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천의 글
역자 서문
해제
Ⅰ. 법의 정통성에 허물이 없음을 보이는 저자著者의 수승함
Ⅰ-[1] 훌륭한 가문에서의 탄생
Ⅰ-[2] 그 생애에 공덕을 갖추는 과정
Ⅰ-[2]{1} 교법을 두루 아시는 교학의 덕을 갖추는 과정
Ⅰ-[2]{2} 여법성취 증법證法의 덕을 얻어가는 과정
Ⅰ-[2]-{2〈1〉 뛰어난 계학을 갖추다
Ⅰ-[2]-{2}-〈11. 별해탈계를 구족하는 과정
Ⅰ-[2]-{2}-〈12. 보살계를 갖추는 과정
Ⅰ-[2]-{2}-〈13. 금강승계를 갖추는 과정
Ⅰ-[2]-{2〈2〉 두 가지 뛰어난 정학을 갖추다
Ⅰ-[2]-{2}-〈11. 보편의 정학[共定學]
Ⅰ-[2]-{2}-〈12. 특별한 정학[不共定學]
Ⅰ-[2]-{2〈3〉 뛰어난 혜학을 갖추다
Ⅰ-[2]-{2}-〈11. 보편의 혜학
Ⅰ-[2]-{2}-〈12. 특별한 혜학
Ⅰ-[3] 불법을 위한 행적
Ⅰ-[2]{1} 인도에서의 행적
Ⅰ-[2]{2} 티벳에서의 행적
Ⅱ. 가르침에 귀한 마음을 일으키는 법의 수승함
Ⅱ-[1] 모든 교법에 모순이 없음을 깨닫는 이익
Ⅱ-[2]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특별한 가르침으로 보게 되는 이로움
Ⅱ-[3] 부처님의 뜻을 조속히 얻는 이로움
Ⅱ-[4] 죄행이 저절로 소멸되는 이로움
Ⅲ. 두 가지 수승함을 갖춘 법法을 듣고 설하는 방법
Ⅲ-[1] 청문자가 법을 듣는 법
Ⅰ-[2]{1} 법을 듣는 공덕
Ⅰ-[2]{2} 법과 설법자에 대한 공경
Ⅰ-[2]{3} 청문법의 실제
Ⅲ-[2] 설하는 방법
Ⅰ-[2]{1} 법을 설하는 공덕 사유하기
Ⅰ-[2]{2} 부처님[敎祖]과 법에 공경심 일으키기
Ⅰ-[2]{3} 설법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
Ⅰ-[2]-{2〈1〉 마음가짐
Ⅰ-[2]-{2〈2〉 몸가짐
Ⅰ-[2]{4} 법을 설하는 대상과 법을 설하지 않아야 할 대상의 구별
Ⅲ-[3] 마지막 공통의 행법
Ⅳ. 본 가르침으로 제자를 인도하는 순서
Ⅳ-[1] 모든 도의 근원인 선지식을 의지하고 섬기는 법
Ⅳ-[1 ]{1} 확신을 얻기 위한 상설詳說
Ⅰ-[2]-{2〈1〉 의지처인 선지식의 자격[性相]
Ⅰ-[2]-{2〈2〉 스승에 의지하는 제자의 자격
Ⅰ-[2]-{2〈3〉 제자가 스승을 섬기는 법
Ⅰ-[2]-{2}-〈11. 마음으로 섬기는 법
Ⅳ-{1}-〈3〉-1- 가. 보편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
Ⅳ-{1}-〈3〉-1- 나. 근본이 되는 신심의 함양
Ⅳ-[1]-{1}-〈3〉 다. 은혜를 떠올려 공경심 일으키기
Ⅰ-[2]-{2}-〈12. 행行으로 섬기는 법
Ⅰ-[2]-{2〈4〉 선지식을 선기는 공덕으로 인한 이익[得]
Ⅰ-[2]-{2〈5〉 선지식을 잘못 섬김으로 인한 해악
Ⅰ-[2]-{2〈6〉 요결了結
Ⅳ-[1 ]{2} 수행 방법에 대한 약설略說
Ⅰ-[2]-{2〈1〉 수행 방법의 실제
Ⅰ-[2]-{2}-〈11. 정근正勤 시의 수행
Ⅳ-[1]-{2}-〈1〉- 가. 예비행
Ⅳ-[1]-{2}-〈1〉- 나. 본수행
Ⅳ-[1]-{2}-〈1〉- 다. 마지막 행
Ⅰ-[2]-{2}-〈12. 비정근非正勤 시의 수행
Ⅰ-[2]-{2〈2〉 수행에 대한 사견의 차단
Ⅳ-[2] 선지식을 섬기어 어떻게 마음을 닦을 것인가
Ⅳ-[1 ]{1} 가만의 몸을 의미 있게 쓰기 위한 가르침
Ⅰ-[2]-{2〈1〉 가만의 몸이란 무엇인가
Ⅰ-[2]-{2}-〈11. 팔유가八有暇
Ⅰ-[2]-{2}-〈12. 십원만十圓滿
Ⅳ-[2]-{1}-〈1〉-가. 내부적 원만함
Ⅳ-[2]-{1}-〈1〉-나. 외부적 원만함
Ⅰ-[2]-{2〈2〉 가만의 몸의 가치를 사유하기
Ⅰ-[2]-{2〈3〉 가만의 몸의 얻기 어려움을 사유하기
Ⅳ-[1 ]{2} 가만의 몸을 의미 있게 쓰는 법
Ⅰ-[2]-{2〈1〉 보편적 도에 대한 이해
Ⅰ-[2]-{2}-〈11. 일체교설이 세 근기의 도로 수렴되는 이치
Ⅰ-[2]-{2}-〈12. 세 근기의 도를 차제대로 이끄는 이유
Ⅳ-[2]-{2}-〈1〉-가. 세 근기의 도를 통해 이끄는 의미
Ⅳ-[2]-{2}-〈1〉-나. 그와 같은 차제대로 이끄는 이유
Ⅳ-[2]-{2}-〈1〉-2- 1) 실질적인 이유
Ⅳ-[2]-{2}-〈1〉-2- 2) 의의
참고 문헌
인용 경전 목록
찾아보기
- 책속으로
올바른 논[正論]과 구결(口訣, man ngag) 없이 혼자 힘으로 교설을 배우기 때문에 후대의 중생들은 그 뜻을 얻지 못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스승[軌轍師]들께서 경을 해설하는 논서와 구결문口訣文을 저술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구결이라면 경장에 대해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구결의 가르침을 아무리 배워도 그것이 경론의 의미에 확신을 주지 못하거나 경론과 상충되는 도를 설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버릴 바이다.
어떤 이들은 삼장을 수행의 핵심이 없는 현학(衒學)의 대상으로 삼고, 수행의 핵심적 의미를 설하는 가르침은 따로 존재한다고 이해하며, 정법에 있어 교학[經敎]과 수행의 법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인식은 청정한 현교와 밀교의 경(經), 그리고 경의 해설서인 청정한 논(論)에 대해 큰 신심을 일으키는 것을 방해한다. 경론은 내밀한 의미를 설하지 않고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경시한다면 그것은 ‘법을 버리는 업장(業障)’을 쌓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해탈을 구하는 이들에게 속임 없는 최상의 가르침은 분명 삼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뛰어난 경론의 가르침에만 의지해서는 스스로 지혜가 부족하여 그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처럼 경론에 대한 이해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스승의 구결을 구해야 하는 것이지, ‘경론은 지식을 위한 것일 뿐 핵심이 없고 구결이야말로 내밀하고 깊은 뜻을 설하므로 뛰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p.76~77
우리의 번뇌는 매우 거칠어 스승을 섬기는 법을 모른다. 알더라도 행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법을 듣는 이들에게는 스승으로 인한 무량한 죄가 생긴다. 하지만 이를 참회하거나 반성하는 등의 마음이 생기기 어렵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대로 스승을 섬기는 공덕과 섬기지 않는 해악을 알고 거듭해서 사유해야 한다. 무수한 전생에서 스승을 어떻게 섬겨 왔는지 그것을 돌아보고 마음속 깊이 참회하여 다시금 불경의 죄를 짓지 않을 것을 여러 차례 다짐한다. 제자[法器]의 요건에 있어서도 스스로 노력하여 갖추어야 한다. 선지식을 알아볼 수 있도록 선지식의 완전한 자격과 요건을 거듭 사유한다.
--- p.145
‘수행(곰, sgom)’이라는 이 유명한 말은 선(善)의 대상에 반복하여 마음을 기울이고 함양하는 것이다. 무시이래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휘둘려왔으며, 마음을 내가 내 뜻대로 휘두르지 못하였다. 그러한 마음도 번뇌와 같은 장애들을 쫓음으로써 모든 잘못과 허물이 생겨났다. 수행이란 이러한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선한 대상에 원하는 대로 마음을 부리기 위한 것이다.
두서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수행하면 ‘수행할 가짓수는 이 정도이고 이런 순서로 해야지’라고 생각하여 행하여도 자신의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원하는 대로 선의 대상에 마음을 부리는 데 큰 장애가 생긴다.
처음부터 버릇이 잘못 들면 한 평생 수행[善行]에 허물이 생기기 때문에 먼저 수행할 대상의 수(數)와 단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명확하게 정해진 수행 대상과 다른 어떤 것에 마음을 쓰지 않겠다는 결의를 여러 번 깊이 다진다. 그처럼 확정된 수행보다 지나치거나 부족함 없이 억념(憶念)과 정지(正知)를 갖추어 수행해야 한다.
--- p.155
들음이 많을수록 들음에서 생기는 지혜[聞慧]가 많고, 문혜가 많을수록 사유가 많으며, 사유가 많을수록 사유에서 생긴 지혜[思慧]가 많아진다. 이 사혜가 많을수록 닦음[修]이 많아지고, 닦음이 많으면 허물을 차단하고 공덕을 이루는 방편이 많아지는 까닭에 수행에 있어 문사의 중요함을 경론에서 거듭 말씀하신 것이다.
문사를 통해 정립된 것은 닦음[修]을 위해서가 아니라 표면적인 지식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하거나, 닦을 때 정립된 내용과는 무관한 것을 닦는다면 마치 경마장을 만들어놓고 엉뚱한 곳에서 경마를 하는 것과 같다.
만일 그렇게 되면 경론에서 말씀하신 문사의 중요성은 무의미한 말이 되고, 세 가지 지혜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이치를 설하는 경교의 보편적인 체계까지도 무너지게 된다. 또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반드시 많이 배울[多聞]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말도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들을 이해하지 못한 증거로, 현교와 밀교를 많이 배운 자나 전혀 배우지 못한 자 모두 이후 실제 수행에서 별 차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며 또 수행을 하는 자가 법을 듣고 경책[經冊]을 보며 생각하는 것 등을 흠으로 여기는 나쁜 전통들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 p.170
출판사 서평
- 『보리도차제론』이 티벳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가치는 티벳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문에서 늘 회자되고 법문 주제로 자주 채택되곤 해서 존자님의 법문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역작이고 티벳 수행자들에게 사랑받는 필독서라 하더라도 우리 한국 불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리도차제론』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말 그대로 깨달음의 길이라는 도의 과정을 해설하는 책이라는 점도 있지만 우리사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14세기라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나온 이 역작은 쫑카빠라는 인물의 시대적 고민에서 나온 시대적 산물이다. 대사의 저작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시대상과 문제를 읽으면 지금 우리에게 이 저작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저작은 당시 티벳 불교사회가 안고 있던 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 티벳 불교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왔다. 스승의 부재, 교리적 오해, 맹목적인 믿음, 가치관의 혼란 등 대사의 시대가 그랬듯이 이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김성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명예교수)