정리한 『장자강의』가 관심을 모은다. 『장자』에 대한 비유테의 기본 입장은 『장자』를 ‘유산으로서 상속되어온 중국사상’ 바깥에 두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로서의 도교에서 『장자』를 분리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곽상으로 대표되는 현학적玄學的인 『장자』 주석과도 분리시키며, 나아가서는 도가라는 장르로 분류하는 것마저 의문시하는 것이다. 비유테에 따르면, 『장자』는 『노자』와 달리 종교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종교로서의 도교에 대해서는 제한된 영향밖에 주지 않은 만큼, 노장이라 병칭되거나 도가로 한데 묶일 이유가 없다. 도리어 『장자』에는 유가적인 의례주의가 강하게 엿보이고, 공자와의 관계도 긴밀하다. 
    그렇다면 ‘유산상속’에서 벗어나 『장자』를 어떻게 독해하는가? 비유테는 『장자』의 작자를 ‘자기 고유의 경험에서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 사고하고 기술하는 철학자’로서 이해한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한다. 비유테는 특히 망각과 ‘유遊’를 논하는데, 거기에서 공자와 안회 간의 ‘좌망坐忘’을 둘러싼 대화를 담은 중요한 인용이 이루어진다. ‘좌망’이라는 것은 얼핏 보면 외계와 타자에 등을 돌리고 자기 내면에 틀어박혀 전혀 활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유테는 그것을 서양적으로 사물을 보는 방식의 한계에 불과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지은이는 그러나 비유테의 『장자』 독해가 결국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착상을 얻은 ‘경험의 기술’이라는 하나의 철학 모델에 따른 것이라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장자』는 일반적인 ‘경험의 기술’을 정확히 행하려고 했다기보다는 경험의 구조의 변화를 통해서 이 세계의 근본적 변용에 다가서려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6. 생성변화의 관점에서 세계를 다시 보다 

    만물을 만물답게 하는 초월론적 원리로서의 ‘도’는 이 세계에 편재하고, 그것에서 도망칠 수 있는 존재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장자』에는 사물이 그 사물이게 하는 본질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방법과는 달리, 사물이 다른 사물이 되는 ‘생성변화’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방법이 있다. 도대체 사물이 다른 사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똥오줌’이 줄곧 ‘똥오줌’인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이 된다면, 그것은 초월론적 원리로서의 ‘도’가 의미를 구성하는 기제를 흔들게 될 것이다. 『장자』의 세계에서는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로 생성변화하는 것을 ‘물화’라고 부른다. ‘물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예가 ‘나비의 꿈’일 것이다. 
    장주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주가 되는 변화는 유가적인 ‘교화敎化’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화’는 소인이 군자나 성인이 되는 계몽 프로그램이고, 어디까지나 방향이 정해진 변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지은이가 특별히 강조하는 점은 ‘물화’는 자타의 구별을 경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물화’를 통해 자타의 구별이 없고 자타가 융합된 만물일체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물화’라는 변화는 본래부터 쓸데가 없고, 무엇보다 나비의 꿈 원문에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별이 있을 것이다’라고 기술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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